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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가다 Jun 13. 2024

피라미드에 묻힐 운명

  사람들은 아이들을 귀엽다고 하는데 난 어릴 때부터 나보다 어린아이들이 귀엽지 않았다. 지금 그 이유를 가만히 생각해 보면 어린아이들만 누리는 그 ‘떼씀’이 가장 싫었던 것 같다. 나는 어릴 때 떼쓴 게 기억나지 않아 조금 억울한 마음이 든다. 하지만 분명 나도 떼를 쓴 적이 있었을 것이다. 아이들은 다 그러니까. 그래야 하니까. 이런 이유로 중학교 때부터 20대까지는 부끄럽게도 아이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명절에 큰집에 가면 온통 사촌 오빠들뿐이었다. 아빠는 막내였는데 큰아빠들 중 한 명도 딸을 낳은 분들이 없어 나는 홍일점이었다. 그런 사촌오빠들이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아 데리고 와도 예쁘고 귀엽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


“너도 참 대단하다. 우리 집에 여자는 너 하난데 어떻게 조카 한 번을 안 안아주냐?”

“대신 몇 번 놀아줬잖아. 나 애들 별로 안 좋아해.”

“여자들은 대부분 아기 좋아하던데..”

“오빠, 그거 편견이야. 나 같은 사람도 많을 걸.”


  결혼을 하더라도 아이는 갖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한 생명을 책임지는 일이 얼마나 버거울지 상상도 되지 않았고, 무엇보다 때때로 아기의 울음소리를 듣는 것이 진정 괴로웠기 때문이다. 그런 내가 허니문 베이비라니. 그렇게 철저하게 피임을 해 왔는데 신혼여행을 너무 휴양지로 가는 바람에 딱히 할 게 없어 잠깐 방심한 틈에 그렇게 되어버렸다. 그때는 나의 임신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큰 축복이었다.


  동동이를 낳고 조리원에서 집으로 돌아온 직후부터 육아가 30일 연속 야근보다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동동이는 초보 엄마인 내가 안으면 불편한지 울음을 그치지 않았고, 나는 기저귀 채우는 것에 서툴러 항상 똥오줌이 샜다. 한 번은 동동이를 안고 분유를 먹이는데 똥이 샜다. 그날따라 많이도 쌌는데 동동이의 옷과 내 옷까지 전부 똥 범벅이 되고 말았다. 목도 못 가누는 아기를 눕혀 옷을 벗겨 대충 밀어 두고 따뜻한 물을 욕조와 대야에 받는 동안 동동이는 떠나갈 듯이 울었다. 나는 초조한 마음에 울면서 물 온도를 맞추고 조심조심 씻기고 입혔다. 정신을 차려보니 거실과 욕실이 모두 똥이었다. 울음을 그치지 않는 아이를 안고 여기저기 묻은 똥과 내 볼을 흐르는 눈물을 번갈아 닦았다.


  아이를 보다가 끼니를 거르는 건 다반사였다. 너무 배가 고파 컵라면에 물을 붓고 기다리는데 동동이가 또 울기 시작했다. 우는 아이를 달래고 나와보니 면발은 국물을 모두 빨아먹고는 퉁퉁 불어 있었다. 겨우 컵라면 하나 못 먹은 것뿐인데 뭐가 그리 서러운지 눈물이 났다. 나는 동동이가 제발 빨리 말을 할 수 있게 되길 기도했고, 이 육아휴직이 얼른 끝나기를 바랐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말도 못 하게 힘든 육아지만 아기가 너무 예쁜 거다. 원래 아이를 싫어하던 사람도 자기 아이는 예뻐한다고 했는데 그걸 넘어서 모든 아기가, 모든 아이가 다 예뻐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매일 사진을 찍고 일기를 써서 지금은 8권의 육아 다이어리를 만들어 책꽂이 한편에 꽂아 두었다. 이 이해할 수 없는 변화를 나는 아직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그때부터 노키즈 존에 대해 생각하고, 김소영 작가의 <어린이라는 세계>와 같은 에세이도 관심을 가지고 읽기 시작했다.


  동동이는 이제 무럭무럭 커서 어느덧 8살이 되었다. 그러는 동안 그 옛날 ‘제발 동동이가 말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내 바람도 호되게 이루어졌다. 요즘 내 귀에서는 동동이의 쉴 새 없는 말 때문에 늘 피가 흐르는 듯하다. 하도 말을 많이 해서 오히려 서로 투닥거리는 경우도 많아졌다. 동동이의 성격은 남편보다 나를 훨씬 많이 닮았는데 이상한 승부욕으로 말꼬리를 잡는 통에 나와 부딪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나를 닮아 좋은 점도 있다. 어릴 때부터 손편지를 좋아하던 나처럼 동동이 역시 편지 쓰는 것을 좋아한다는 점이다. 동동이는 글을 배운 뒤부터 내게 자주 손편지를 써 준다. 맞춤법도 틀리고 띄어쓰기조차 없는 자유로운 문체지만 한 장도 버릴 수가 없다.


 - 밥을 잘 먹지 않고 물고만 있어 빨리 먹으라고 혼냈을 땐,

‘엄마안녕 그동안아침과적녁에너무힘들었지이재그럭해하지 않을개’     

 

- 지겹도록 역할놀이를 요구해서 재미없어서 안한다고 소리친 날엔,     

‘엄마사랑해요어재개속 놀아달라고 해서 죄송해요 그래도 나는 세상에서엄마를 제일사랑해요 가족파워로악당을이겨내자 가족파워’     


 - 퇴근 후 힘들어서 소파에 누워 있는 날엔,     

‘엄마그동안저키우느라힘드셨죠?이제엄마힘들게안할게요 ♡메리크리스마스 저는 엄마를우주끝까지같다가지구로네려와서 900000000바퀴돌때까지사랑해요’     


 - 할리갈리 하다가 자기가 지면 온갖 짜증을 내며 반칙을 쓰는 아이에게 그렇게 하면 게임을 더 이상 안 한다고 하자,     

‘아까할리갈리할때죄송해요 그래도전엄마가좋아요 사랑해요♡ 반칙안쓸게요 한판만더해요’     


 - 밖에 다녀와서 손발도 안 씻고 청개구리처럼 굴어 손발 전부 혼자 씻으라고 했더니,     

‘다음부터는 손잘씻을게요 발을씻겨주세요’     

  

  모든 미안한 마음을 말보다는 편지로 쓴다는 것이 함정이지만 빠르고 솔직하게 사과하는 아이를 보면 나보다 나은 것 같아 어른인 내가 부끄러워진다.      


그러다 최근에는 이런 편지를 받았다.


‘엄마가 저앞에 나와서 감사해용 사랑해요♡ 엄마가 죽으면 피라미드에 묻어줄게요.


  요즘 한창 이집트 피라미드 책을 읽더니만 피라미드라니. 정말 감동이라고 해야 하나... 난 죽어서도 호강하겠다... 피라미드는 원래 살아있을 때 만드는 거라며 곧 만들기 시작할 거라는 동동이의 말에 앞으로 내 무덤 보는 재미로 신나게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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