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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가다 Jun 28. 2024

남편은 오늘부터 휴가 중

  남편은 친한 친구들과 매달 회비를 걷어 1년에 한 번 해외여행을 간다. 올해는 베트남 호찌민으로 간다며 며칠 전부터 미소를 감추지 못하는 남편을 보았다. 작년에는 베트남의 하노이로, 재작년에는 중국의 칭다오로 다녀왔는데 처음 친구들과 해외여행을 간다고 했을 때부터 한 번도 싫은 티를 낸 적이 없다. 다만 부러운 마음뿐이었다. 내 지인들은 남자들끼리의 해외여행은 절대 보내주면 안 된다며 펄쩍 뛰었으나 나는 딱히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나쁜 마음을 먹으려는 사람은 장소에 구애받지 않을뿐더러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먼저 걱정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저 남편이 좋은 기회에 스트레스를 풀고 충전의 시간을 갖기를 바랐다.     

  

  그런데 올해는 아이의 방학 기간이기도 하고 워낙 육아가 힘들었다. 아이는 초1 병이라도 걸린 것처럼 하루하루 나의 속을 뒤집어 놨으므로 남편이 없는 3박 4일 동안 혼자 아이를 봐야 한다고 생각하니 숨이 턱턱 막혔다. 하지만 그렇다고 반대하기도 늦어 버렸다. 결국 오늘 새벽, 남편은 분주하고도 신속하게 공항으로 향했다. 아이에게는 며칠 전부터 아빠가 3박 4일 간 출장을 간다고 말해놓았다.      

  

  남편이 공항으로 신나게 춤이라도 추며 가고 있을 때쯤 아이는 잠에서 깼다. 나는 아침에 육아를 시작하기에 앞서 오늘은 꼭 화내지 않겠다고 다짐하므로 다정하게 웃으면서 잠을 깨워주고 있었는데 깬 직후부터 아이가 돌연 아빠가 보고 싶다며 펑펑 우는 것이다. 평소에도 간혹 남편이 일찍 출근하면 아이가 아빠를 못 보는 경우도 있는데 그때는 절대 지금처럼 서럽게 운 적이 없었다. 나는 너무 즉각적으로 펑펑 우는 아이를 보고 당황해서 차분히 달래기 시작했다.


“동동아. 일어나자마자 아빠가 없는 것 같았어?”

“네. 흑흑.. 엉엉!”

“어떻게 아빠 없는 거 알았어? 어제 아빠가 얘기한 게 생각난 거야? 오늘 아빠 출장 간다고 했던 거?”

“아니요. 티비소리..(오열하며) 티비 소리가 안 나서 아빠가 없는 걸 알았어요. 아빠가 보고 싶어요. 엉엉!”     

  

  남편은 티브이를 좋아한다. 한때 아이를 위해 거실에서 티브이를 치우자는 내 의견은 남편의 거센 반대에 부딪혀 실현되지 못했다. 야구 시즌에는 경기를 보기 위해, 퇴근 전과 후에는 뉴스나 예능을 보기 위해 티브이를 켜는 사람이다. 심지어는 보지 않더라도 티브이를 켜 놓는데 어딘가에 놀러 가도 숙소에 들어가면 티브이부터 켜는 사람이라 아이도 그걸 알고 있는 듯했다.      

 

  어쨌든 예상하지 못했던 대답에 나는 대처하지 못한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오열하는 아이를 진정시키기 위해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영상통화를 요청했다. 마침 공항에 도착했다는 남편의 말에 눈물의 이산가족 상봉을 연상케 하는 영상통화가 시작됐다. 아이는 오열하느라 말을 잇지 못했고, 남편은 그런 아이를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며 연신 아이를 향한 사랑을 고백하고 있었다. 나는 영상통화로 이산가족이라도 만난 듯 몰입하는 부자의 모습이 웃겨 옆에서 피식거리고 있었다.

   

  이제 9살이 되었지만 아이는 아이인가 보다. 그렇게 아빠랑 평소에 으르렁거리더니 아침부터 아빠의 부재에 오열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앞으로 3박 4일 동안 독박육아를 하게 될 사람은 난데 도대체 왜 아이가 오열하는 건지..


  하지만 더 당혹스러웠던 것은 영상통화를 끊고 채 1분도 되지 않아 언제 울었냐는 듯 일상을 시작한 아이의 모습이었다. 평소처럼 웃고 까불면서 요상한 표정을 짓는 아이의 모습을 어이없게 바라보는데 이런 상황은 상상도 하지 못한 남편이 자꾸 걱정의 카톡을 보내왔다.


- 동동이 계속 울어?ㅜㅜ 아침부터 울었다고 해서 마음이 좀 그렇네.

- 걱정 마. 오빠는 벌써 예전에 잊혔어.ㅋㅋ

- (사진 전송)

- ㅡㅡ     

  

  나는 짧은 답장과 함께 총싸움놀이와 웃긴 표정놀이를 병행하는 아이의 사진을 전송했다. 남편은 감동이 파괴된 짧은 이모티콘으로 톡을 마감했다.


  그런데 참 이상한 하루였다. 남편이 없어 훨씬 괴롭고 힘든 육아가 될 것이라는 생각과는 반대로 오히려 둘이라는 생각에 애틋한 감정과 편안한 마음이 동시에 느껴졌던 것이다. 오늘은 오래간만에 티브이를 켜지 않았고, 같이 도서관에 가서 책도 읽었다. 도서관에서 나오는 길에 떡볶이가 먹고 싶다고 해서 분식집 데이트를 하고, 집에서 같이 보드게임을 실컷 하면서 한없이 조잘거렸다. 남편의 부재로 모자가 단결한 느낌이었달까. 남편이 돌아오면 남편에게도 이런 느낌을 선물하기 위해 나도 얼른 여행을 가야지. 훗.


  나는 오늘 평소보다 아이를 많이 안아주었고, 사랑한다고 말해주었으며, 아이의 이야기도 더 많이 들어주었다. 남편이 늦을 때마다 혼자 자기 무섭다고 하는 아이의 옆에 누워서 아이가 잠든 것을 확인하고 침대를 빠져나온 지금, 내일도 모레도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을 더 귀하게 써야겠다고 생각한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동동이가 오늘처럼 우리의 부재에 오열할 어린아이로 언제까지 남아줄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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