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흥용 제과명장과 고성호 건축가의 협업 프로젝트
부산광역시 기장군 일광면 칠암리의 어촌 마을에 들어선 베이커리 갤러리 칠암사계. 이곳은 부산을 대표하는 두 명장의 협업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제빵 외길을 걸으며 오랜 세월 사랑받고 있는 이흥용 제과 명장, 그리고 “건축은 단순히 물리적인 공간의 개념을 넘어 그 속의 생활을 조직하고, 그 너머의 관계를 이어나가는 숭고한 표현이다.”라는 철학을 바탕으로 부산을 비롯한 지역 곳곳에 시대성과 장소성을 담은 유의미한 건축을 전개하는 고성호 건축가의 협업으로 한적하던 바다 앞 칠암 마을에 감도 높은 공간이 탄생한 것이다.
많은 인원을 수용하기 위해 빽빽하게 좌석으로 채운 관광지 카페와는 분명히 다른 칠암사계. 공간 외부에서 전해지는 파도 소리, 코끝으로 전해지는 바다 내음과 내부 중정의 수목들 사이로 부는 바람, 그리고 먹음직스러운 빵까지 공간을 채우는 유무형의 요소는 찾는 이들의 공감각을 일깨운다. 또한 곳곳의 여백과 정원, 그리고 드라마틱한 공간 구성은 건축의 디테일을 경험하는 즐거움과 함께 낭만적이고 여유로운 시간을 선사한다. 건축물 내부에서 일어나는 프로그램부터 이곳을 둘러싼 지역의 특성까지 섬세하게 고려하며 공간을 디자인한 건축가의 손길이 곳곳에서 느껴지는 칠암사계. 건축사무소 PDM 파트너스를 이끄는 고성호 건축가와 공간에 담긴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건축사무소 PDM 파트너스를 이끌고 계시죠. 건축가로서 건축에 어떤 철학을 담아내고자 하시나요?
저희는 근본적으로 건축에 시대성과 장소성을 담아내고자 힘씁니다. 건축물은 지어지는 순간 공공재로서의 사회적 역할과 책임감을 가지죠. 특히 상업공간은 주변 지역 재생과 경제 활동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지역의 지속성까지도 고려된 거시적 공간 구축이 필요한데요. 단순히 물리적인 공간을 넘어서 자연의 숭고미가 느껴지는 공간을 지향하고 있어요.
칠암사계는 제빵과 건축 분야 두 거목의 협업으로 화제를 모았습니다.
이흥용 명장님 아들의 추천으로 시작된 미팅과 협업은 사실 10여 년 전에 싹튼 인연에서 시작되었어요. 명장님의 아들이 초등학생 시절에 PDM 파트너스에서 건축한 부산 수영 강변의 엘올리브 레스토랑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요. 그 공간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소회로 꼭 저와 함께 칠암사계를 만들었으면 한다는 아들의 의견에 따라 프로젝트가 성사된 경우죠.(웃음) 2주마다 정기 미팅을 통해 의견을 나누고 건물이 제 모습을 갖추어 갈 즈음, 그 아들은 군 복무를 위해 부산을 떠나게 되었어요. 칠암사계 완공을 보지 못하고 입대해 많이 아쉬워했던 기억이 있네요. 지역 건축가와 지역을 대표하는 베이커리 명장의 협업은 지역성을 강조하는 PDM 파트너스의 지향점과도 잘 맞닿아 있어요. 함께 협업한다면 좋은 시너지가 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죠.
흥미로운 협업 배경이네요. 그렇다면 이미 부산에서 단단한 입지와 명성을 가진 이흥용 베이커리는 왜 칠암사계라는 전혀 다른 명칭의 공간을 의뢰하게 된 건가요?
25년 넘게 오랜 시간 부산을 중심으로 사랑받아온 이흥용 베이커리는 코로나 사태와 맞물려 새로운 시장 접근과 변화가 필요했어요. 베이커리 카페를 통해 성장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어촌 마을 칠암에 장소를 정했죠. 칠암은 주변에 새롭게 조성된 정관 · 일광 신도시에서 접근이 용이하고, 동시에 새로운 활력과 변화가 요구되는 지역이기도 했어요.
칠암 마을의 지역성을 고려한 로컬 디자인 요소가 공간 곳곳에서 보이네요.
어촌 마을은 외부인에게 상대적으로 배타적이에요. 이러한 칠암 마을의 독특한 특징을 고려해 지역민의 의견을 존중하고 수렴하는 지역 친화적인 접근, 지역 특성을 반영한 제품 개발과 스페이스 브랜딩으로 지역민들과의 상생을 도모하고자 노력했죠.
