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장. 시간을 조작할 수 있다면?

by Song 블루오리온

1화. 접속 권한은 남겨져 있었다

[새벽 2시 – STAR그룹, AI상담센터 테스트 서버실]

불이 꺼진 복도 끝.
사용 중지 구역 표시가 바래진 문 위에 걸려 있었다.
문을 열자, 안에는 먼지 쌓인 서버들과 오래된 냉각기의 낮은 진동 소리만이 공간을 채웠다.

강시후는 조심스레 노트북을 열고, 정하윤이 준 임시 태블릿에서 인증 코드를 꺼냈다.
태블릿 화면에 보안 키패드가 뜨자, 그는 정하윤이 문자로 보내준 여섯 자리 숫자를 입력했다.


[외부 기술 협력자: KANG.SIHOO]
[프로젝트 명: 수시통계 UI 자동화 유지보수 – 기간 한정 협약 등록 완료]
[접속 권한 부여자: 정하윤 (파트장 권한 확인)]


“덕분에 떳떳하게 들어오게 됐네.”
강시후는 피식 웃으며 손가락을 움직였다.


정하윤은 며칠 전, 내부 시스템에 시후를 ‘외부 기술 자문’으로 등록해두었다.

수시통계파트의 자동화 코드 보완 명목이었다.


'시후야, 공식 시스템에는 네 로그가 남아. 그게 보호막이 될 수도 있어.'
하윤의 말은 곧 조언이자 암시였다.

노트북 화면에는 익숙한 인터페이스가 펼쳐졌다.
하지만 눈에 띄는 건, 최근에 새롭게 추가된 일련의 코드들.
그중엔 성찬이 남겼던 코드 패턴이 반복되는 부분이 있었다.

“…같은 손길이야. 이건 성찬이 작성한 거.”

강시후는 마우스를 끌어 로그를 추적했다.
루트 경로는 위장돼 있었지만, 한 줄의 주석이 눈에 들어왔다.


// 트리거: if 지윤 응답 확인 시 → 자동 회신 트리거 on


“이걸 건드리면… 그가 숨긴 회신이 풀릴지도 몰라.”

강시후는 손을 멈췄다.
이건 단순한 기술의 문제가 아니었다.
정지윤—그 이름을 가진 한 사람의 운명, 그리고 하윤의 지난 시간 전부가 연결돼 있었다.


“…하윤아, 널 위해서라도 이걸 열어야겠다.”

그는 숨을 고르고 커서를 ‘인증 로그 복구 실행’에 올렸다.

클릭.

--


[동시에, 정하윤의 집 – 새벽 2시 08분]

정하윤은 알 수 없는 불안함에 침대에서 일어나, 자신의 휴대폰을 들여다봤다.
알림 하나가 도착해 있었다.


[로그 복구 요청 알림: 타임캡슐 회신 로그 - 사용자: KANG.SIHOO]


“시후가… 시작했구나.”

그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곧, 노트북을 켜며 자리로 향했다.





2화. 회신은 시작됐다

[STAR그룹 테스트 서버실 – 새벽 2시 10분]

타닥타닥—
키보드 소리가 적막한 공간을 메웠다.

강시후는 화면 위의 복구창을 응시하고 있었다.
루트 로그 복원 명령이 실행되자, 파일 하나가 조용히 화면에 떠올랐다.


[CAPSULE_RECORD_2034 / 수신자: 정지윤 / 최초 전송자: JIYOON.J]
상태: 회신 대기 → 응답 해제 중…


잠시 뒤, 깜박이던 화면이 멈추고 파일 하나가 열렸다.
영상 파일이었다.

시후는 숨을 삼켰다.


[영상 재생 시작 – 회신 캡슐 메시지]


화면엔 어두운 실험실 배경이 드러났다.
카메라 앞에 앉은 정지윤.
그녀는 긴 머리를 뒤로 넘기며, 약간 굳은 표정으로 말을 시작했다.


“이 캡슐을 보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아직, 살아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거겠죠.”

그녀의 목소리는 또렷했지만, 어딘가 급하게 녹화된 듯 긴장감이 감돌았다.

“시스템 안에 내가 보낸 모든 메시지가 사라졌다면, 누군가가 조작한 겁니다.
내가 의도한 건… 그 누구도 과거를 지우지 못하게 하는 거였어요.”

