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담컨대 넌 아주 큰 벌을 받을거야.
폭풍같았던 잠깐의 시간이 지나고 아들의 마음을 추스린 후 짐을 싸서 친정으로 갔어. 가는 동안 엄마 아빠 앞에서 울면 어쩌지 하는 걱정을 했는데 나도 내가 놀라울 정도로 담담하게 말을 하고 있더라.
엄마, 아빠도 믿기지않은 듯 한참을 멍하니 계시더라.
아빠는 내게 확실하지 않을 수 있고, 아빠가 알고 있는 OO이는 그럴 애가 아니니까 일단 너무 감정적으로 생각하지 말라고 하시는데. 아빠의 말이 서운함으로 들리진 않았어. 아빠도 믿기지 않으셨을테니까. 아빠에게 살갑게 굴고, 힘든 일도 나서서 해 주던 막내 사위였으니 그럴만도 하지. 엄마도 하루 이틀은 심장이 떨린다며. 지난 주만해도 장인, 장모 한약을 지어준다며 한의원에 모시고 가서 한약을 지어주고했던 놈인데.
그 날 다 너에 대해 까발리는 건 힘든 일이 될 듯해서 다음 날 찬찬히 말씀을 드렸어. 다 듣고 나시더니 아빠는,
“그래, 네가 하고 싶은대로 해. 엄마, 아빠는 네 결정을 따를테니까.” 라고 하셨어.
내 인생에 찾아올 거라고 예상 못 했던 큰 사건 앞에서 방황하지않고, 담담하게 마음을 지킬 수 있었던 건, 언제나 날 믿어주고 한결같이 지지해 준 우리 부모님 덕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자식이 아프다고해도, 다쳤다고 해도, 죽겠다고해도 본인들 걱정만 했던 네 부모와 달리.
아들은 그러더라. 이렇게 힘든 데 엄마는 어떻게 견뎠냐며. 잘못도 모르고 날뛰던 너와는 다르게 날 위로해주더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마음씀씀이가, 됨됨이가 널 닮지 않아서.
그런 아들에게 넌 어떻게 했는 줄 알아?
아빠가 마음의 병이 있어서 지금 이렇게 헤어져있게된거라는 말로 더 혼란스럽게 만들었고! 엄마, 아빠가 헤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아들의 말을 끌어내서 엄마한테 원하는 걸 잘 이야기해보라고 시켰더라!!
어디 그것뿐이니?
아빠의 안부를 묻는 아들 문자에 밥도 못 먹었느니 하면서 널 걱정하게 만들었지. 힘든 마음 추스려야하는 아들한테.
그 말을 듣는 데 피가 아주 거꾸로 솟는 것 같더라.
감정팔이로 내 인생 망친 것도 모자라 나한테 한 짓을 아들한테도 하는 너의 역겨운 모습을 더는 두고 볼 수가 없더라.
난 그래도 너를 세상에서 가장 좋은 아빠로 생각하고 있던 아들에게 아빠로서의 모습을 지켜 주기 위해 애둘러서 이 상황을 말하고 애써 포장하려고까지했는데. 넌 끝까지 너 편한대로, 네 마음대로 하는 꼴을 보고 있자니 그렇게 할 필요가 없겠다 싶었어.
“아빠한테 다른 여자가 생겼어. 이건 어떤 상황이라고 생각해?“
“엄마가 아빠 마음에 없다는 거라고 생각해.”
“아빠의 행동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
“잘못했다고 생각해.”
아직 어린 아들도 옳고 그름을 구별할 줄 아는데 넌 아들만도 못한 놈인거야. 그러면서 아들에게 말해줬어. 엄마가 왜 이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는지. 네가 했던 거짓말로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냈는지를.
