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할아버지가 있다고 굳게 믿은 것은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였다. 주위의 친구들은 이미 초등학교 교실 안에서 산타 같은 것은 없으며 그 선물들은 전부 부모님이 준비하는 거라고 뭔가 으쓱거리며 말했지만 난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았다. 그렇다면 우리 부모님은 왜 준비하지 않았나. 그럼 간혹 놓여 있던 선물은 무엇인가. 왠지 우리 부모님은 산타를 대신할 것 같지 않았다. 초등학생까지만 어린이라는 생각은 그때에도 확고했으므로 아직 어린이였던 6학년 때의 나는 교실에서 나오는 말들을 짐짓 모른 척했다. 그리고 그해의 크리스마스는 어땠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동동이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를 많이 닮았다. 남자아이인데도 수다스럽고, 쉽게 상처를 받는다. 친구들과 만나서 놀다가 헤어질 때가 되면 친구들은 쿨하게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데도 동동이는 입술을 삐쭉거리며 울음을 참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친구들을 다시 만나고 싶다고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다. 할아버지나 할머니께서 집에 오셨다 가시면 헤어지는 길에 또 울음바다가 된다. 남편은 그런 아이를 신기한 듯 바라보지만 나는 꼭 어릴 적 할머니가 댁으로 돌아가시는 길에서 항상 서럽게 울던 내가 떠올라 늘 조금 안타까웠다.
동동이는 올해 크리스마스에도 조금 기대하는 듯 말했다.
“올해 크리스마스에도 산타할아버지가 나한테 선물을 주실까요?”
“그러게 너는 어떻게 생각해? 올해는 착한 일을 많이 한 것 같아?”
아이는 조금 머뭇거리더니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아니요.. 사실 그래서 안 주실 것 같아요.”
“엄마도 잘 모르겠다. 만약 못 받더라도 실망하지는 마. 알았지? 초등학교 기간 내내 기회가 있잖아. 못 받으면 또 내년에 착한 일 많이 해서 받으면 되지.”
“네..”
4년 동안 꾸준히 산타할아버지께 선물을 받아 온 동동이였지만 올해는 유독 자신이 없나 보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얼마나 말을 안 들었는지 지난 1년을 돌이켜 보면 육아 때문에 우는 엄마를 몇 번이나 목격했으니. 자기도 1년 동안의 만행을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는 듯했다.
2년 전부터 동동이는 산타할아버지가 오시면 선물을 배달하느라 힘드셨을 테니 트리 밑에 간식을 두자고 해서 컵라면과 손편지를 두었었다. 그럼 어김없이 동동이가 자는 동안 산타할아버지가 오셔서 먹어치우고는 그 자리에 선물을 두고 가셨기 때문에 산타할아버지는 분명 있다고 굳게 믿는 아이였다. 남편은 종종 우리끼리 있을 때 동동이가 설마 지금도 계속 산타를 믿겠냐며 일부러 믿는 척하는 거라고 했지만 내 생각은 단호했다. 동동이는 산타를 굳게 믿고 있었다.
“엄마..!”
“왜?”
“음.. 제가 엄마 아빠 말 잘 듣고 싶었는데 마음대로 잘 안 돼요. 죄송해요. 내년에는 노력 많이 할게요. 올해는 못 받아도 내년에는 받을 수 있을 거예요. 혹시 제가 잠들면 꼭 트리 밑에 산타할아버지 드릴 컵라면 놓아주세요. 꼭이요”
오랜만에 들어보는 착한 목소리였다. 자신 없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라 귀를 대고 들어야 했지만 분명 착했다.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순간이었다. 나는 알겠다고 대답하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올해는 크리스마스이브 밤까지 쭉 여행이었는데 비행기 연착으로 25일 새벽에나 집에 도착했고, 동동이는 그 말을 끝으로 차에서 잠들었다.
아이가 원하는 선물은 해외배송과 연말특수로 배송이 지연되는 바람에 아슬아슬하게 여행 중에 배송되어 현관문 앞에 놓여 있었다. 정말 다행이었다. 하마터면 산타할아버지가 최초로 동동이에게 쓰디쓴 가르침을 주실 뻔했으니까. 나는 택배를 가지고 들어와 짐은 내일 풀더라도 선물 포장은 꼭 해야 한다며 여행의 피로를 가득 안은 채 포장을 시작했다. 곧이어 트리 밑에 커다란 선물 상자가 놓였다.
다음 날은 가족들 모두가 늦잠을 잤다. 늘 크리스마스 아침에 설렘 때문에 새벽같이 일찍 일어나던 동동이도 10시 즈음이나 깬듯했다. 나는 비몽사몽으로 침대에 누워있었는데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 아침이 시작됐음을 알았다.
“엄마! 엄마!! 이것 보세요! 산타할아버지가 선물 주고 가셨어요!!!”
저렇게 행복한 표정이 또 있을까? 아이는 환희에 가득 차서 선물상자를 들고 안방으로 뛰어 들어왔다. 포장을 풀어 마인크래프트 앤더드래곤 하우스 레고를 본 아이는 세상을 다 가진 듯한 얼굴이다. 지금 아이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 어떻게 오늘을 기억할까. 문득 궁금했다.
“어머 신기하네? 산타할아버지는 동동이가 착한 아이라고 생각하시나 보다. 와! 산타할아버지 너무한데? 산타할아버지!! 어떻게 된 거죠?”
나는 킥킥거리며 말했다. 아이는 부끄러워하며 레고 상자를 들고 거실로 뛰어나갔다. 조금 뒤 크리스마스 아침을 맞이한 집 안이 동동이가 흥얼거리는 캐럴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