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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ink Of Me Oct 19. 2024

5.18은 아직<지방이라는 정체성 _01>

광주의 자존심이지 자존감이 아니다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 소식에, 온 나라가 아주 떠들썩하다. 광주 출신인 한강 작가의 소설 '소년이 온다'는 광주의 5.18을 배경으로 한다. 나는 91년생 광주에서 태어났다. 김대중 대통령이 취임된 98년 그해 3월 나는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부터 5.18 망월동 묘지에 현장학습을 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입시경쟁의 최전선인 고등학교를 제외하면, 꼭 1년에 한 번은 5.18 관련 현장학습을 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초등학교 당시에는 묘지를 가면 무서움이 컸다. 현장학습을 가서 보이는 이미지와 시청각 자료들은 긴장을 유발하는 음악과 잔인한 군부의 폭력에 죽은 사람들의 얼굴과 몸의 상처들이 적나라하게 보였다. 어떤 친구들은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민주주의가 뭔지도 모르는 초등학생 시절의 5.18에 대한 감각은 스산하고 조용한 분위기와 긴장을 고조시키는 시청각 자료가 들려주는 음악에서 느끼는 "공포"였다. 


 광주는 민주화의 성지로 불린다. 5.18 민주항쟁 때문이리라. 광주를 향한 타 지역 사람들의 시선은 어떤가? 적어도 내가 만나서 이야기해보면, 시민의식이 깨어있을 것이고, 사고도 열려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진보적이며, 진취적일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러나 정작, 광주에 28년을 산 '나'역시 저런 기대감과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고, 내가 느낀 우리 부모님, 그리고 뭇 어른들 역시 전부가 저런 기대에 부응하는 사람들은 아니다. 폄훼하려는 것이 아니라, 광주도 그냥 보통 사람들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광주는 정치적으로는 대부분 진보의 편에 서있으나, 시민의식이나, 인권에 대한 감수성 등이 특별히 다른 지역에 비해 더 우월하지는 않다는 생각이다. 정치적 성향의 진보는 순전히 국가 폭력에 대한 반감에 의한 것이라 생각한다. 광주를 포함한 호남의 정치적 외골수 기질과 태도는 태극기 부대나 TK와 다름없다는 생각이다. 실제로, 타 지역에서 광주에 정착하는 사람, 특히 시민사회 운동 종사자나 종교적 색채를 띤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다들 하나같이 광주에서 느끼는 묘한 보수성을 말하곤 한다. 그러나, 나는 광주를 포함한 호남의 그러한 감각과 정치적 결단이 분명히 역사의 진보를 이룬 결정들이라고 생각한다. 


 민주화의 성지로, 타 지역 민들에게 인권, 평화, 시민의식이 높을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왜 특별히 더 나은 것은 없을까? 5.18의 민주화 성지, 혼란 속에서도 질서와 평등 나눔을 실천했던 광주 시민정신이 왜 우리 세대까지 계승되지 않았을까? 왜 나에게 5.18은 그저 현장학습의 장소, 지루한 수업시간에 그나마 흥미롭게 들을 수 있는 다큐멘터리 시청시간 정도로 그쳤을까? 5.18은 겪은 분들, 나의 부모님들, 베이비붐 세대의 광주 분들은 자녀들이 5.18을 어떻게 기억하길 바랄까? 공포로 기억하길 바랄까? 왜 우리 세대까지 5.18은 잔혹한 상처, 그리고 "공포"로 기억하고 있을까?


 광주에서 나고 자란 당사자 입장에서 보면, 5.18은 아직까지도 국가적으로 뭔가 매듭이 지어져 있지 않은 상태라고 느낀다. 그렇게 뭔가 미완으로 남은 이상, 상처는 덧나고 곪고 깊어진다. 광주 내부, 특히 아주 사적인 가정의 공간에서 5.18은 부모의 대단한 무용을 곁들여 들려줄 영웅담이 아니다. 가장 작은 단위의 가정이라는 교육공간에서 5.18은 여전히 고통과 상처, 공포의 기억일 뿐이다. 가족이나 친척, 아주 가까운 지인이 5.18의 희생자라면 더욱 그렇다. 5.18을 이야기할 때면, 여전히 떨리는 목소리로, 그날의 공포를 선명하게 들려준다. 총알이 집을 뚫고 들어와 죽은 이웃의 이야기를 듣고는, 솜이불로 온 가족이 기어들어가 있었다는 이야기, 이웃이 옥상에 빨래 널다가 죽었다는 이야기. 영화나 매체에서 소개된 내용과는 다른 차원의 아주 일상적인 것들과 맞닿아 있는 공포 이야기가 넘친다.


