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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CY Nov 09. 2022

2022년 11월, 한국과 코로나 바이러스

방역과 통제에 대한 국민적 무관심과 '자유 그리고 우파'의 사망

지난 10월 31일을 끝으로 질병관리청에서는 '코로나-19 확진자' 집계를 보도 자료로 배포하는 것을 중단하였다. 해당 소식을 접했을 때엔 '드디어 이 짓을 그치는구나' 싶어 기뻤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달라지는 것은 없음을 깨달았다. 어차피 홈페이지에는 계속해서 확진자 수치가 게시되고 있고, 애초에 확진자 계수를 계속한다는 것만으로 진작 그 수명을 다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어야 할 K-방역은 정부 관료와 전문가 집단의 심폐소생술을 받아 매번 억지로 소생하는 꼴이기 때문이었다.


연락을 주고받는 사람들에게서 '도대체 마스크 언제까지 쓰냐'는 짜증 섞인 말을 듣곤 한다. 아마 이게 한국인의 현상(現狀)일 것이다. 그 필요성에는 더는 공감하지 않으나 정부에서 여전히 착용을 강제하고 있으니 어쩔 수 없이 쓰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나 또한 요즘에는 마스크 착용 강제에 대해서는 별 생각이 없다. 의도적으로 관심을 끊었다기보단 자연스레 그렇게 됐다.


보도 자료 배포가 중단되면서 언론에서 확진자 수치 받아쓰기를 하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지난 이태원 사태가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하면서 방역 및 마스크 강제 조치 지속에 대한 기사는 열에 하나조차도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간간히 몇몇 기사가 나오고는 있지만 그놈의 '감염재생산지수 1 초과'라든지 '확진자 O만 명 돌파'와 같은 식상한 내용이 전부다. 그나마 국민의힘 최춘식 의원이 백경란 질병청장에게 마스크 의무화 조치 전면 해제를 주문하긴 했으나 백 청장은 역시나 앵무새와 같은 대답을 내놓을 뿐이었다.


방역 중단과 마스크 강제 조치 폐지에 대해서는 사실상 정치적으로 우파를 자처하는 이들만이 목소리를 내고 있는 실정이며(우파를 자처하지 않는 이들도 있지만 그들의 목소리도 묻히기는 매한가지다), 이조차도 완전히 소수 의견 취급을 받고 있으므로 별 소용이 있지는 않다. 이는 국민들이 근 몇 년간의 경험으로 인해 '안전'에 극단적이다시피 반응을 하고 있는 현실 때문인데, 한국인 특유의 '하라 하니 어쩌겠나' 성향도 상황이 바뀌지 않는 것에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어쩌면 이와 관련하여 목소리를 계속 내고 있는 이들이 극단분자 취급을 받는 것도 '왜 하라는 걸 안 하고 자꾸 시위나 항의를 하느냐'는 시선 때문일 것이다.


지난번 질병관리청을 대상으로 제기한 민원 답변의 결론은 예상했듯 '현행 지침을 변경할 수는 없다'는 식이었고, 그 내용인즉 '마스크 착용은 WHO(세계보건기구)와 CDC(미국질병통제예방센터)의 주요 방역수칙 중 하나로 권고되고 있음'을 이유로 현행 조치가 유지되고 있다는 것과, '국가 감염병 위기대응 자문위원회'를 통해 방역 지침 등이 논의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는 자문위가 사실상 독재 기구로서 이 사회의 향배를 좌우하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는 것인데, 유감스럽게도 사람들은 이를 더는 심각하게 바라보거나 전혀 문제시하지 않고 있다.


누차 지적한 바 있지만, 한국 특유의 눈치 문화와 집단주의 풍조, 그리고 권위에 순응하는 사회 분위기가 이 상황을 극적으로 전환시키지 못하고 있다. 더군다나 국가와 언론에서 약 3년을 매일 코로나 바이러스가 심각한 것처럼 발표하고 보도했기 때문에 이에 완전히 익숙해진 한국인은 그냥 이대로도 괜찮다는 생각에 완전히 젖어든 것 같다. 나조차도 떠들어 봤자 달라지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 문제에 열불을 내는 것을 그만두긴 했지만, 이 문제에 있어 여론 형성이나 의견 표출의 조직화가 제대로 되지 않는 것은 한국인이 그만큼 이 문제에 관심이 없다는 뜻일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태원 사태가 발생하면서 언론에서는 대대적으로 안전 문제에 대한 국가 책임론을 제기했고, 여론 또한 그런 쪽으로 표출되면서 국민 건강이나 안전 보장에 대한 국가 개입, 달리 말하면 국가 통제를 원하는 의견이 전에 비해서도 훨씬 세를 얻은 형국이라 앞으로 한국 사회는 '상황 안정'을 명목으로 한 국가의 통제를 더욱 기꺼이 받아들이게 될 것이란 생각이 든다. 이 또한 마스크 강제 조치가 유지되어도 별 반응이 없는 주된 이유에 해당한다.