1층부터 3층으로 이루어진 칠암사계는 이흥용 명장의 ‘베이커리 갤러리’, 미디어월과 오션뷰가 인상적인 ‘글라스 하우스’, 명상의 공간 ‘가든 하우스’, 칠암사계의 중심 ‘중정’, 칠암사계가 제안하는 라이프스타일을 선보이는 ‘아트숍’ 등 다채로운 공간이 이곳에서 일어나는 경험을 더욱 풍성하게 하는데요. 공간이 있기까지의 과정이 궁금합니다.
칠암사계는 바닷가에 위치해 있지만 주변 카페보다 바닷가 전면 폭이 좁고, 뒤로 긴 대지 특성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바다 조망이 불리한 문제를 안고 있었죠. 이를 개선하고자 좀 더 섬세하고 특별한 배치계획이 필요했는데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독특한 부지 특성으로 이미 바다를 배경으로 영업하고 있는 주변의 많은 영업장과 차별성을 갖게 되었어요. 부지의 단점을 장점으로 승화시킨 결과이죠. 세동의 건물과 두 개의 정원을 배치하고, 방문객의 동선 계획에도 세심하게 신경 썼습니다. 시간에 따라 이동하면서 얻게 되는 공간 경험을 극대화해 드라마틱 하고 다양한 경험이 가능해졌어요.
창을 통해 칠암 마을 주산인 달음산과 항 주변 등대 등을 바라보며 사계절을 느끼고, 두 개의 정원은 변화하는 계절을 축소해 담아내도록 설계했어요. 이를 위해 바닷가 쪽 좁은 건물은 커튼월 공법으로 시각적 개방성을 최대한 확보했죠. 반면, 전면 부지보다 높은 후면은 돔형 외관 디자인을 채택해 주목성을 높였고, 태풍이나 자연재해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바닷가 건축물의 구조적 문제를 보완했고요. 외관 재료 역시 염분이 많은 바닷가 지역 특성에 맞춰 지속적인 유지 관리가 용이하도록 알루미늄, 유리, 콘크리트, 스테인리스 등을 사용하는 한편, 재료가 가진 물성을 그대로 표현하고자 했어요.
칠암사계의 공간 경험에서 바다만큼 아름다운 중정을 빼놓을 수 없죠.
우리나라 마을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수종들을 중심으로 정원을 꾸미고자 했어요. ‘사계정원’ 입구에서 건축 산책이 시작돼요. 정원에서는 싱그러운 산수유와 수국이 봄을, 백일홍은 100일 동안 피어나 부산의 뜨거운 여름을, 가을엔 홍띠가 붉은빛을 띠며 새로운 계절을 알리죠. 이렇게 매 계절 다른 꽃들이 주연과 조연이 되며 색다른 풍경을 그려내요. 홍띠 사이 디딤석을 따라 미루나무를 지나면 계단과 램프로 연결되고, 1층에서 건물 사이 동백나무를 지나 루프탑에 오르면 산책이 결말을 맺고 다시 순환되죠.
‘안마당 중정’ 중앙에는 팽나무를 배치했어요. 달음산 기슭에서 발원한 물은 계곡을 따라 흐르다 바다로 합류하기 전 마지막 여정인 이곳 칠암을 지나는데요. 오래전부터 팽나무는 전통마을 어귀에서 안녕을 기원했던 나무로 알려졌죠. 팽나무 우측에는 물푸레나무, 좌측에는 생강나무를 심었어요. 그 아래 라일락과 연달래 사이에 조팝나무를 심은 후 이끼를 덮었고요.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칠암사계가 어떻게 기억되길 바라세요?
칠암사계는 부산에서 오랜 세월 사랑받고 있는 이흥용 제과가 고객과 보다 적극적이고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하기 위해 만든 공간이에요. 단순히 먹고 마시는 카페 이상의 공간을 희망하는 베이커리 갤러리로 지어졌죠. 방문객들이 익숙한 일상을 떠나 건물 너머 들리는 파도 소리, 나뭇잎이 바람에 부딪쳐 내는 소리를 들으며 바다 냄새를 맡는 것만으로도 마냥 즐거운 장소가 되길 소망해요. 건물 사이 중정의 싱그러운 이끼와 수목들 사이를 천천히 걸으며 바쁘게 살면서 잊고 있었던 무언가를 한 번쯤은 뒤돌아보며 얻는 쉼을 통해 이곳이 잊지 못할 마음의 성소가 되길 기대해요.
칠암사계
주소 | 부산광역시 기장군 일광면 칠암1길 7-10
운영시간 | 매일 10:00~20:00
문의 | 051-727-49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