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어주셨어.

가증스런 너의 모습을 보고 나를 구원해 주신 듯.

by 미소


찝찝했던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다음 날, 우울증으로 상담을 받으러 간다고 하던 너.

혼자 보내기 그래서 내가 같이 간다고 해서 함께 상담센터로 향했어.

넌 아마 혼자 가고 싶었을거야.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년의 집이랑 가까운 상담 센터였으니까.


난 그냥 너를 기다리고 있을 생각으로 따라갔는데 상담 선생님이 나도 들어오라고 하더라.

네가 신청한 상담이었으니 상담선생님은 너의 가족 관계도를 묻고, 힘든 점이 무엇인지 물으셨지.

너는 늘 하던 이야기를 똑같이 늘어 놓았고, 나는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라 그저 듣고 있었어.

그리고 나서 상담선생님이 나를 보며 물으셨어.

"남편분 이야기를 다 들으셨는데, 어떤 마음이 드세요?"


그 질문 하나에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지더라. 애써 눈물을 참으며 말했어.

"남편(이라고 부르고도 싶지않지만 그 때까지는 남편이라 생각했으니)이 아버님과 사업을 시작한지도 10년이 넘었어요. 해마다 갈등이 있었고, 그 때마다 '힘들다, 죽고 싶다, 다 내려놓고 싶다'는 말을 하는 남편을 보면서 '힘들면 그만 둬도 된다, 쉬어 가도 된다'하며 위로를 해줬고, 언젠가 괜찮아지겠지하는 마음으로 지냈어요. 그런데 올해는 그 마음을 지키기가 유난히도 힘들었어요. 태어나서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없었는데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아버님과의 문제도 문제지만 남편의 마음이 다른 곳을 향하고 있다는 생각까지 드니 더 혼란스럽고 힘이 드는 것 같습니다."


내 말을 들은 상담선생님은 내가 더 상담이 필요해 보인다고 하셨지. 그러자 넌 변명이라도 하듯 말했어.

"오래 알고 지낸 여자가 있는데 와이프도 아는 사람이에요. 저랑 비슷한 상황이고 해서 힘든 점을 이야기하다보니 정서적으로 그냥 위로를 받았던 것 뿐인데 와이프는 오해를 해서 스스로 너무 힘들어하는 것 같습니다."

그 때도 참 뻔뻔했어.


상담선생님이 그 말을 듣자 마자 단호하게 말씀하셨지.

"그게 정서적 외도에요. 오늘은 첫 상담이고 이건 또 다른 문제이니 다음 상담 때 자세히 이야기를 나눠보고 오늘은 아버님과의 갈등에 대한 이야기를 더 나눠보겠습니다."

그 상담선생님 말대로라면 외도 대상이 두 명으로 늘어난 셈이었지. 얼마나 좋았겠어. 너를 위로해주고 싶은 여자가 많아서.


정서적 외도 대상이었던 그 년과의 대화를 내가 한 번 문제 삼았던 적이 있었지. '잘 잤냐? 잘 자라' 이런 문자를 왜 주고 받냐. 그거 이상한거 아니냐고 했더니 넌 그게 왜 이상하냐며, 교회 집사님 친구한테도 그렇게 보낸다며 미친 소리를 했었어. 그러면서 그렇게 못 믿겠으면 이혼하자며, 양쪽 집에 찾아가서 다 말하겠다고 하며 그 밤중에 자는 애까지 깨우면서 쌩쇼를 해댔어. 난 그 쌩쇼에 또 놀라서 미안하다고 하며 그 상황을 수습해야 했고.


다시 상담 이야기로 돌아와볼까?

상담 선생님이 너에게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싶냐고 물으셨어.

"길어야 10년 이라고 생각합니다. 돌아가시면 끝나겠죠."

그랬더니 상담 선생님은 들고 계시던 차트를 내려놓으시면서 이렇게 강하게 말씀을 드리지는 않는데 지금은 그럴 수 밖에 없는 것 같다며 그러셨어. 그럼 본인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주변 상황이 바뀌기만을 기다린다는거냐? 부모님이 본인이 생각한 것보다 더 오래사실 수도 있고, 그건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무책임한 생각이라고.


그래, 생각해 보니 나도 너에게 똑같이 말을 했었었지.

스스로 자기 부모를 욕하고, 빨리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너를 보면서 처음에는 난 니가 더 소중한 사람이었기에 얼마나 힘들면 그런 말을 할까 생각했었어. 그런데 그것도 반복이 되니까 어느 순간 지치더라. 그리고 자기 부모를 그렇게 생각하는 너를 이해하기가 점점 힘들어지더라. 그리고 자꾸 이런 상황을 만드는 그들도 자꾸 싫어지더라. 부모라면 자식이 편안하기를, 자식의 가정이 안정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클텐데 말이지.


상담선생님 말이 충격이었는지, 아니 충격을 받은 척 연기를 했던 거겠지(그러고도 넌 그 년을 만나러 갔으니까). 상담을 마치고 넌 니가 노력해 보겠다고, 아들을 위해서라도 달라져야겠다며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하며 함께 점심을 먹으러 갔어. 계속 입맛이 없었는데 그 날은 유독 입맛이 돌아서 이상하더라고. '외도'라는 단어를 제 3자에게 듣고 뭔가 생각이 달라져서 그랬던건지, 니가 달라지겠다고 한 말이 희망으로 들려서 그랬던건지...


집으로 돌아 온 넌 볼 일이 있다며 부리나케 나갔고, 다음 날도 교회 행사를 핑계로 저녁이 다 되서야 들어왔지. 그 다음 날 주일에 교회에 함께 갔고, 그 날 말씀이 결혼과 관련된 말씀을 해 주셨어. 믿음이 정말 중요하다면서. 넌 그 말씀을 들으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난 말씀을 들으면서 조용히 기도를 했어.

'하나님, 저 너무 힘이 듭니다.

남편을 믿을 수 있는 확신의 마음을 주시든지, 아니면 저의 의심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세요.'


그리고 그 날 오후, 문득 블랙박스를 확인해 보자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 모든 걸 알게 되버렸지.

내 기도를 들어주신 거겠지? 이제 그만 힘들어하라고.

너의 그 가증스런 모습을 하나님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나보지.


모든 걸 알고 나서 나는 너에게 물었지.

"넌 교회를 왜 다녔냐? 그리고 왜 나한테 그렇게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고 말한건데?"


예전에 네가 내게 했던 말이 떠올랐어.

교회 사람들이랑 너무 가까이 지내면 안된다고. 그리고 교회에 대해 너무 자세히 알려고도 하지말라고.

나중에 상처 받을 수도 있다고.


네가 말한 '상처'가 이런 거였나 보지.

겉으로는 믿음 좋은 척, 누구보다 바르게 사는 사람인 척하면서 뒤에서는 서슴없이 사람을 속이고 기만했던 그 모습… 그게 날 이렇게 무너뜨린 거겠지.


나쁜 짓하고 주일 날 교회와서 회개했으니 괜찮다고 생각했었나봐?

사람 죽여놓고도 잘못했다고 회개하면 받아주는 게 네가 말하는 하나님이냐?


내 기도를 들어주셔서 감사한 마음이 크지만, 너로 인해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밖에 없게 되더라. 그럼 넌 그렇게 말하겠지. 내 믿음이 작아서 그런거라고.


믿음이 큰 너에게 앞으로 어떤 길을 예비하실지, 그래 기대해 볼게!






이전 05화지우고 싶은 마지막 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