다만 이런 생각은 단지 생각 수준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우려로까지 이어진다. 사회 전반의 국가관이 바뀐 것도 이유겠으나, 신자유주의의 등장으로 퇴조하긴 했지만 케인즈주의가 수십 년간 그 영향력을 뿌리 깊게 내리면서 아무리 시장 경제니 자유민주니 해 봤자 국가가 개입을 최소화하면 '직무 유기'라는 비판/비난을 들을 것이므로 그 어떤 정부도 함부로 개인의 책임이나 개별자의 몫을 언급할 수 없게 되었다. 이는 곧 사실상 우파는 정치적 사망 선고를 받았음을 의미한다. 정치 현상으로서의 우파와 우파적 가치는 존재하지만, 그 근간이 되는 사상은 이미 외면을 받고 있다는 뜻으로 이는 국제적으로나 국내적으로나 동일한 현상이다(정치 현상으로서 존재하는 우파적 가치는 성 소수자 문제나 이민 제한/난민 배척 등이 있긴 하지만 그래 봤자 이게 다다.). 그러므로 자유를 언급하는 것은 아무리 헌법에서 자유민주주의(Liberal Democracy)를 국체로 명시하고 있고 해당 정파에서 이를 부르짖는다 한들 결국 구닥다리 취급을 면치 못하게 된 것이다. 자유가 우파적 가치로만 치부되는 정치적 환경에서는 '개인의 자유 억압', '인신의 자유 제한'을 명목으로 정부 조치에 항거해 봤이에 대히 냉소적인 반응이 주를 이룰 수밖에 없다.


이렇듯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다 보니 전문가들은 별 장애물이나 간섭 없이 계속해서 본인들의 뜻대로 사회가 돌아가게 하는 반면 국가(정부)는 관련된 문제를 그들에게 전적으로 위임(위탁)한 후라 이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괜히 한 마디 던졌다가는 '감히 전문가들의 결정에 토를 단다'는 식의 정치적 공격이 가해질 것이 불 보듯 뻔하니 아무래도 몸을 사리는 측면도 있을 것인데, 전 세계적으로 관심도 없는 방역과 마스크 착용 강제 조치를 세계보건기구미국질병통제예방센터의 권고 사항이란 이유로 계속하고 있는 것만 보아도 (관료 및 전문가 집단으로 한정하더라도) 한국이 얼마나 수구적인 사회인지가 드러난다.


WHO와 CDC의 지침이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나라는 정작 한국이고, 전 세계 절대 다수의 나라는 두 기관에 관심도 없다. 이 정도면 반미를 외치는 한국 좌파들이 문제를 제기할 법도 하지만 그들은 오히려 이를 '국가 책임론'을 이유로 적극 옹호하며, 이에 비해 우파는 속으로, 또는 사적 영역에서 볼멘소리는 할지 몰라도 공적 영역에서 '국가의 최소 개입'을 당당히 얘기하지 못하고 있다. 그랬다간 '비과학적'이라느니, '국민 죽이려 작정을 했다느니'와 같은 비난을 받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자유주의의 ㅈ자는 아나 싶은 한국의 우파는 수십 년간 '자유민주주의' 타령을 해 왔음에도 찍소리도 못 하고 있다. 그들의 자유는 더는 자유 취급을 못 받고 있는 것으로, 자유가 사망한 것은 곧 우파가 사망했음을 의미한다(주의 : 그 역은 성립하지 않는다).


언제부터 진보주의나 좌파적 가치가 '과학' 또는 '과학적인 것'과 동일시됐는지는 따져봐야 하겠지만, 방역과 마스크 강제 조치의 근간인 '과학'은 결국 자유와 대(對峙)되는 대상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 과학은 정치적 진보주의/좌파의 강한 추동을 받아 자유를 압도했다(이는 비단 진보주의자뿐만 아니라 건강과  걱정하는 모든 이들의 지지를 받았다). 그 결과가 3년간의 방역이며, 이에 완전히 익숙해져 어떤 의문도 제기하지 않고 심지어 불편함조차 느끼지 못하게 된 한국인의 사고 체계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이러니 '윤석열의 무능함'은 맹렬히 비난하면서 정작 전문가 집단이 오랜 기간 나의 삶과 온 나라를 맘대로 주무르고 재단해도 정작 자신의 입에 씌워진 마개에 대해선 그 어떤 불만도 제기하지 않고 있는 게 아니겠는가? 반면 어떤 이들은 윤석열 정부 시기하에 선심 쓰듯 완화된 방역 조치에 대해 '문재인 시절에는 이렇게 하지 않았다'며 현 정부를 옹호하는 태도를 보이는데, 저쪽이나 이쪽이나 이렇게 어리석고 한심스러울 수가 없다. 정치인의 무능함을 지적하는 것은 당연한 처사긴 하지만, "3년간의 국가-사회-언론-전문가 집단이란 '완벽한 사각형'의 세뇌로 인해 절대적으로 그 총량이 줄어든 자유에 대해선 그 어떤 문제 의식도 제기하지 못하는 이들이 정치인의 무능함을 지적해 봤자다."라는 게 나의 입장이다.


