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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가다 Jun 21. 2024

외식 귀신

  요즘 동동이는 매일매일 외식을 하자고 조른다. 처음엔 집밥이 맛이 없나 싶어 내심 걱정했는데 물어보면 또 그건 아니란다. 외식이 한두 번이지 가격이 비싸니 매일매일 나갈 수도 없는 노릇이라 왜 그렇게 졸라대는지 물었다.


  “우리 이제 거지되겠어! 너 왜 자꾸 외식하자고 하는 거야? 식당에 가면 핸드폰 게임 하게 해주니까 그러지?”


  아이는 억울한 듯 언성을 높였다. 


“아니에요! 아니에요! 그냥.. 외식하면 엄마 아빠랑 밤 산책도 하고 재밌어요.”

   

  핸드폰을 하기 위한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다. 외식은 나도 참 좋아하지만 매일 할 수는 없기에 적당히 진정시키는 게 매일 나의 과제였다. 그런데 하필 오늘은 수영학원에서 돌아온 동동이의 표정이 예사롭지 않았다. 배영을 도구 없이 하다가 물을 잔뜩 먹어서 배가 아프고 힘이 든다며 시무룩해했다. 그러면서도 외식은 하고 싶단다. 난 아픈데 외식을 하는게 말이 되냐며 꾀병인 것 같아 괘씸하게 생각했는데 평소보다 힘이 없고 자꾸 누우려고만 하는 아이를 보니 조금씩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평소의 텐션은 분명히 아니었다.


“오늘은 영어학원에는 가지 말고 좀 쉬어야겠는데? 외식은 무슨, 배가 아프니까 죽을 먹어야 할 것 같아.”

“안돼요! 영어 학원은 꼭 가야 돼요!”

“왜 꼭 가야 돼? 몸이 안좋아 보이는데..”

“가서 친구들도 만나야 되고 클쌤이랑 제쌤도 만나야 된다구요.”

  결국 그렇게 아이는 영어학원에 갔다.

  

  남편이 일찍 퇴근했길래 동동이가 오늘도 외식을 하잔다고 하니 조금 고민하는 눈치였다. 외식을 나만큼 좋아하는 남편이지만 최근 우리는 삼겹살, 갈비, 초밥, 이자카야 등으로 이미 지출이 많았다. 남편은 고민 끝에 외식을 하기로 결정한 듯 식당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나는 문득 시무룩해져 있던 동동이의 컨디션이 정말 괜찮은지 조금 걱정이 되었다. 혹시 몰라 상태가 안좋은 아이가 편안하게 먹을 수 있는 저녁밥도 조금 준비했다. 얼마 뒤 영어학원이 끝나고 집까지 돌아오는 그 짧은 시간에 언제나처럼 또 전화가 왔다. 아까보다 훨씬 밝은 목소리였다.


  “엄마! 나이제 안아파요! 진짜요! 그럼 오늘 외식할 수 있어요?”

  “그래? 확실히 안아파? 아빠 와계셔. 그럼 외식하자. 얼른와.”


  그렇게 가족끼리 횟집에 갔고 아이는 생선구이, 산낙지, 오징어숙회, 문어숙회, 새우튀김을 잔뜩 먹고 남편과 나는 회와 매운탕에 소주잔을 기울였다. 그리고 2차로 우리 가족 모두가 사랑해 마지않는 즉석떡볶이를 먹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어느덧 캄캄해져 있었다. 아파트단지에 들어와 어스름한 가로등 불을 만나자 언제나처럼 동동이와 남편은 달리기 시합을 하기 시작했다. 늘 남편이 이기는 척하다가 져주기 일쑤인 끝이 빤히 보이는 게임이었다. 게임이 끝나자 우리 셋은 익숙하게 손을 맞잡고 ‘둥글게둥글게’를 하며 빙빙 돌았다. 빙빙 돌고 나니 아이가 나와 남편 틈을 비집고 들어와 말했다.


“엄마 아빠는 둘이 손 잡지 말아요! 내가 가운데 있을 거야!”


  동동이는 아빠랑 엄마가 둘이 손 잡는 꼴을 절대 못 보나 보다. 엄마도 아빠도 자기가 차지하고 싶은 걸까. 꼭 자기를 가운데에 넣고 손을 잡으라기에 가끔 남편이 장난으로 엄마 손을 꽉 잡고 안 놓으면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을 한다. 그럼 나는 손을 놓고 남편을 한번 흘기고, 남편은 그런 나를 보며 꼭 아이 친구처럼 킥킥대는 식이다. 그렇게 엄마와 아빠 사이에 낀 아이는 이제 가운데에 버젓이 들어 앉아 하나, 둘, 셋에 자기를 띄워 달라고 사뭇 당당히 요구한다.


“하나, 둘, 셋!”

“하나, 둘, 셋!”

“하나, 둘, 셋!”

  …


  “셋!” 소리에 한 번도 빠짐없이 “꺄악!”소리를 지르며 하늘 가까이 날아오르기를 여러 번 하고 나면 어느덧 집 앞 아이스크림 할인점에 도착한다. 그럼 거기서 아이가 좋아하는 캔디바니, 쌍쌍바니, 죠스바 같은 하드를 잔뜩 사는 것이다.


  마지막 코스는 다시 달리기다. 아이는 횡단보도를 건널 일이 없는 직선 코스에서 아파트단지까지 들어가 우리 동 앞까지 또 뛰잔다. 엄마는 도저히 배가 불러 못 뛴다고 말하고 있는데 아빠가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냅다 뛰었다. 동동이는 아차 싶은 표정으로 아빠를 부르며 따라 뛰어간다. 난 잰걸음으로 두 사람을 쫓았는데 결국 아이가 이겼는지 남편이 져주었는지 아이 표정이 싱글벙글이다.


  그 표정을 보고 알았다. 왜 그렇게 외식을 하고 싶다고 졸라대는지를. 밖으로 나가면 엄마 아빠랑 뛰어놀 수 있다. 밥을 먹을 땐 조금이지만 게임도 할 수 있고, 외식이 끝나면 엄마 아빠 손을 잡고 캄캄한 거리를 재잘거리며 하나도 무섭지 않게 돌아 온다. 둥글게둥글게 놀이와 달리기 시합은 덤이다.




  문득 어릴 적 아주 가끔 했던 우리 집의 외식 날이 떠올랐다. 우리 가족의 외식 메뉴는 늘 집에서 가까운 식당의 양념돼지갈비였는데 그 짧은 거리까지 엄마 아빠와 걸어가는 그 길에서 왜 그리 신이 났는지 모르겠다. 어쩌다 아파트에 야시장이 열리면 가족끼리 구경을 나가 그 깜깜한 밤 사이로 반짝거리는 야장의 조명들을 한참 동안 바라보곤 했다. 시끌벅적한 사람들 속에서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걷는 것만으로 얼마나 든든하고 신이 났는지, 들뜬 마음으로 해피 스텝을 밟고 있는 내가 보이는 듯했다. 아마 동동이도 그런 마음이려나.


  오랜만에 2차까지 하고 집에 돌아오니 숙제도 할 수 없는 늦은 시간이기에 쿨하게 숙제를 내일로 미룬 뒤, 얼른 씻기고 아이를 재웠다. 배는 진짜 나은 걸까? 하긴 배가 아픈 아이가 그렇게 잘 뛸 수는 없다. 걱정을 내려놓은 나는 침대에 눕자마자 곯아떨어진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며, 커서도 오늘 같은 날들을 떠 올릴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머리를 두어 번 쓰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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