잠시 멈추는 그녀. 그리고 이어지는 말.

“이 영상이 회신되었다면—적어도 누군가는, 진실을 추적하고 있다는 뜻이겠죠.”

카메라가 미세하게 흔들렸고, 누군가 다가오는 발소리가 작게 녹음되었다.

“나는 그날… 성찬을 봤어요.”

강시후는 눈이 커졌다. 동시에 정하윤도 노트북 앞에서 손이 떨렸다.

“삼촌과 함께, 그 아이는 내게 마지막 경고를 주러 온 거였어요.”


[영상 종료]



정적.

시후는 천천히 숨을 들이마시며 정하윤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 연결 중…]

“하윤아… 봤어.”

“누나… 누나가 성찬을 봤대.”

“…뭐?”

“성찬이 그날, 그 안에 있었대. 너도 들었지? 녹화된 발소리… 그건 그냥 배경이 아니었어.”

정하윤은 말이 없었다.
그의 머릿속은 폭풍처럼 요동치고 있었다.


‘성찬이 알고 있었다. 아니… 그는, 선택하고 있었던 거야.’


“하윤아,”

강시후는 조용히 말했다.

“이건 누나가 남긴 메시지이자… 성찬을 향한 회신이야.”



[성찬 – 미지의 공간, 개인 보안서버 앞]

성찬은 자신의 태블릿을 내려다봤다.
접속 기록 알림이 도착해 있었다.


[타임캡슐 회신 로그 활성화됨 – 수신자: 강시후, 정하윤]


그는 조용히 웃었다.

“…그래. 그걸로 시작되는 거지.”





3화. 정지윤의 진짜 목소리

[이튿날 오전 – 정하윤의 오피스텔]

창밖에는 흐릿한 봄비가 내리고 있었다.
정하윤은 커피도 식지 않은 채, 새벽 내내 타임캡슐 회신 영상을 반복해 재생하고 있었다.

노트북 화면엔 정지윤의 영상이 멈춰 있었다.
카메라를 바라보는 누나의 눈동자, 담담하지만 어딘가 말하지 못한 말이 남은 표정이었다.

“이 장면… 뭔가 더 있어.”

그는 화면을 다시 정지점으로 돌리고, 마지막 프레임을 캡처했다.
그리고 평소 연구하던 이미지 분석 알고리즘을 적용하기 시작했다.


[분석 요청 중… 메타데이터 추출]

화면 하단, 정지윤이 사용한 캠코더의 시리얼과 함께
특수한 디지털 오버레이 값 하나가 검출됐다.


[삽입 텍스트 – 육안 비가시: “4. SEQ_J12: CODE 78-ALPHA”]


“코드?”

그는 즉시 내부 시스템에서 ‘SEQ_J12’를 검색했고,
놀랍게도 그것은 4년 전 타임캡슐 연구 기록 중,
정지윤 단독 실험 로그의 코드명이었다.



[그날 밤 – STAR그룹 비인가 백업서버 접속]

정하윤은 조용히 시후에게 전화를 걸었다.

“시후야. 누나 영상 안에… 암호가 숨겨져 있었어.”

“암호?”

“캡슐 시스템 실험 기록. SEQ_J12, 코드명 78-ALPHA.
이건 누나가 마지막으로 진행하던 단독 실험 로그야.
그리고 그 기록은… ‘삭제된 줄 알았던’ 로그 중 하나였어.”

잠시 침묵. 시후의 목소리가 낮게 울렸다.

“…누나는 마지막까지, 누군가에게 그걸 맡기고 싶었던 거네.”

정하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찾은 회신은, 그냥 경고가 아니야.
그건 ‘지도’였어.”


[영상 속, 정지윤의 마지막 문장 (확대 복원)]

노이즈 제거 필터를 돌려 정하윤이 복원한 마지막 프레임의 소리는 이랬다.


“진실은, 나 혼자 감당하기엔 너무 컸어요.
그래서… 이 메시지를 보는 당신에게 부탁해요.
그 아이를, 지켜줘요.”


“그 아이…?”

정하윤은 중얼거렸다.

그녀가 말한 ‘그 아이’는 누구를 뜻한 걸까?

시후?
성찬?
아니면, 아직 등장하지 않은 또 다른 인물?


[그 시각 – 성찬의 방]

성찬은 검은 태블릿 위에 손을 얹은 채,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회신된 정지윤의 메시지는 이미 그도 열람을 마친 상태였다.

