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아빠는 오래전부터 맞벌이를 하셨다. 그럼 아빠는 자주 술을 마시고 오셨고, 주말에는 부족한 잠을 주무시곤 하셨다. 엄마는 맞벌이를 하시면서 집안일까지 도맡아 하셨다. 아침이면 오빠와 나의 도시락을 싸는 것부터 네 식구의 아침을 준비하셨고, 저녁 늦게 퇴근하고 오시면 쌓인 빨래나 청소를 하면서 저녁을 차리시고 바로 설거지를 하셨다. 깔끔하진 않았지만 청소나 설거지를 미루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그런데도 아빠는 엄마보다 잔병치레가 많으셨다. 항상 몸이 안 좋다고 누워 계신 모습을 자주 보았기 때문이다. 그럼 엄마는 못마땅하다는 듯이 말씀하셨다.
“니 아빠는 왜 뻑하면 아프다고 난리인지. 하루도 안 아픈 날이 없다니까? 아우 꼴 보기 싫어.”
나는 그때 같이 사는 사람이 아프다는데 왜 그렇게 아빠의 ‘꼴’이 보기 싫으셨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 아빠와는 다르게 엄마는 늘 건강하셨고, 에너지가 넘치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늦게까지 일을 하고 살림까지 도맡아 했던 엄마가 항상 에너지가 넘쳤을 리 만무하다. 그러니까 건강하셨다기보다는 몸이 좋든 좋지 않든 자신의 좋지 않은 컨디션을 표현하지 않으셨다고 하는 게 더 맞는 것 같다.
그렇게 꼴 보기 싫어하시면서도 아빠가 자는 모습을 보면 늘 짠하다고 하셨다. 짜증이 많고 자주 아프셨던 아빠는 자면서도 인상을 늘 찌푸리고 계셨는데 그런 모습을 보던 엄마는 손가락을 이용해 자고 있는 아빠의 미간 주름을 펴주시기도 했다. 물론 곧 다시 찡그려졌지만. 그런 모습을 보며 저래서 부부가 사는 건가.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아픈 모습이 꼴 보기는 싫더라도 찡그리며 자는 배우자의 모습에 짠함을 느끼는 것. 그게 부부인가 싶었다.
나는 성격도 외모도 아빠를 닮았다. 조금 유약하고 자주 아팠다. 남편과 연애하던 시절, 독감에 걸린 적이 있다. 태어나서 두 번째 걸린 독감이었는데 숨을 쉴 때마다 불을 마시고 뱉는 느낌이었다. 열이 펄펄 끓었고, 숨도 쉬기 힘들어 늦은 저녁 119를 불러야 하나 고민이 될 정도로 아팠다. 그때 곁에서 독감인지 모르고 나를 간호한 당시 남자친구였던 내 남편은 신기하게도 독감에 옮지 않았다. 무리를 하고 난 다음 날 항상 몸이 안 좋거나 감기에 걸리는 나와 달리 남편은 늘 멀쩡했다. 고기를 많이 먹은 다음 날 나는 자주 배탈이 났고, 술이 곧 변비약인 나와 달리 남편은 아침마다 규칙적으로 화장실을 가고 딱히 배탈이 난 적도 없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참 다행이었다. 그때는 우리 둘이 같이 육아를 하게 될지는 몰랐었으니까.
어제도 동동이와 씨름하며 소리를 질렀더니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기 시작했다. 욕실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이 시뻘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체온을 쟀더니 38도가 넘어가고 있었다. 남편은 깜짝 놀라더니 어서 방에 들어가 쉬라고 했다. 아이가 아직 8살밖에 안된지라 숙제도 봐줘야 하고, 저녁 먹은 것도 정리해야 하고, 설거지도 해야 하는데. 애는 남편이 씻기더라도 자기 전에는 언제나처럼 아이에게 책도 읽어줘야 했다. 그렇지만 뜨거운 몸뚱이는 점점 아래로 가라앉듯이 무거웠다. 마음이 불편했지만 그냥 방에 들어가 누웠다. 한번 누우니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다. 남편이 따라 들어와 방 안에 있는 난방 컨트롤러의 온도를 높여주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슬슬 잠에 취하고 있었다. 밖에서 들리는 남편과 아이가 복닥복닥하는 소리도 서서히 작아지고 있었다.
같이 사는 부부 중 한 명이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 아이를 혼자 보면서 온전히 상대를 쉬게 해주는 것은 당연한 것 같지만 현실적으로는 꽤 어려운 일이다. 아이가 있고 육아가 힘든 경우에는 특히 더 그렇다. ‘왜 저렇게 자주 아프담?’, ‘하필 이 타이밍에 아플 게 뭐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특히 한 명이 일방적으로 자주 아프다면 더더욱 그럴 수 있다. 예전에 엄마가 자주 아프던 아빠를 꼴 보기 싫어했던 모습이 떠올라 묘하게 웃음이 났다. 맞벌이에 집안일까지 자기가 다 하는데 바깥일 한답시고 뻑하면 아프니 약도 오르고 얄밉기도 했을 것이다. 내가 아빠의 입장이 되고 보니 면목이 없어 멋쩍은 표정만 짓게 된다. 그래도 아픈 것을 어쩔 수 있나.
자고 일어나 보니 어느새 아침이었다. 평소 자주 꾸던 꿈도 안 꾸고 정신없이 잤는데도 몸이 무거워 늦잠을 잤는데 아이 아침 챙겨주는 소리가 났다. 너무 늦게까지 잤다 싶어 깜짝 놀라 나와 보니 후다닥 아이 아침을 챙겨주고는 막 바쁘게 출근하려는 남편과 마주쳤다. 휴직한 아내를, 게다가 이른 저녁부터 푹 잤을 아내를 깨우지 않고 발 동동거리며 출근 준비하고 아이 밥까지 챙겨줬을 남편을 생각하니 미안하고 또 고마웠다. 고마움은 항상 표현해야만 한다.
“내가 너무 늦게 일어났지? 아이 아침 챙겨줘서 고마워.”
“어 그래. 애 보내놓고 좀 쉬어. 나 늦었다! 간다?!”
덕분에 오늘 아침은 아이를 수월하게 챙겨 보내고 다시 누워 쉬었더니 저녁에는 언제 몸이 안 좋았냐는 듯이 가뿐했다.
다행히 남편은 아직 아픈 내가 꼴 보기 싫은 지경은 아닌가 보다. 혹시 나중에 자주 아픈 내가 꼴 보기 싫어지더라도 자는 모습을 짠하게 바라봐 줄 수 있기를 바라본다. 부부가 되어 아이를 키우며 지지고 볶다 보면 서로 미워지는 시기가 분명 온다. 우리도 충분히 그런 시간을 겪었고, 서로의 바닥을 보여가며 싸웠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래도 그런 시간을 보내면서 서로를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이제는 최소한 서로가 엄청 싫어하는 일은 하지 않게 되면서 꽤나 관계를 회복한 것 같아 다행이다. 더불어 자주 아픈 나와 달리 잔병치레 없는 남편과 함께인 것도 행운이라 생각해야겠다. 휴직이 아니었다면 누릴 수 없는, 평일 10시에 이불속에 웅크리고 있었던 오늘에도 감사한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