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 편
이 집은 특별하다.
단순히 ‘월세, 원룸, 매물’과 같은 단어들로 설명하기엔 아까울 정도로 이 “공간”은 광장히 특별하게 다가온다. 유명 건축가가 설계한 집이라는 사실만으로도 두근거렸고 건축가가 의도한 이 특별한 장치들에 하루하루 감탄하며 살고 있다.
예전에 살던 오피스텔형 원룸을 보면 하나같이 다 창이 크게 나 있고 침대를 창문 쪽에 쭉 밀어붙이게끔 설계되어 있었다. 기호에 따라 창가가 아닌 다른 방향으로 침대를 배치할 수도 있지만, 10평도 채 안 되는 원룸 안에서 침대를 원하는 자리에 배치하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대개 주방은 출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아주 좁게 배치되어 있다. 보통의 집들이 이런 구조를 가지는 것은 빛을 끌어들이고, 시야를 확보해 작은 집의 답답함을 조금이라도 덜어내기 위한 공식과도 같은 것이다.
그러나 건축가는 이런 정형화된 원룸 구조를 거부하고, 주변과 함께 호흡하는 집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각 실의 배치에서부터 창의 위치까지 주변 맥락을 고려해 설계했다고.
채광과 전망이 가장 좋은 주방
주방은 남향과 동향으로 창을 두 개나 가지고 있다. 남향창 너머로 공원의 나무들이 보이는데 계절을 느끼기에 너무나도 좋은 뷰다. 8월에 이사 올 때만 해도 초록초록한 싱그러움이 한가득 했지만, 지금은 울긋불긋 단풍이 흩날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눈이 오는 겨울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옆집과의 간섭은 없으며 간혹 여러 사람들 -개를 산책시키는 사람, 아침에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는 사람, 느린 걸음으로 걸어가는 할머니, 공원에서 운동하는 할아버지 등-을 마주하는데 사람 사는 모습을 엿보는 것 같아 오히려 더 좋다.
반려동물을 위한 창
바닥에 낮게 깔린 동향창은 놀랍게도 반려동물을 위한 창이다. 창밖 내다보는 걸 좋아하는 반려동물의 심리까지 고려해 창을 설치했다는 이야기에 혼자선 키울 엄두도 못 내던 내가 고양이라도 한 마리 들여야 하나 라고 생각이 들 정도로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반려동물 키울 용기는 아직 없다만 이 창은 내가 아주 잘 쓰고 있다. 창 밖에 대추나무 한 그루가 있는데 이 나무가 스스스- 하고 바람에 흩날리는 모습을 멍 때리고 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특히 침대에 누워 창가를 바라보면 초록색 잎이 full-screen으로 가득 차는데, 서울이 아니라 꼭 숲 속에 온 것 같다.
깊은 잠을 청할 수 있는 침실
침실은 사적인 공간으로 도로와 같은 공적인 부분과 멀리 떨어진 곳에 두었다. 침실 쪽 큰 창은 북향이라 아침에도 해가 들지 않는다. 아침에 눈이 부셔 강제 기상했던 과거 원룸에서의 경험과 달리 이곳에서는 꽤 늦은 시간까지 숙면을 취할 수 있었다. 물론 암막커튼이 아닌 이상 집 전체가 밝아져 깰 수밖에 없지만 말이다. 주말엔 알람을 맞추지 않아도 너무 빠르지도, 늦지도 않은 딱 적당한 시간에 일어날 수 있어 좋다.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나 이불을 정리하고 나면, 자연스레 밝은 빛이 쏟아지는 주방으로 향하게 될 것 같은 이 집에서, 커피 물이 끓는 동안 반려동물과 함께 창밖 풍경을 감상하는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느껴보세요.
이 집을 큐레이팅 한 공인중개사분의 코멘트대로 나는 아주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는 중이다. 이 집을 만나게 되어 너무나 영광이고, 또 이렇게 건축가들의 의도대로 잘 살고 있다고 나의 말이 닿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 집의 비밀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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