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우고 싶은 마지막 여행

의심이 확신이 되게 만들어 준 여행, 고마워해야하나.

by 미소

20년 동안 열심히 일해서 받은 휴가였기에 나 혼자 갔어도 되는 여행이었는데,

몸과 마음이 힘든 너를 생각해서 같이 가자고 제안했던 그 날의 내가 정말 밉다.


너는 같이 가고 싶다고 말은 했지만, 표정에서는 전혀 즐거움이 느껴지지 않더라.

아마 그 년과 5일 동안 떨어져 지내야 한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던 거겠지.


내가 하자는 대로 따라만 가겠다고 하면서, 너는 여행 준비에 아무런 관심도 두지 않았고, 나 역시 원래라면 설레고 즐거워해야 할 여행인데, 이상하게 마음이 전혀 들뜨지 않더라. 예약은 해놓았으니 가긴 가야 했지만, 솔직히 썩 내키지는 않았어.


그렇게 공항으로 향했고, 무덤덤한 니 표정을 보면서 오랜만에 가는 여행인데 설레이지 않냐는 나의 질문에 비행기를 타야 느낌이 날 것 같다고 했지만 진심으로 들리지 않았어.


새벽 1시가 넘은 시간에 그곳에 도착하고 입국 심사를 기다리며 넌 누구에게 문자를 보내고 있었지.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내가 이 시간에 누구랑 문자를 하냐고 했더니 제자라며 또 둘러대던 너. 한 시간 전에 온 문자를 보여주며 인스타에 공항 사진 찍어 올렸더니 여행 잘 다녀오라고 연락이 왔다며.


난 끊임없이 의심이 몰려왔지만 이왕 온 여행이니 다른 생각하지 말고 즐기다가 가자 마음을 고쳐먹고 여행에만 집중하려고 했어. 그런데 넌, 내가 애써 다잡은 그 결심마저도 아주 처참히 무너뜨려버렸어.


수영복 입은 셀카를 보내는 너의 뒷모습을 보는 순간, 의심이 아니라 이제는 사실이라는 확신이 들었어.

너는 그마저도 또 어설픈 핑계로 둘러댔지만, 어떤 말도 믿을 수가 없겠더라.


넌 어땠을지 모르지만 난 세상 무거운 짐을 안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고, 넌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볼 일이 있다며 아주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을 나갔어. 그리고 난 쇼파에 멍하니 앉아 멈추지 않은 눈물을 닦으며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할지 하염없이 고민했어.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보이지 않는 막막함 속에서 그저 숨만 쉬고 있는 나 자신이 얼마나 초라하게 느껴지던지.


누군가를 걱정하게 하는 것이 싫어 스스로 감내하며 살았던 내가 그 때는 밉기도 했어. 일이 벌어지고 나서야 주변의 사람들에게 말을 했더니 왜 그렇게 혼자서 걱정했냐고, 많이 힘들었겠다며 하나같이 따뜻한 말을 건네주었지.


의심하는 나에게 오히려 정신과에 가보라고 말하던 너.

점점 야위어가는 나를 보면서도 아무 걱정하지 않았던 너와는 달리 나를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은 내가 얼마나 무너져 있었는지, 얼마나 힘겨웠는지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알아 주더라.

그래, 그게 진짜 사랑이지.


그 동안 내 마음을 하찮게 여기고, 내 아픔을 바라볼 줄도, 책임질 줄도 몰랐던 너라는 존재가 얼마나 쓰레기같은 존재였는지 그제야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어. 원래 그런 인간이었는지 아니면 뭐가 널 그렇게 변하게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세상에서 제일 깨끗한 척, 너만은 아무 잘못 없는 척하는 그 가식은 이제 그만하고 살길 바래. 니가 어떤 인간인지 스스로 제대로, 똑바로 볼 줄 알아야지. 이제는 너만 속일 수 있을거야. 세상은 더 이상 네 연기에 속아주지 않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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