나는 솔직히 한국의 우파에 별 관심이 없다. 달리 말하면 저들이 한심스럽다. 저들이 그토록 '우리만의 자유민주주의' 타령을 수십 년간 해 온 덕에 한국에서 자유민주주의란 정치적 구호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못하게 되었으며, 그런 얘기를 꺼내는 순간 수구꼴통 취급을 당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좌파에 대해선 얘기가 다르다. 좌파는 꼴 보기가 싫다. 오랫동안 우파가 저질러 온, '나만이 옳다'는 식의 태도 해서 그렇다. 내가 보기에 이제는 '우파는 무능하고 좌파는 부패했다'. 변화한 사람들의 눈으로는 국가 개입 최소화를 외치는 우파 정부가 제 할 일 내팽개치고 '개인의 책임' 운운하는 무능한 놈들로 보일 텐데, 그렇다고 좌파 정부가 '국가의 책임'을 외치며 그 역할을 확대하는 순간 국가는 도둑놈에서 따뜻한 부모님으로 변모한다. 세금 내는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국가는 절대 국민을 위하지 않는다. 그 몸뚱이의 유지를 위해서라면 뭐든 하는 게 국가다. 그런데 그런 국가가 선하다니, 이처럼 어리석을 수가 있나. 문제는 현대 사회의 국가관이 기본적으로 좌파적이라는 데에 있다. 거기에다 트럼프나 보우소나르(브라질 현 대통령으로 곧 퇴임함)와 같은 '극우 포퓰리스트'들이 거하게 헛발질을 해대니 우파의 이미지가 좋을 리가?


가면 갈수록 한국인에게 국가는 더욱 더 기대야 하는 곳, 또한 기댈 수 있어야 하는 곳이 될 것이다. 그 대가는 당연히 나의 자유와 자율성이다. 그러나 전 세계적으로 경제난이령화와 같은 여러 초국가적 문제가 심각해지면 해질수록 국가가 그 몸집을 유지하기 위해 발악하는 것은 사람들이 국가에 더욱 거세게 그 역할을 확대하라 요구하는 것에 가려지고 말 것이다. 당연히 국가는 이에 호응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어쩌면 기꺼이 호응할 것이므로) 통제와 개입을 가속화할 것인데, 이러다가는 빵과 밥을 위해 나의 권리를 포기하는 면과 '빵과 밥을 위해' 나의 권리를 주장하는 면이 충돌하여 생각지 못한 결과를 낳을지 모른다. 유감스럽게도 사람들은 이에 대해서는 그리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고 있는 듯하다. 그러니 문제만 생기면 통제와 개입을 말하지 않겠는가?


정말 다행스럽게도 이제 방역과 마스크 착용에 대해 전처럼 격하게 반응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제는 전과 다른 각도에서 국가와 사회를 바라보고 있고, 그래서 여러모로 걱정이 된다. 특정 정파가 차지하거나 잃어버려 그 의미가 왜곡되고 전용된 '자유'로 인해 한국 사회는 말은 자유를 위한다지만 실은 자유와는 그 거리가 멀어지는 길을 걷고 있다. 이를 막아야 그나마 자유의 본의에 가까운 가치를 향유할 수 있을 텐데, 현 상황으로는 이조차도 매우 어렵다. 그 책임은 파당을 짓고 상대편을 비난하기에 급급한 정치권에도 있지만, 이에 휘둘리거나 동조하여 상황을 균형 있게 바라보지 못하는 개인에게도 있다. 그 결과는, 이를 인지하고 있느냐의 여부와는 별개로 '한국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이들 모두가 지고 있다.


내년까지 마스크 강제가 계속되는 건 불가피한 문제로 보이고, 그때 가서도 '선택적'으로 강제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보여 참담하고 암담할 뿐이다. '국민 자유 제한'에 한해서는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청의 권한을 대폭 줄여야 하고, 엇보다 저 자문위를 하루빨리 없애버려야 하는데 그럴 일은 없을 듯해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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