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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새난슬 Aug 01. 2022

삶의 범위 확장하기

쓰다가 말아버린 글이 데이터로 한가득 쌓여있다. 다음 문장을 더 쓰지 못한 건 그다음에 무슨 상황이 있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질 않거나 글로 풀어갈 역량이 부족한 것 중 하나다. 이 순간을 써야지 하고 마구 써 내려가다 막히는 때에는 그전까지 아무것도 안 하던 사람처럼 영혼을 밖에 꺼내놓는 기분이 된다. 뭐였더라. 뭐였더라. 그러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다음 문장을 이어 쓸 때도 있고 영영 데이터로만 남겨놓는 때도 있다.


보통은 후자의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 브런치 임시저장 글 페이지에 들어가면 수십 개의 쓰다만 글이 덜렁 있다. 맨 아래로 내려가면 몇 개월 전에 쓰다만 글이 한가득 있다. 글의 주제는 일관적이다. 나에 대해 썼거나 내 주변에 대해 썼거나. 나에 대해 쓴 글은 솔직히 몹시 지겹다. 쓰는 것도 읽는 것도 그렇다. 인생의 사분의 일밖에 안 산 시점에 이렇게나 할 말이 많다면 앞으로는 도대체 얼마나 많은 나를 흩뿌리며 살게 되나 멍해진다. 물론 나를 글로 써서 세상에 풀어놓은 것은 내 선택이었으므로 그만두고 싶은 생각은 없다. 내 주변에 대해서 쓴 것은 사실 언제 어떻게 썼든 실제와는 거리가 있다. 내가 알고 있는 그와 남이 아는 그와 그가 아는 그는 모두 다르고 또 내가 쓸 줄 아는 표현이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그는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지만 내가 인지하는 것은 겨우 단색 몇 개와 그러데이션뿐인 것이다. 그 한계를 진작부터 알고 있었지만 극복하고자 하는 결심은 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는 쓰고자 하는 대상을 느리게 탐구한다. 탐구한 다음 나름 노력하여 그를 최대한 표현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한다. 그런 노력들이 실패로 돌아갈 것을 모두 감안해야만 계속해서 쓸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잘 못하는 것, 실패하는 것에 취약한 이십오 년을 살았다. 초등학교 5학년 때는 열 개쯤 되는 영어 단어를 혹시나 하나라도 틀릴까 봐 아예 안 외워버리는 길을 선택했고 그럴 때마다 쪽지 시험지에는 빗금이 그어졌다. 다소 극단적인 어린 시절을 보냈고 어른이 되고 나서야 모든 게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알았다. 사실은 계속 완벽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행동하다 보면 모든 시도가 초기에 멈춰버릴지도 모른다. 울퉁불퉁한 길을 걸어갈 용기가 생기지 않아 쉬운 길만 계속해서 선택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제는 그런 선택들이 좀 지겨워졌다.


지금보다 확장된 삶을 살기 위해서는 관리하는 범위를 늘려야 한다는 문장을 보았다. 내가 관리할 수 있는 범위에 뭐가 있었더라. 골똘히 생각해보니 떠오르는 것이 몇 없다. 기본적으로 해야 하는 수면, 잠자기도 손에 휴대폰이 없으면 자신 없는 일이다. 그렇지만 지금이라도 알았으니 그 관리 범위를 차차 늘려갈 것이다. 알던 것과 생각할 줄 아는 것 외에도 삶의 범위를 늘리는 것에는 무수한 방법이 있다고 한다. 이를테면 옆 동네에 있는 카페에 가는 것이다. 걸어서 가든 버스를 타든 상관없다. 아무것도 안 하면 집에만 있어야 하는데 무엇이라도 해서 어디든 가면 되는 것이다. 그럼 가본 적 없는 길을 알게 되고 장소를 알게 되고 풍경을 알게 된다.


한동안은 집 앞 버스정류장에 가는 것도 무섭고 어려워서 먼 거리를 줄곧 걸어 다니기만 했다. 그러는 동안 나의 세계는 조금씩 좁아졌다. 좁아진 세계에서 살기에 나는 너무 물고기 같아서 더 견딜 수가 없었다. 작은 화분에서도 줄기를 길게 세우는 식물이었다면 또 모르겠는데 나는 넓으면 넓을수록 행복한 성질로 태어나고 말았다. 뭐가 더 좋은 지는 따질 수 없는데 이왕 태어났으니 어항보다 바다에서 살고 싶다.


뭐라도 더 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전전긍긍하며 산다. 어차피 될 수 없는 완벽은 인생에서 빼버렸고 이제는 속이 몹시 시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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