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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속 숨겨진 '언어'

본 프리쉬의 위대한 '꿀벌의 춤'

by 벌이랑

자연 속 숨겨진 언어 '꿀벌의 춤',


"자연에는 기적이 담겨 있지만, 그것에 무관심하면 삶에 대해서도 올바른 이해를 할 수 없습니다."

- 포르투갈 문학가, 페르난도 페소아(Fernando Pessoa, 1888–1935) -




꿀벌은 이삼만 마리가 함께 모여서 하나의 조직 사회를 이룬다.

여왕벌과 일벌들이 각자 청소부터 새끼 양육과 식량 확보와 집 건축과 외적 방어 같은 일을 일사불란하게 나누어 일한다. 수벌은 번식기에 출현하여 처녀 여왕벌과 공중 짝짓기를 하면서, 우수한 유전자를 후대에 전달한다.


이들은 자기 역할을 직관적으로 판단하여 결정하고, 거리낌 없이 맡은 일에 매진한다. 이들이 집단 사회를 굳건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떤 형태로든 서로의 의사소통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소통 과정 없이 꿀벌이 평화로운 공화국을 지탱하는 것은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고도의 사회생활을 누리고 있는 인간은, 두뇌가 발달하고 성대와 입으로 내는 언어(말)로 복잡한 의사를 표현한다. 하지만, 꿀벌은 외부 자극과 감각에 단편적으로 반응하는 단순 구조의 뇌를 가졌고, 목소리를 내는 목과 구강도 없다. 따라서 기껏해야 몸짓이나 날개 진동, 혹은 체취나 페로몬 냄새에 의한 일차원적인 신호를 보낼 뿐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었다.




"꿀벌, 그들은 분명 기쁨과 슬픔, 분노와 절망 같은 감정을 표현하는 특별한 음표를 가지고 있을 것이며, 이 음표들은 보통 그들 날개에 의해 생성되겠지만, 나는 그들이 이로부터 하나의 아이디어 이상을 전달할 수 없다고 확신한다" - 미국 편집가, 루트(Root, 1882) -


이와 같이 대부분 학자들은 꿀벌의 의사소통 방식을 철저히 무시하거나, 더 이상 살펴볼 가치가 없는 것으로 단정하고 있었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뛰어난 생물학자인 칼 본 프리쉬(Karl von Frisch, 1886–1982) 박사는 젊은 시절부터 꿀벌의 의사소통 방식에 흥미를 갖고 있었다. 1940년대부터 독일 대학에 교수로 재직하면서 꿀벌이 춤을 통해 동료에게 먹이 정보를 전달한다는 가설을 세우고 입증하는 논문을 냈지만, 다른 생물학자들은 이 의미를 이해하려 하지 않았고, 오히려 이 이론을 미친 짓이라며 조롱하였다.

이에 더해 2차 세계 대전 중에 프리쉬 박사는 나치 독일의 학문 탄압으로 몹시 시달렸고, 동료들이 유태인의 피가 섞였다며 교수직 파면까지 청원하는 바람에 큰 봉변을 당하기도 했다.


바다 건너 미국의 생물학자 에드리언 웨너(Adrian Wenner, 1928~2023)는 프리쉬의 이론에 정면으로 반박하면서, 꿀벌은 오로지 꿀 냄새에 의해서만 먹이를 찾을 수 있다고 계속 주장했다.


지금에 와서는, 당시 생물학계를 비롯한 지적인 오만으로 편협해진 인간이 자연의 심오한 세계를 무시하고, '꿀벌의 지혜'를 인정하는 것을 거부했던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 1973년 노벨상 수상 위원회는, 꿀벌의 비범한 능력을 인정하지 않는 인간(호모 사피엔스)의 "뻔뻔한 허영심"을 언급하며, 프리쉬 박사의 후보 지명을 위한 성명서를 마무리했다.



1. 프리쉬의 젊은 시절 연구하는 모습, 2. 꼬리 춤의 각도를 측정하는 장면, 3. 일벌이 꼬리를 흔드는 시간을 측정하는 장면.


프리쉬 박사는 2차 세계대전 중에도 본격적으로 수천 마리 꿀벌의 행동을 추적하며, 그들의 춤과 꿀 공급원(밀원) 사이의 연관성을 분석하는 야심 찬 실험에 착수했다. 벌통 속 꿀벌이 수만 마리인 점을 감안할 때, 이 연구는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그러나 그는 아주 세심한 집중력과 끝없는 인내심을 통해 자신의 가설을 명확하게 증명할 수 있었다.


춤추는 벌이 걸어가며 몸을 흔들 때, 태양과 밀원의 위치를 기준으로 몸의 이동 방향을 잡는다.

춤의 각도와 길이, 속도와 강도에 미묘한 변화를 주면서 밀원의 방향, 거리, 품질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다른 꿀벌들에게 전달한다.


프리쉬의 계속된 연구는 꿀벌이 춤을 통해 놀라울 정도로 정확한 의사소통을 한다는 것을 점진적으로 입증해 나갔다.

