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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conut Dec 19. 2021

재도전을 하다

아쉬움은 빠르게 잊혀갔지만 두려움이 다가왔다.

아무리 내 성적이 상승추세이지만 이미 이번 수능에서 거의 최고점을 찍었는데 다음에도 비슷한 점수를 받을 수 있을까?

성적이 더 떨어지면 어쩌지?


두려움은 계속되었지만 재수를 위해 교대역에 있는 유명 재수학원을 등록하였다.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수능 공부를 하다 졸업을 하고 재수를 하게 되면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집중력을 잃을 수 있어 많은 재수생들이 학원을 등록하게 된다.

말이 학원이지 학교와 동일하다.

아침 8시까지 학원에 가서 50분 강의 10분 쉬는 시간을 반복하여 오후 5시까지 국어, 수학, 영어, 과학 수업을 받는다.

이후에는 다른 학원을 가도 되고, 학원에서 야자시간처럼 자습을 해도 된다.

나는 평일에는 학원이 끝나고 밤 10시까지 자습을 하였고 주말에는 분위기 전환을 위해서 집에서 공부를 하였다.


여기까지는 고등학교와 동일하지만 내게는 매우 큰 차이점이 있었다.

바로 남녀공학이라는 점이다.

남자중학교, 남자고등학교를 나와서인지 여자인 친구조차 없던 내게는 더욱 그랬다.


그래서인지 첫 수업을 듣는 날에 바로 내 옆자리 짝꿍에게 마음을 뺏겨버렸다. (나는 금사빠다.)

그녀는 나와 동갑이었는데 밝고 웃음이 많고 친화력이 좋아서인지 내게도 말을 걸어주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점을 보고 좋아했던 것 같다.


그렇게 핸드폰 번호를 교환하고 매일 같이 문자를 주고받았고 (그때는 카톡이라는 게 없었다.) 주말에는 카페에서 단둘이 같이 공부를 했다.

결국 나는 무더운 여름에 고백을 하였고 단칼에 거절을 당했다.

그런데 그 이후에도 우리는 계속 같이 다녔고 가끔은 그녀가 내 손도 잡아주었다.

심지어 식사 양이 많은 나를 위해 아침마다 도시락을 싸왔는데 그런 우리의 관계는 연애를 한 번도 못해본 내게 매우 혼란스러웠다.


나는 원래 독서실에서 조용히 공부하는 스타일인데

같이 조금이라도 더 있고 싶은 마음에 카페에서 공부하고 (말이 공부지 계속 쳐다만 봤다)

짝사랑으로 마음고생을 하니 성적이 오르겠는가?

(심지어 어디서 본건 있어서 편의점에서 소주 1병을 사서 벌컥벌컥 원샷을 하고 세상이 빙글빙글 도는 경험도 했다.)


마음고생을 하면서 바로 성적이 떨어졌으면 위기감에 마음을 정리하고 공부에 집중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학원에서는 매월 모의고사를 보고 1등에서 100등까지 이름을 벽에 붙이는데 워낙 공부 잘하는 친구들이 많다 보니 100등 안에 들면 의대는 갈 수 있는 수준이라고 말을 했다.

그리고 나는 서울 내에 있는 의대를 지원할 수 있는 정도인 30등 정도를 유지하다 보니 방심을 하였고 공부량은 점점 더 줄어서 수능 직전에는 공부를 안 하다시피하고 짝사랑하는 친구와 놀기만 했다.


결국 수능날이 오게 되었고 이번에는 도시락은 2개를 싸서 갔다.

밥은 준비를 많이 했지만 공부는 부족해서였는지 결국 수능 점수가 뚝 떨어졌다.

내 점수는 지방대 의대도 간당간당한 수준이었지만 의대에 지원을 하였고 결국 보기 좋게 대기번호를 받았다.

대기 번호도 거의 끝부분이어서 떨어질 가능성이 훨씬 높았다.


그리고 내가 짝사랑했던 친구는 성적이 많이 올라서 원하는 의대에 합격했다.

얼마나 가슴이 아프던지.

대기 번호 앞쪽이던 친구들은 하나 둘 합격 전화를 받고 페이스북에 합격한 글을 올렸는데

나는 아무리 기다려도 전화가 오지 않았다.


결국 나는 삼수를 할지, 예전에 휴학을 신청했던 공대로 돌아갈지 고민을 시작했다.

공부가 힘들기보다는 짝사랑의 고통이 커서 두려웠는지 나는 삼수를 포기하고 공대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학교로 찾아가서 공대 교수님을 찾아갔다.

사정을 설명드리고 앞으로 열심히 공부하겠다고 인사를 드렸다.

사람 좋게 생긴 교수님이 웃으면서 함께 잘해보자며 응원해주셨다.


그리고 다음 학기에 어떤 과목을 수강 신청할지까지 다 정해두고 이런저런 준비를 하는데 전화가 울린다.

모르는 번호다.

전화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여기 XX 의대 입학처입니다."

그 뒤에는 뭐라 하셨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저 너무 기뻐했던 것만 기억난다.


그리고 이 순간만큼은 성적이 떨어져서 좋은 의대를 못 간 아쉬움은 전혀 없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다짐을 하나 했다.

뛰어난 의사가 되어서 학교의 자랑이 되겠다고. 대기번호의 기적을 보여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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