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동이에게 하루에 딱 한 번만 화내자고 다짐했던 날들이 많다. 동동이가 말을 잘하게 되면서 더 그런 날들이 많아졌는데 말에 비해 행동의 수준이 낮아 자주 화가 났다.
50분 동안 밥을 반도 못 먹어서 잔소리를 하면,
“저는 밥 먹는 속도가 원래 느려요! 강요하지 마세요!”라고 하고,
숙제를 안 하고 놀고 있길래 숙제부터 하라고 하면,
“숙제는 이따 자기 전에 할 거예요. 다 생각하고 있다구요. 지금은 놀면서 쉬고 싶어요. 피곤하니까요!” 한다.
아직 초등학교 1학년이라 행동의 수준을 운운하는 것이 야박하긴 해도 말하는 것을 보고 있으면 어른인 나도 울컥해서 동동이가 8살이라는 걸 잊고 화를 내게 된다. 특히 가족끼리 보드게임을 할 때 보면 가관도 이런 가관이 없다.
주사위 게임에서 자기가 질 것 같으면,
“아 엄마! 주사위 너무 낮게 던졌잖아요!”
할리갈리 도중에 내가 종을 쳐서 카드들을 가져가면,
“아 이거 내건데! 내가 반만 가져갈래요!”
이렇게 떼를 쓰면 다시는 너랑 게임을 하지 않겠다고 하자,
“아 엄마 아빠도 반칙했는데!!”하며 억울해하는 식이다.
자기 주사위가 낮게 나오거나 게임에서 지면 소리를 지르고 우는 통에 남편과 나는 다시는 너와 게임을 하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고는 게임판을 치워버렸다. 그랬더니 분해서 한다는 소리가 나를 멍하게 만든다.
“엄마 죽었으면 좋겠어요!! 엄마가 다른 엄마랑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이 말을 듣기 전 어느 날, 정신과 의사가 TV에 나와 육아에 대해 고민하는 보호자를 상담하는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그 엄마는 자신의 아이가 자기에게 죽으라고 했다면서 그 말에 너무 큰 충격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그때 의사는 엄마에게 아이들은 분노했을 때 그런 말을 할 수 있고, 진심이 아닐 가능성이 크며 아직 표현의 무게를 제대로 알지 못하니 그냥 화가 많이 났다고 생각하라는 조언을 했다. 그때 난 아무 생각이 없이 고개를 끄덕였는데 막상 내가 같은 상황이 되어 아이에게 그 말을 직접 들어보니 아무리 진심이 아니라고는 해도 말의 무게로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내게는 억울한 마음이 컸다.
‘내가 무슨 잘못을 얼마나 했다고 저렇게까지 말하는 거지?’ 유치하지만 아이에게 인간적으로 실망했고, 마음이 아팠고, 서러워서 눈물이 났다. 심지어는 그 순간에 갑자기 나의 어린 시절이 떠오르더니 내 엄마에게 상처받았던 일들과, 내가 육아를 하며 겪었던 힘든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이래서 무자식이 상팔자라 했던가! 아들 키워 봤자 소용없다더니!’와 같은 옛날 어른들의 말부터 인터넷에서 떠도는 ‘너를 낳고 나를 잃었다’라는 문구까지 육아에 배신당한 말들로 머릿속이 꽉 찼다.
“그래 좋아! 나도 이제부터 니 엄마 안 해! 니가 엄마 죽었으면 좋겠다고 했지? 그럼 이제 엄마 죽었다고 생각해!!”
그렇게 소리를 치고 방으로 들어와 이상히 흐르는 눈물을 닦고 있었다. 남편은 지금 둘이 뭐 하는 건가 싶은 얼굴로 우리를 바라보았는데 나중에 들어보니 너네끼리 시트콤을 찍는 줄 알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때는 뭐가 그리 심각한지 나도 동동이도 각자의 방에 틀어 박혔다.
10분쯤 지났을까. 안방 문이 빼꼼히 열리더니 동동이가 네 번 접은 종이 하나를 놓고 가기에 펼쳐 보았다. 거기엔 연필로 쓴 삐뚤빼뚤한 글씨가 단단히도 적혀 있었다.
‘엄마 정말 미안해요. 앞으로는 할리갈리 할 때 화를 내지 않을게요. 꼭 내 엄마가 되어주세요.’
아까는 화가 나서 눈물이 났는데 이번에는 주책없게 감동의 눈물이 났다. 전부터 아이에게 예쁜 말을 쓰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고마워, 사랑해, 미안해’를 가르쳤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힘든 말이 ‘미안해’이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면 시간 끌지 말고 빨리 사과하는 사람이 정말 멋진 사람이라고 말해 왔었다. 하지만 나 역시 누군가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도 사과의 말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동동이는 10분 만에 그걸 해낸 것이다. 아니, 종이를 준비하고 쓸 말을 생각하고 접어서 내게 가져온 시간을 다 합쳐서 10분이니 사과하기로 마음먹기까지는 5분이나 걸렸을까. 내가 동동이를 가르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동동이에게 배워야 할 지경이다. 어른인 내가 부끄럽게도 동동이의 말에 소리를 지르며 똑같이 반응하고 있었으니까. 나는 동동이 편지에 용기를 얻어 바로 아이에게 가서 그 힘든 사과를 하고,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동동이와 내가 서로 부둥켜안고 울고 있으니 문득 뒤통수가 따가웠다. 돌아보니 남편이 아까보다 더 하찮은 것을 보듯 우리 둘을 쳐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