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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가다 Jun 27. 2024

깔깔깔

  요즘은 딱히 웃을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티브이를 틀어도 재밌지가 않고, 재밌는 책이나 영상을 봐도 큰 웃음이 나지 않았다. 간혹 진짜 재밌을 때에도 피식피식 웃음이 겨우 새어 나올 뿐이다. 나는 문득 누군가와 이야기하면서 깔깔깔 웃는 경험을 했던 것이 언제였는지를 궁금해하며 무심히 걷고 있었다. '재미없어. 재미없어. 인생이 재미없어.'를 연발하면서. 그때 내 옆으로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 세 명이 뭐가 그리 재밌는지 거의 자지러지게 웃으며 걸어가고 있었다.


‘뭐가 저리 재밌을까? 내가 웃음이 없어진 이유는 그저 나이가 들어서일까?’     

  괜스레 우울해졌다. 그래서 생각했다.

      

‘내가 가장 최근에 크게 웃었던 기억을 꼭 떠올리고 말겠다!’     

  그리고 드디어 기억해 냈다.     


  내가 요즘 큰 소리로 웃었던 적은 아이러니하게도 아이와 함께 있을 때였다. 육아는 내게 가장 자신 없는 일이기도 하고, 자괴감을 느끼게 하면서도 유일하게 나를 크게 웃겼다.


  얼마 전 아이에게 세수를 시켜 보니 전생에 고양이였는지 아이는 얼굴에 물이 촥촥 닿는 것을 싫어해 물이든 비누든 아주 조금만 묻히고는 귀 뒤나 목 쪽은 아예 양손의 검지만을 이용해 닦아내는 것이다. 검지를 이용해 닦았다는 표현도 관대하다. 이건 그냥 검지에 물을 콕 찍어 귀 뒤에 향수처럼 바르는 모양새였다. 여러 번 가르쳐 준 것 같은데 아직도 제대로 세수를 못하는 모습에 나는 조금 짜증이 났다. 그래서 키즈용 폼클렌징을 어느 정도 양으로 펌핑해서 사용하는지도 보여 주고, 직접 얼굴을 닦아 주면서 어느 정도의 강도로, 얼마나 오래 닦아내야 하는지 시범을 보여 주었다. 그날따라 짜증이 난 나는 말을 곱게 하지 못했다.  

   

“그렇게 하면 하나도 안 닦이지! 엄마가 해줄 테니까 잘 봐! 자, 이런 느낌으로! 알겠어? 손바닥 전체를 이용해서 힘줘서 여러 번 닦아내야지!”     

하고 언성을 높이며 짜증 섞인 목소리로 거품을 낸 아이 얼굴을 손바닥 전체를 사용해 물로 벅벅 닦아냈다. 한참을 닦아내고 나서,


“자! 이제 거울 봐봐! 싹 닦였지?”     

하고 욕실 거울을 같이 들여다봤는데 이상하게도 양 코 옆 움푹 파인 곳에 비누가 잔뜩 남아있고, 턱 쪽과 목 쪽에도 산타할배 마냥 거품이 그득했다. 어? 이럴 리가 없는데..


  둘은 눈을 크게 뜨고 한동안 거품이 그득한 산타할배를 거울로 마주 보다가 아이도 나도 빵 터져 그 자리에서 아랫집 윗집이 다 들리도록 호탕하게 웃어젖혔다. 내 짜증 섞인 말투도, 좀 거칠었던 손놀림도 이 큰 웃음을 위해 빌드업된 것만 같았다. 한참을 둘 다 꺽꺽거리며 거의 울듯이 웃고 있는데 아이가 그 틈을 놓칠세라 한마디 한다. 그럼 그렇지. 내 아이가 이런 순간에 깐족거리지 않을 리 없지.

     

“꺄하하하하! 아~! 세수는 엄마처럼 이렇게 거품을 잔뜩 남겨놔야 하는 하는 거네요!! ㅋㅋㅋ”     

  나는 머쓱하게 코를 한 번 쓱 닦아내고는 아이와 함께 또 한 번 깔깔깔 웃었다.

    

  또 한 번은 여행을 갔을 때의 일이다. 엄마가 휴직이라 자주 가족 여행을 다니다 보니 아이는 점점 좋은 숙소를 기대했다. 어느 날은 숙소에 들어가자마자 킹사이즈의 널찍한 침대가 마음에 들었는지 “와! 침대가 엄청 커요!”하고는 바로 올라가 자두의 ‘김밥’이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며칠 전 티브이에서 그 노래가 나오는 것을 듣고 가사나 멜로디가 재밌었는지 자주 부르던 노래였다. 아이는 곧바로 “잘~~~  말아줘~~~!” 부분을 크게 부르면서 동시에 누워 김밥이 말려지는 것처럼 침대 위에서 몸을 굴리다가 그대로 바닥에 떨어졌다. 거리를 제대로 계산하지 못한 탓이었다. 조금만 구르고 멈췄어야 했는데 침대가 엄청 크다고 생각했는지 조금 더 굴러 버린 것이다. 그리고는 떨어진 즉시 울기 시작했다.


  그런데 나는 그게 너무 웃긴 것이다. 순식간에 신나는 노래와 울음이 동시에 같은 목소리로 시작된 순간에 나는 속수무책으로 웃음이 터졌다. 분명 떨어진 아이가 다치진 않았는지 걱정하고 살펴야 하는 타이밍인데도 너무 웃겨서 아이를 돌볼 틈이 없었다. 내 웃음에 울던 아이가 자기도 어이가 없는지 날 따라 크게 웃기 시작했다. 그제야 다친 곳은 없는지 살폈는데 지금까지도 아이가 그날을 흉내낸다.      


“잘~~~  말아줘~~!  뚝!  으앙~~!!!”하고 말이다.


  그 밖에도 같이 만든 도미노의 구슬 다리의 설계가 잘못돼서 이상한 곳으로 튄 쇠구슬이 우연히 모든 도미노를 쓰러뜨렸을 때, 원숭이를 떨어뜨리는 보드게임을 하면서 말도 안 되게 많은 원숭이가 우두두두 떨어졌을 때, 아들인 아이가 걸그룹 춤을 출 때의 새초롬하고 도도한 표정을 보았을 때, 가끔 예고 없이 크게 터질 때가 있다. 이런 일들은 며칠 뒤 다시 떠올려도 웃음이 나온다.


  항상 육아는 하기 힘든 괴로운 것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결국 깔깔거리고 웃을 만큼의 에피소드는 온통 육아에서 시작되었음을 생각하면 육아는 내 생각보다 꽤 재밌는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이 글을 쓰는 내가 지금도 그때의 일들을 떠올리며 웃음을 참지 못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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