“역시… 당신은 숨기지 않았군요. 선배.”

그는 천천히 화면을 넘기며 중얼거렸다.


“진실을 숨기지 않는 사람에게는, 가장 아픈 과거가 남는다.”











4화. 유리창 너머의 진실

[STAR그룹 내부 백업 영상실 – 오전 11시]

“정하윤 선임, 백업 영상 복원요청 파일 도착했습니다.”

개발팀 막내가 조심스럽게 태블릿을 건넸다.
정하윤은 고개를 끄덕이고, 조용히 복원된 CCTV 파일을 열었다.


� [영상 일시: 2021.05.18 오전 09:37]
위치: STAR R&D센터 B동 지하 실험실 복도


화면 속, 희미하게 흔들리는 CCTV 화면이 재생됐다.
익숙한 모습. 정지윤이 하얀 실험복을 입고 문을 열고 나오는 장면.

하지만 그 뒤로…

하윤의 손이 멈췄다.

“……잠깐만, 저건…”

화면 오른쪽, 실험실 유리창 너머.

누군가의 작은 그림자가 스쳐 지나갔다.

작은 키. 검은색 카디건.
그리고 고개를 빼고 복도를 살펴보던 익숙한 눈매.

“……초등학생?”

하윤은 즉시 영상을 멈췄다.
그리고 창 근처 프레임을 확대했다.

그 아이는, 분명히 '어린 성찬'이었다.



[STAR 그룹 사내 기록실 – 30분 후]

“시후야, CCTV 영상 속에서 성찬이 나왔어.
그것도 4년 전, 지윤 누나가 사라지기 전날에.”

강시후는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조용히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다.

“나도 그 타이밍에 의심되는 로그를 하나 찾았어.
비인가 접근 로그에 미세하게 남은 ‘시그니처 키’ 하나가 있었거든.”

“성찬?”

“맞아. 근데 특이한 게 있어. 이건 단순 접근이 아니야.
4년 전, 이미 ‘회신용 캡슐 설정값’이 조정돼 있었어.
성찬이 미리 타임캡슐 시스템에 손을 댄 흔적이 남아 있었던 거야.”


정하윤은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그럼, 성찬은 누나의 실종 당일에 이미 거기 있었다는 거야?”

“그래. 그런데 한 가지 더…”

시후는 천천히 화면을 돌렸다.
2021년 5월 18일. 같은 시각, 다른 로그에 등록된 한 줄.


[긴급 수신 요청 – FROM: 정지윤 → TO: S.CHAN]
“캡슐을 회신하지 마. 성찬아. 위험해.”



정하윤은 충격으로 말을 잇지 못했다.

“…지윤 누나가, 성찬한테 경고했었어?”

“응. 그런데… 성찬은 결국 그 캡슐을 열었어.
그리고 지금, 그 메시지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거야.”


[정하윤 – 독백]

그는 조용히 태블릿을 끄고 창밖을 바라봤다.

지윤 누나는 마지막까지 누군가를 지키려 했다.
그리고 성찬은, 그것을 품고도 다른 길을 택했다.

‘왜?’

‘왜 하필… 성찬이었을까.’



[그 시각 – 성찬의 개인서버 화면]

성찬은 복원된 CCTV 화면과 로그 메시지를 모니터에 띄워놓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무표정했지만, 손끝이 약간 떨렸다.

“…기억나. 그날, 누나는 내게 경고했지.”

“하지만… 난 이미 그 전날 밤, 결정을 내렸었어.”

그는 화면을 끄지 않았다.
오히려 한참을 그대로 두고 앉아 있었다.


[강시후 – 정하윤]

강시후는 천천히 말했다.

“하윤아… 우린 지금, 단순히 과거를 되돌리는 게 아니야.”

“우리가 하고 있는 건—
이미 조작된 시간을, ‘다시 설계하는’ 거야.”

정하윤은 조용히 대답했다.

“그리고 그 설계자, 지금 그 무대 위에 올라온 거네.”











✦ 다음화 예고 – 14장. 동료인가, 배신인가?

성찬은 둘 앞에 다시 나타난다.
그리고 놀랍게도, 마지막 진실 하나를 털어놓는다.

“내가 캡슐을 보낸 이유는… 너희 둘 때문이야.”
과연 그는 동료인가, 배신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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