그의 가장 유명한 실험 중 하나는, 호수를 건너 수 마일 떨어진 산속에 숨겨놓은 꿀 접시를 한 마리 꿀벌에게 찾을 수 있도록 훈련시킨 후, 이 벌이 벌집에서 추는 춤과 동료 꿀벌의 반응을 끝까지 추적한 것이다.


꿀이 있는 장소를 알게 된 꿀벌 한 마리는 자신의 벌통에 돌아와 독특한 방식의 춤, 즉 '8'자 모양의 '꼬리 춤(Waggle Dance)'을 추는 것을 관찰하였다. 그러고 나서 이 춤으로 꿀이 있는 꽃의 위치, 거리와 방향을 동료들에게 정확하게 전달해서 다른 꿀벌들이 바로 이곳으로 찾아가 꿀을 빨아오는 것을 증명하였다.


이것은 본인뿐 아니라 당시 생물학계의 획기적인 위대한 발견이었다.

그는 이러한 생물학 실험 과정을 통해 행동생태학과 동물행동학(Ethology)의 기초를 다졌으며, 후에 이 분야가 독립적인 학문으로 자리 잡는 데 기여하였다.




(왼쪽) 프리쉬 박사의 꿀 공급원 관찰 모습, (오른쪽) 꿀 공급원의 위치를 알려주는 8자 꼬리춤을 설명하는 그림


프리쉬 박사가 설명했던 위 오른쪽 그림을 보면, 중앙의 바구니 모양의 벌통을 중심으로, 왼편의 작은 막대에 올려놓은 꿀 접시와 태양 뱡향이 이루는 각도는 좌로 60º다. 이곳을 찾았던 일벌이 벌통에 돌아와 벌집 위에서 춤을 출 때, 걸어가는 직선 방향은 아래쪽 중력 방향에서 좌로 60º로 꿀 접시의 방향과 일치한다.


아울러 직선거리로 꼬리를 흔들며 걸어가는 시간은 밀원이 있는 곳까지의 거리에 비례한다. 0.5초 걸리면 500m, 1초는 1km, 2초는 2km 이런 식이다. 즉 오랫동안 꼬리를 흔들며 걸어갈수록 꽃이 멀리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춤추는 일벌의 몸에서 나는 꽃 향기가 후각이 민감한 동료 꿀벌에게 꽃 종류를 알려주고, 가져온 꿀을 혀로 맛보게 해서 꿀의 품질을 직접 알려준다.


그림에서 꿀 접시가 태양과 같은 방향에 있을 때는 일벌이 위로 걸어가며 꼬리 춤을 추고, 반대로 밀원이 태양 반대 방향에 있을 때는 아래(180º)로 향해 이동하며 춤을 춘다.

꼬리를 흔들며 걸어간 후 한쪽으로 빙그레 돌아와서 다시 같은 방향으로 진행하고, 다음에는 반대쪽으로 빙그레 돌아오는 '8'자 모양의 꼬리춤으로 정보를 알려주면, 주변에 있던 벌들이 덩달아 비슷한 흉내를 내거나 유심히 관찰한다.


춤에서 정확한 정보를 읽은 후, 동료 벌은 벌통을 나가면서 곧장 꿀이 나오는 꽃을 향해 직선으로 날아가 체력과 시간 낭비 없이, 다른 곤충이나 다른 벌통의 꿀벌 같은 경쟁자를 물리치고 영양이 풍부한 먹이를 선점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동영상은 저자가 직접 유리벌통에서 촬영한 것으로 왼쪽 일벌 한 마리가 꼬리 춤을 추고 주변의 일벌들이 이를 주시하는 모습을 담았다.


https://www.youtube.com/shorts/BMTfaz07d5Q

* 유튜브에 있는 영상은 선명한 춤 동작을 보여준다.


1973년, 칼 본 프리쉬 박사는 동물행동학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그가 꿀벌의 춤이라는 자연의 새로운 언어를 발견한 것은 단순히 세간에 과학적 호기심을 충족시킨 것뿐 아니라, 인간과 자연의 거리를 좁히려는 각별한 성찰의 결과로 받아들여졌다.

그가 해석한 '꿀벌의 춤'은 자연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함으로써, 후대 많은 생물학자들에게 실험방법론은 물론 인문학적인 영감을 주었다.


아울러, 프리쉬 박사의 독특한 이력은 한 과학자의 개인적 열정이 어떻게 훌륭한 학문적 유산으로 남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가 되었다. 그는 자연에 숨겨진 언어를 정확하게 해독하여, 기적의 문을 연 사람으로도 두고두고 기억될 것이다.



자연은 끊임없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몸짓하며 속삭인다. 우리는 인간이라는 오만과 편견을 버리고, 인내심을 갖고 이 대화를 이해하도록 사랑스러운 눈으로 귀 기울여야 한다. 과연 이것이 자연과 우리에게 얼마나 의미 있는 언어인지를 겸손하게 깨달아야 한다.


"나는 기적의 세계가 끝까지 인내하는 탐구자에게는 그 모습을 드러내지만, 무심코 지나치는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 칼 폰 프리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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