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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가다 Jun 20. 2024

초등학교 1학년의 교실 풍경

  이번 주는 아이 학교의 독서주간이다. 아이는 아직 1학년이라 엄마가 학교에 오는 것을 엄청 좋아해서 휴직한 김에 1년 동안은 아이의 학교 행사에 많이 참여하리라 다짐했던 터였다. 그래서 학부모 폴리스도 맡고, 학부모 그림책 봉사 동아리에도 가입했다. 독서주간에는 학부모 그림책 봉사동아리 사람들이 한 주 동안 8시 50분에서 9시 사이에 직접 고른 그림책을 각 교실에 가지고 들어가서 읽어주는 봉사가 진행된다. 나는 1학기 때 이미 아이들이 좋아할 만하다고 생각한 책을 읽어 주었다가 아무도 웃는 학생이 없어(심지어 우리 아이도 웃지 않았다! 분명 집에서는 재미있다고 이 책을 읽으라고 자기가 권했으면서!) 깔끔하게 망한 전력이 있었기 때문에 2학기에는 참여하고 싶지 않았으나 아이가 이번에도 꼭 와야 한대서 어쩔 수 없이 또 가게 되었다.


  1학기 때의 경험을 떠올리며 이번에 책을 고른 기준은 감동과 의미 따위를 내려놓고 첫째도 재미, 둘째도 재미, 셋째도 재미였다. 그리하여 나는 이름도 어려운 가브리엘라 발린이 쓰고 안나 아파리시오 카탈라가 그린 제목만 들어도 재미있을 것 같은 ‘엄마 아빠를 화나게 하는 완벽한 방법’이라는 책을 골랐다. 책을 읽어주기 위해 복도에서 대기하고 있던 내 귀에 쿵쾅쿵쾅 심장 소리가 들려왔다. 계속 교단에 서고 있는 나였지만 고등학생과 달리 초등학생들은 역시나 예측 불허에다 아이들이라 워낙 솔직해서 더 긴장이 되는 듯했다. 이번에는 실패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나는 이내 담임선생님과 어색한 인사를 나누며 교실로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짐짓 활기찬 척 인사를 건네자 시끄럽고 웅성거리는 교실 안 쪽에서 누군가 큰 소리로 말했다.     


“어? 저번에 왔던 엄마다!”     


‘하하.. 제발 예전 기억은 잊어줄래?’ 아이들은 기억력도 참 좋다.     


“내 저번에도 봤었죠?(어색하게 웃으며) 오늘 읽어볼 책 제목을 다 같이 읽어볼까요?”


  아이들은 책 제목을 크게 따라 읽자마자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무래도 1학기 때의 책보다는 재밌게 느꼈거나 이제 자기들끼리도 친해져서 그런지 분위기는 한층 가벼웠다. 여하튼 1학기 때의 정적보다는 훨씬 나았다. 나는 도입부의 질문을 던졌다. 

    

“자자 여러분~! 여러분들은 엄마 아빠를 화나게 하는 방법을 알고 있나요?”


  이 질문을 시작으로 서로 경쟁하듯 산만한 대답이 오고 갔다. ‘방을 어지른다, 엄마 아빠 말을 반대로 한다.’ 등의 상식적인 대답부터 ‘공부를 안 하면 된다’라는 마음 아픈 답변과 ‘침대에 똥을 싼다’는 다소 엽기적인 대답까지 다양한 답변들이 끊임없이 소란스럽게 이어졌다. 순간 ‘이번에는 아예 시간 안에 책을 못 읽어서 망하는 걸까’라는 걱정이 스쳐갔다. 아이들의 수다는 책 읽는 내내 계속되었고 읽는 족족 수많은 질문이 쏟아졌다.


“어처구니없는 질문이 무슨 뜻이에요?”

“저기서 엄마가 왜 화난 거예요?”

“저희 엄마는 자고 나면 다 용서해 주던데 저 책 속에 아줌마는 왜 계속 화내요?”

“똑같은 음악 계속 들으면 왜 화가 나요?”


  호기심 넘치는 궁금증들이 꼬리를 이었다. 나는 10분 동안 적절히 아이들의 질문에 대답을 하면서 책 내용을 모두 읽고 정리하는 멘트까지 무사히 마쳤다. 1시간 같은 10분이 지나 종이 치자 사뭇 옆에 계신 담임선생님이 대단하게 보였다. 나는 선생님께 위로를 담은 표정으로 인사를 건네고 있었는데 그때 한 아이가 나를 보며 내가 담임선생님께 보내드린 것과 같은 표정으로 씨익 웃어 보였다. 위로와 격려가 뒤섞인 아이의 웃음에 나는 고마움을 담아 눈을 찡긋해 보이며 교실을 나섰다. 뒤돌아 나오는 순간까지도 재잘재잘 아이들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쉽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한편으로는 거침없이 질문하던 아이들이 귀엽게 느껴졌다. 그러면서 문득 질문이 사라진 고등학교 교실이 떠올랐다.

      

‘아이들이 참 질문이 많구나. 고등학교 교실에는 수업 시간 내내 정적이 흐르는데.. 그 아이들도 초등학교 때는 이렇게 하고 싶은 말도 많고, 질문도 많이 했겠지?'






  지금 고등학교 교실은 왜 이렇게 되었을까. 새삼 질문이 사라진 교실 풍경을 떠올리며 다짐해 본다. 

     

  동동이에게는 정답만 강요하지 말아야겠다. 터무니없는 이야기도 일단 들어 보겠다. 공부의 영역이 넓다는 것을 이해하고 알려 주어야겠다. 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과학 같은 교과에만 몰두하게 하는 부모에서 조금 벗어나겠다.(하지만 완전히 놓을 수 없는 못난 어미를 용서해 다오.) 아이에게 열린 질문을 자주 던져 주어야겠다. 같이 오래 책을 읽겠다. 교환일기를 계속 써 나가겠다. 틈나는 대로 소통하겠다. 질문하는 방법을 가르치겠다. 그리고 이것들을 나의 학생들에게도 적용해야겠다.


  겨우 10분을 겪고 많은 것을 반성한 오늘이었다. 


  내가 오늘 본 이 아이들이 더 커서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에 가더라도 자기의 생각을 말하고 궁금한 것이 생겼을 때 언제든 질문할 수 있는 사람으로 커 나가 주길, 어디에 있든 계속 반짝반짝거리며 자신의 존재감을 어필해 주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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