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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가다 Jun 13. 2024

허공을 움켜쥐는 서러움

  한 남자가 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총명했고, 어머니를 끔찍하게 아끼던 효자였다. 그의 어머니는 예의가 바르고 똑똑한 첫 아이에게 열과 성을 다했다. 아들에게 최고의 교육을 해주고자 좋다는 학원에 등록하고, 유능한 과외교사를 붙였으며, 소위 학교에서 치맛바람을 날려가며 아들을 좋은 대학에 입학시켰다. 그 아들은 어머니에 대한 감사함과 장남에 대한 당위로 군대에 가서까지 하루에 한 번 어머니께 안부 전화를 걸었다. 주위에서도 세상에 그런 아들은 없다고 했단다. 그랬기에 아들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컸던 걸까. 아들이 결혼하고 싶다는 사람을 소개했을 때 어머니는 그 여자가 마음에 들지 않았고, 강하게 반대를 했다. 하지만 자식 이기는 부모가 없다는 말처럼 그들은 결국 결혼을 했다. 그리고 아들과 어머니의 사이는 차차 멀어져 갔다. 어머니는 그 상황에 크게 분노하고 슬퍼하고 서러워하셨다. 물론 모자의 사이가 멀어지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일들이 작용했지만 대부분은 아들이 자기 가정을 꾸려가며 생기는 일들 때문이었다.


  그 모자는 나의 시어머니와 아주버님이시다. 어머니는 ‘딸이 없어서 그런지 자기의 마음을 속 시원하게 털어놓을 곳이 없다’고 하셨다. 아들들에게 자기의 지난날과 그 서러움을 이야기하려고 하면 아들들은 종종 공감해 주기보다는 해결책을 제시하려고 했다. 아들들은 엄마가 괴로워하는 것을 원치 않았을 테니까.     


“아이고 엄마, 그만 좀 하세요. 그거 뭐 좋은 얘기라고.. 그럼 엄마만 너무 스트레스 받아요. 너무 예민하게 받아들이지 마세요.”     

 

  어머니는 그런 말들이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다고 답답해하셨다. 그래서 결국 남의 딸인 나에게 종종 털어놓으신다. 짧게 통화해야지 하면서도 자꾸 길어진다며 미안해하셔서 그냥 편안하게 말씀하시라고 했다. 서러운 사람의 이야기 본능을 누가, 어떻게 막을 수 있단 말인가.     


“너 한번 들어봐라. 첫째 아들이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니? 내가 지를 어떻게 키웠는데.. 내가 걔 어릴 때 치맛바람을 얼마나 날렸는데? 나 유명했어~! 공부 좀 한다는 애들 엄마도 다 나한테 와서 정보 묻고, 내가 학교 다 쫓아다니고 그랬지. 난 간식도 한 번도 사다 먹인 적이 없다. 고기도 항상 한우로만 사다 먹였어. 애들이 학교에서 올 때 한 번도 집을 비워 본 적도 없어. 집에 왔을 때 항상 반겨주려고 어디 나갔다가도 애들 집에 올 시간 되면 항상 그 전에 들어왔지. 그렇게 대학도 보낸 건데 그걸 자기가 잘해서 간 줄 알아. 걔가 얼마나 효자였는지 아니? 주위에서 나를 얼마나 부러워했는데! 그러던 애가 딱! 결혼하고 나서 변한 거야. 걔가 우리 사이를 이간질한 거야. 그때 내가 끝까지 말렸어야 되는데.. 정말 나한테 이럴 수는 없어!”     

  

  한 시간 반 동안 이어진 통화의 요지는 이러했다. 아들이 변한 것은 결국 모두 첫째 며느리 탓이라는 것이다. 어머니와 아들 사이에 변한 환경은 단 하나, 새로운 사람을 만나 결혼을 했다는 것뿐이었으니까. 나는 결혼하고 나서부터 쭉 어머니께 이 이야기를 들어오면서 어머니와 형님이 참 상극이구나 생각했는데 어머니의 울먹이는 목소리를 들으니 한편 정신이 번뜩 차려졌다.     


‘뭐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혹시 아들이 있는 나에게도 미래에 이런 순간이 오려나? 언젠가 내 아들이 결혼을 하게 되면 나는 마음을 새롭게 고쳐먹어야겠구나.’     

  

  어머니의 옛날이야기를 연이어 7시간 동안 들어본 적이 있는 나는, 어머니가 생각하는 본인의 헌신과 희생이 초라해져 버린 지금을 견딜 수 없어 하시는 것이 몹시도 안타까웠다.     

  

  신형철의 시화집인 <인생의 역사>를 읽다가 책 속에 인용된 나희덕의 시, ‘허공 한 줌’에 눈이 갔다. 시를 읽고 나자 어머니가 떠올랐다.


 이런 얘기를 들었어. 엄마가 깜박 잠이 든 사이 아기는 어떻게 올라갔는지 난간 위에서 놀고 있었대. 난간 밖은 허공이었지. 잠에서 깨어난 엄마는 난간의 아기를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이름을 부르려 해도 입이 떨어지지 않았어. 아가, 조금만, 조금만 기다려. 엄마는 숨을 죽이며 아기에게로 한걸음 한걸음 다가갔어. 그러고는 온몸의 힘을 모아 아기를 끌어안았어. 그런데 아기를 향해 내뻗은 두 손에 잡힌 것은 허공 한 줌뿐이었지. 순간 엄마는 숨이 그만 멎어버렸어. 다행히도 아기는 난간 이쪽으로 굴러 떨어졌지. 아기가 울자 죽은 엄마는 꿈에서 깬 듯 아기를 안고 병원으로 달렸어. 아기를 살려야 한다는 생각 말고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기는 울음을 그치고 잠이 들었어. 죽은 엄마는 아기를 안고 집으로 돌아와 아랫목에 뉘었어. 아기를 토닥거리면서 곁에 누운 엄마는 그 후로 다시는 깨어나지 못했지. 죽은 엄마는 그제서야 마음 놓고 죽을 수 있었던 거야.     

이건 그냥 만들어 낸 얘기가 아닐지 몰라. 버스를 타고 돌아오면서 나는 비어 있는 손바닥을 가만히 내려다보았어. 텅 비어 있을 때에도 그것은 꽉 차 있곤 했지. 수없이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면서 그날 밤 참으로 많은 걸 놓아주었어. 허공 한 줌까지도 허공에 돌려주려는 듯 말야.                                                          
 - 나희덕, 「허공 한 줌」     

  

  시에 나온 것처럼 엄마의 두 번의 죽음은 결국 지극한 사랑의 결과다. 나의 시어머니는 시에서처럼 자식을 너무 사랑해서 죽어가시는 듯했다. 흔히 홀로서기라고 하면 부모의 도움 없이, 혹은 타인의 도움 없이 오롯하게 독립하는 것으로 이해하기 쉽다. 하지만 부모로부터의 독립은 차라리 쉬운 게 아닐까. 진짜 어려운 것은 자식으로부터의 홀로서기인가 보다. 우리는 자식을 어디까지 움켜쥘 수 있을까. 허공을 움켜쥐는 어머니의 서글픔을 나는 아직 알 수 없다. 나희덕 시인이 수없이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면서 많은 것을 놓아주는 마음을 나는 과연 배울 수 있을까. 70이 넘은 한 어머니도 해내지 못하는 일이 나에게 닥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허공 한 줌’을 곱씹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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