 호남은 늘 국가 발전에 소외를 당해왔다. 5.18도 거기에 한몫을 했으리라. 그 덕인지 광주에 있는 대기업은 KIA 하나다. 금호라는 호남뿌리의 기업은 아시아나 항공이 대한항공에 합병되면서 대기업보다는 단출한 기업이 되었다. 광주에서 여성들의 일자리는 두 분야 중 하나다. 간호사 아니면, 교육계 종사자 이렇게 둘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광주는 광역시 중 전형적인 소비도시에 속한다. 취업과 일자리는 도시의 생명력이다. 광주에서 대학을 다녀도 취직할 직장이 마땅치 않다. 모두 서울과 수도권의 기업들을 목표로 취업준비를 한다


 이러한 배경 탓에 91년생인 나의 학창 시절을 떠올려 볼 때, 학교라는 우리에서 'in 서울'만을 바라보고 서울인근 대학에 가기 위한 존재들로 길들여졌다. 광주의 모든 고등학교는 그해 SKY 대학에 몇 명 보냈는지 자랑스럽게 현수막을 걸었다.  'in 서울'을 못한 사람들이 절대적으로 다수인데, 나는 '서울도 못 가는 낙오자 구나'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나는 광주에 있는 호남신학대학교라는 지방대 중의 지방대라고 할 수 있는 대학에서 학위를 했다. 신대원을 입학하고 '광주'라는 지방의 정체성을 내면화하기 전까지, 학창 시절부터 쌓인 '지방'이라는 키워드는 열등감과 피해의식의 근원이었다. 지방소외가 광주만의 일은 아니지만, 적어도 광주라는 도시에서  '지방소외'라는 이슈는 5.18과 관련이 없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5.18을 직접 경험한 나의 부모세대의 "공포"를 초등학교 시절부터 간접적으로 경험하고, 5.18을 포함한 다양한 이유로 인한 지방소외와 맞물린 입시경쟁에서 서울에 진입하지 못한 나는, 낙오자라는 셀프 낙인을 찍었다. 광주에서 태어나 그런 공포와 열등감 피해의식이 내면화된 '나'라는 존재. '나' 개인의 노력을 차치하고서라도, 민주화 성지인 광주의 자랑스러움은 왜 '나'에게 그토록 효능감이 없었을까?


 5.18 관련 논문들을 봐도, 역사적인 자료로서 정리(?)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아직까지도 보상 문제든, 역사적 기록으로든 각계각층 단위에서 정확하게 세부적으로 정리가 안 된 느낌이다. 그러니 그걸 성찰하고, 숙고해서 뭔가 새로운 원동력으로 다음세대에게 긍정적 에너지나 광주의 자랑스러운 자원(?) 같은 걸로 계승되지 못한 부분이 있다. 매듭지어지지 않은 5.18의 문제. 여전히 그날의 공포를 기억하며, 그 공포를 우리 세대에 까지 유산으로 물려주고 있는 광주에게, 5.18은 아직 민주화 성지라는 자존심에 불과하지 않나?


 자존심은 남과 비교했을 때, 얻어지는 비교우위에서 나온다. 5.18 민주항쟁, 민주화 성지라는 수식어의 의미를 "너희는 그렇게 피해 안 당해봤지?"라는 비교 우위를 점하는 알량한 자존심에 머물게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다. 광주 출신인 우리 개인들은 다른 도시들이 겪지 않은, 심지어 서울도 겪지 않은 엄청난 희생과 피 값을 "자존심"으로 간직해선 안된다. 나의 고향이자 나의 뿌리인 광주와 5.18을 내 삶의 원동력으로 삼으려면 우리는 5.18을 어떻게 기억해야 할까? 아직 국가적 차원에서 미완으로 남은 5.18에 대한 매듭은 그것대로 두더라도, 여전히 과잉 경쟁과 자본주의에서 상실되고 있는 인간성의 회복을 5.18을 유산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이 시대를 살아가는 광주 출신 모두에게 상처, 희생, 공포 말고, 5.18의 새로운 원동력 필요하지 않을까? 


 한강은 5.18의 기억을 자신의 창작의 원동력으로 삼아 노벨 문학상이라는 최고로 권위 있는 상을 받았다. 우리는 한강을 또 하나의 광주의 자존심으로 내세우지 않길 바라본다.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이 또 다른 '한강의 기적' 여러 매체에서 말한다. 박정희 정권 시절의 한강의 기적은 엄연히 서울의 기적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한강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광주사람들에게도 정말 유의미한 한강의 기적이 될 수 있지 않을까? 5.18이 한 개인에게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 본을 보여주었으니 말이다. 전국에 아니 전 세계 퍼져서, 아직 5.18을 공포로 기억하는 광주 출신의 모든 개인에게, 5.18이 각자의 삶에서 큰 원동력이 되는 한강의 기적이 이뤄지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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