그리고 그 날 너에게 전화해서 아주 시원하게 쏟아냈지. 나 하나 가지고 논 것만으로도 모자라서 아들한테까지 똑같이 그러고 있냐고! 니가 그러고도 아빠라고 할 수 있냐고! 지난 일 년 아들이랑 주말에 시간 보낸 적 있냐고! 이제와서 아들 생각하는 척, 챙기는 척, 걱정하는 척 하지 말라고. 내가 왜 이혼을 안해주는 거냐고 물었더니, 뭐? 아들을 생각해서라고. 미친 놈. 그럼 넌 아들을 생각해서 그 년이랑 그 짓거리를 하면서 놀아냤냐. 어디서 되도 않는 이유를 갖다붙이고 있는지 참.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어느 날, 차 안에서 아들이 그러더라. 이혼은 다 된거냐고. 그래서 그렇게 빨리 처리되는 것도 아니기도 한데, 아빠가 이혼을 못 한다고 해서 소송을 진행 중이라고 했더니, 자기가 아빠한테 전화해서 이혼해주라고 얘기하면 안되냐고.
아들한테 그랬어. 이건 엄마, 아빠의 문제니까 너가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리고 엄마와 상관없이 너에게는 아빠니까 만나고 싶거나 연락하고 싶으면 해도 된다고.
너는 아들이 내 눈치보느라 연락을 못 한다고 그랬지?눈치를 보는 게 아니라 아들도 너를 용서하기가 힘든거야! 왜냐고? 나에게는 물론 아들에게도 제대로 잘못을 인정한 적이 없거든. 용서를 구한 적도 없고. 무엇보다 세상에서 너를 가장 믿었던 나와 아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배신과 상처를 남겼거든. 이걸 굳이 말로 설명해야 니?
만나서 얘기 좀 하자고 해서 만난 날.
니가 진짜 인간쓰레기라는 걸 알게됐지.
다시 잘 살면 된다고?
의심하는 미친 년이랑 계속 싸우면서 살텐데 왜 살려 하냐니까 뭐? 안 싸우면 된다고.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 듣고 있지. 그리고 어디서 걸려 온 전화를 받더니 수화기 너머 또 그 년 목소리가 흘러 나오더라. ’미친 새끼‘ 한 마디를 던지고 자리를 박차고 나오니까 엄마라고 하더라. 누굴 바보 등신으로 아나? 내가 당장 내 집에서 짐빼서 나가라고 했더니 너 어떻게 했니? 비아냥거리면서,
“싫어. 나도 내 마음대로 할거야. 안 나가.”
이러면서 가더라. 그 모습을 보고 있는데 참 내가 그 동안 어떤 인간이랑 살았던 건지. 화만 더 치밀어오르더라.
몇 분 후 넌 다시 미안하다는 문자를 보내며, 진짜 사랑하는 건 나와 아들 뿐이라는 더 이상 믿지 않는 말을 한 가득 쏟아내면서 자기 그렇게 미친 놈 아니라고 그러더라. 그래서 내가 알려줬지.
”그래. 여자한테만 미친놈이지. 젊은 여자랑 만나고 싶어하더니 소원이웠으니까 그 년이랑 행복하게 잘 살으라고. 갈 데까지 다 가 놓고 왜 이제와서 후회하는 척하면서 나한테 왜 그러는건데!“
그랬더니 또 넌 거짓말을 하더라. 갈 때까지 가지않았다고. 넌 지금 내가 어떤 증거를 가지고 이러는지를 모르니까. 또 어떻게 속이면 되겠다싶었겠지? 그래서 내가 ‘뭘 가지고 그러는데?’라고 묻던 말에 대답을 안한거야. 나도 이제 더 이상 속지 않을거거든.
기다려. 넌 내가 아무것도 안하고 혼자 슬퍼하고 울고 있을 것 같지? 이제 예전에 네가 알던 나는 없어. 나는 조용히, 철저하게 준비하고 있으니까 기다리고 있어.
안 해주면 못 하는 이혼이 아니라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칼같이 끊어낼 수 없다는 게 아쉽지만 기다리면 되니까. 그 기다림 속에서 나와 아들은 새롭게 우리의 시간을 단단하게 지켜나갈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