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을 바라보던 그해 겨울
- 한계령 -
추웠던 겨울밤 눈보라에 바위 밑 소나무는 폭설에
지쳐 가지가 부러지고 재 넘던 겨울 햇살은 차가운
눈밭에 눈이 시려 휘청거린다. 언덕 너머엔 길 잃은
바람이 높은 나뭇가지에 걸려 어지럼을 호소한다.
마을에 있을 법한 새들은 나무 사이로 발걸음을 털고
있는데 간간이 날려오는 차가운 눈가루는 머리 위로
흩날린다. 웅크려 손을 비벼도 차갑게 식은 숨소리는
바람에 날려 계곡 아래로 굴러가는데 저무는 겨울
하늘에 소나무는 적막한 달빛을 기다리고 있다.
- 강릉 동해바다 -
파도는 기세등등 몰아쳐 얼어붙은 바위에 부딪히고
그 파편 하나 바윗등에 걸터앉은 상심한 물새의
깃털 위에 떨어진다. 푸른 바다 저편 점점이 떠있던
어선들은 하늘가로 밀려가고 모래 위를 스쳐온 바람은
파도소리에 젖어 텅 빈 들판 너머로 사라진다. 눈이라도
날리면 더욱 스산한 백사장에 어느새 저녁 무렵 모여든
어부들의 두런대는 소리에 파도가 다시 잠들면
수평선에 머무는 초승달이 겨울밤에 아리도록 차갑다.
- 소양호 -
계곡에서 밤새워 내려온 냇물은 호수 밑에 머물러
두터운 얼음을 만든다. 그 위로 부딪혀 떨어진 파란
하늘의 여운은 강가 소나무로 흩어진다. 가지런히
쌓여있는 눈밭 사이로 한가한 아이들은 나무썰매를
지치고 진작부터 조용히 낚시를 담근 노인의 작은 등에
한가한 햇살이 머문다. 터널을 나와서 이제 강둑 위를
달리던 텅 빈 기차가 언덕 밑에 멈추며 나그네를
내려놓고 다시 내리는 흰 눈은 파랗게 얼어붙은
강물을 덮으며 날이 저물어 간다.
- 150번 종점골목 -
얼어붙은 도로 위에는 조각난 신문지가 휘날린다.
막차에 실려온 석유냄새는 옆집 남자의 발걸음을
재촉하고 골목 저쪽으로 사라진 어둠에도 가로등은
꺼진다. 불 꺼진 창문마다 새하얀 성에가 머물고
기침소리에 잠을 깬 아이는 두꺼운 이불속에 얼굴을
묻는다. 눈이라도 밤새워 조용히 내리면 골목 안
대문 위의 기와는 정겨워 보이는데 차가운 수돗물에
얼굴을 씻는 여인의 눈길 따라 전깃줄에 참새들이
앉는다. 문풍지로 스며드는 겨울바람이 아이들의
뺨을 만지며 아침해가 떠오른다
- 상록공원 -
총소리에 이어 추락하는 장면에 잠을 깨면 텅 빈 밤하늘
멍하니 앉은 한아름 회양목 그 둘레에 모여서 소리 질러
봄을 기다리던 겨울밤에도 어지러이 굴러가는 앙상한
나뭇잎에 차가운 서리가 맺힌다. 아침을 기다려 일어선
마른 풀잎에 발자국이 지나가고 모여선 시선에 겨울
안개가 자욱하다. 어질러진 마음마다 괜한 슬픔이
떠오르면 애써 잊으려 차가운 땅에서 조금씩
조금씩 싹이 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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