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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CY Dec 19. 2022

어쩌면 인간이 이를 똑같이 돌려받은 것일지도.

인간은 동물을 대해 온 것처럼 스스로를 대한 건 아닐까?


'조류독감'

'구제역'

두 동물성 전염병의 대응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대규모 살처분.

인간은, 전염으로 인한 경제적 손해를 막기 위해 도살(屠殺)이란 경제적 손해를 택해 왔다.


감염은 동물의 의지와 전혀 무관했다.

하지만 감염된 동물은 감염됐단 이유로 제거 대상이 되었으며,

애꿎은 주변 동물까지 '잠재적 감염원'이란 이유로 차디찬 땅속에 묻혔다.


당장의 전파를 막기 위해서 잔인하고 극단적인 방법이 정당화됐으나,

그 대가는 결코 면할 수 없었다.

수많은 시체에서 흘러나오는 침출수는 토양과 수질을 오염시켰고

부패하면서 발생한 가스는 악취를 머금고 공기 중에 퍼졌으며

무엇보다도,

동물들의 절규는 사람들 귓가에 계속 맴돌았다.


그러나,

과연 이뿐일까?

-

코로나 바이러스 유행을 대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돌이켜 본다.

감염은 사람의 의지와 전혀 무관했다.

하지만 피감염자는 감염됐단 이유로 격리 대상이 되었으며, 애꿎은 접촉자까지 '잠재적 감염원'이란 이유로 똑같이 격리됐다.


당장의 전파를 막기 위해 인간으로서의 당연한 삶과 권리를 빼앗겼고,

대가는 혹독했다.

자유는 크게 훼손되었고

조장된 불신으로 사회가 파편화됐으며

잘못된 판단으로 수많은 이들이 생계와 꿈을 잃었다.


그러나,

과연 이뿐일까?

오로지 지금, 현재에 초점을 맞추어 온 인간의 모든 대응 방식이

과연 당장 예측할 수 있는 폐해만을 유발한다는 보장이 있나?

누가 자신 있게 그리 얘기할 수 있나?

이것이 최선이었다고, 그러니 모든 상처는 묻고 가자고

누가 감히 그리 얘기할 수 있나?


방역이 계속되는 동안 인간과 사회에 대해 적잖게 생각해 왔다.

그중에서도 가장 뼈저리게 와닿은 점은,

인간은 '나'를 위해서라면, 남에게 한없이 잔인해지는 존재라는 것이다.

동물에게 못 할 짓이 없듯

사람에게도 못 할 짓은 없다.

-

예상컨대 인간이 '예방적 살처분'을 포기할 일은 없을 것이고,

그렇게 수많은 동물이 땅에 묻혀, 더는 빛을 보지 못할 것이다.

물론 사람이 바이러스에 감염된다 해서 죽이지는 않는다.

인간은 그렇게 스스로가 최소한의 윤리를 지킨다며 자위할 것이다.

하지만, 감염을 예방하고 사회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사회는, 사회를 구성하는 가장 작은 단위이자 어쩌면 사회 그 자체인 개인을 가장 냉혹한 방식으로 대할 것이다.


그렇다면,

언젠가 다시 전 세계로 바이러스가 확산되는 일이 생길 때,

인간이 이번처럼 스스로에게 잔혹해질 것임은 너무도 자명한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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