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만 명을 이긴 그건…
10월 5일 토요일, 바로 오늘. 세계 불꽃 축제가 있는 날이다.
친구 주주네 집 옥상이 불꽃이 잘 보이는 명당인데, 우리는 이 명당자리를 놔두고 집콕을 하기로 했다.
몇 달 전부터 준비했던 다른 일정 때문이다.
이번 여의도 불꽃축제에 100만 명이 모인다는데,
100만 명 대신 우리가 선택한 것은 바로 ‘버추얼 아이돌 플레이브 온라인 콘서트’!
조금 풀어서 설명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버추얼 아이돌’은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해 가상의 캐릭터로 활용하는 아이돌을 의미한다.
’플레이브‘는 버추얼 아이돌 형태로 활동하는 남자 아이돌 그룹의 이름이다.
플레이브의 경우에는 몸에 센서를 부착해 사람이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고 가상 캐릭터가 화면에 비추게 되는 형태로 활동하고 있다.
어느 날부터인가 주주가 보내는 카톡에는 플레이브의 노래나 짤, 영상 등이 포함되었는데…
내 생각보다 꽤나 진심인지 앨범도 사고, 포토 카드도 사고, 집 안에 플레이브 존을 꾸리기도 하고 이번에는 콘서트까지 간다고 했다.
버추얼 아이돌의 콘서트라니, 나 같은 머글이 보기에는 ‘어차피 그래픽인 건 똑같은데 큰 스크린으로 보느냐, 작은 스크린으로 보느냐의 차이지 않나’ 싶기도 한데 들뜬 주주 앞에서 이런 초 치는 말을 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콘서트라는 게 가고 싶다고 아무나 갈 수 있는 게 아닌 모양.
이미 광탈을 예상한 주주가 말했다.
‘일단 티켓팅을 해보고 실패하면 온콘으로 같이 보자‘
사실 ‘온콘’이라는 게 뭔지 잘 모르지만 오랜만에 주주랑 같이 논다는 생각에 냉틈 ’그래‘ 라고 답했다.
알고 보니 ‘온콘’은 ‘온라인 콘서트’로 콘서트 라이브 방송을 보는 것이었다.
예상한 대로 오프라인 콘서트는 예매에 실패하고, 온라인 콘서트를 보기로 했다.
(심지어 온라인 콘서트도 팬클럽과 일반 회원의 화질과 가격이 달랐다. 머글이 보기엔 복잡한 아이돌 덕질 세계관)
나는 온콘 보면서 뭐 먹을지만 생각했는데,
주주는 응원봉도 사고 ’집에서 어느 정도 데시벨로 소리를 질러도 되는지‘ 파악하고 섬세하게 온콘을 즐길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녀의 열정에 압도당해서 나도 어느 정도는 장단을 맞춰야 하지 않을까 싶어 출퇴근길을 플레이브 노래를 듣기도 했다.
듣다 보니 또 노래가 좋아서 흥얼거리리도 했다.
(이렇게 나도 플며들은것인가….)
플레이브 노래를 듣다 보니 회사 화장실에서 주구장창 나오는 노래가 플레이브 노래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음악 선곡자님도 플리였어…?!)
누군가는 ‘아니?! 현실의 아이돌도 많은데 왜 2D 버추얼 아이돌에?!’라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렇게 세상이 바뀌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2D이든, 눈에 보이지 않든, 무언가를 열정적으로 좋아하고 불태울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이다. 취향이 풍부해지고 선택도 다양해진다.
현실의 사람이 아니어도 마음을 내어줄 수 있는 세상이 온 것이다.
예전에 폭발물 해체 로봇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폭발물을 해체하는 작업이 너무 위험하기 때문에 로봇을 활용해서 위험도를 낮추려는 시도들이 있었는데,
로봇을 훈련시키는 사람들이 로봇에게 정이 들어 로봇이 다칠까 봐 로봇 대신 자신이 폭발물을 해체하겠다고 나선다는 얘기였다.
로봇이 다치거나 고장 나면 슬퍼서 엉엉 울기도 했다는 내용도 있었다.
이게 인간의 습성인 것 같다.
실존하지 않아도, 같은 인간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정을 주고 사랑을 줄 수 있다.
플레이브는 겉모습만 2D이고 그 뒤에 사람이 있으니까 정 반대의 상황 같기도 하지만…
내 눈앞에 보이지 않는 것에서도 애정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플레이브가 마이너 하다고 보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러기엔 최근 음악중심에서 1위를 하기도 하고, 공중파에서 방송도 되고 있기 때문에 마냥 마이너 하다고만 볼 수 없는 것 같다.
100만 명이 모이는 불꽃축제 대신!
내 집에서 편안하게 불꽃을 구경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플레이브를 택하지 않았는가.
세상이 이렇게 바뀌고 있음을 실감한다.
기대했던 만큼 즐거운 콘서트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