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미널에서는 바다 냄새가 난다. 바다는 오래전부터 그곳에 있었다. 바다가 있던 자리에 사람들이 모여 작당을 하고 길을 세웠다. 길을 세우니 더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닐 수 있게 되었고 그들이 더 멀리 갈 수 있도록 터미널을 지었다. 그렇게 터미널에서는 쭉 바다 냄새가 나게 되었다. 원래부터 바다가 있던 곳이니 당연한 일이다. 나는 그 터미널을 끔찍하게 싫어했지만 별 수 없이 그 터미널을 경유하여 학교와 집을 오고 갔다. 학교 주변에는 바다가 없었다. 대신 밭이 가득했다. 논은 우리 집 근처에 잔뜩 있었다. 학교는 막 개발되기 시작한 동네에 있어 언제 세워진지도 몰랐다. 그런 학교는 아직 준비된 게 없어 모든 것이 어수선했다. 모든 것을 최신 식으로 하고자 하는 어른들의 다짐이 눈에 띄었지만 밭에서 소똥 냄새가 나서 건물의 반짝거림도 풀이 죽어 있었다. 나름 인문계였기 때문에 야간자율학습을 시행했는데 끝나는 시간에는 그 동네에서 터미널로 가는 버스가 거의 없어 애들을 데리러 온 부모님들의 차가 근처 부지에 가득했다. 부모님이 데리러 올 수 없는 애들은 택시를 불렀는데 몇백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일제히 콜택시를 불렀으므로 그 광경이 희한했다. 결국 학교는 시와 협의해 특정 시간마다 전 지역을 도는 버스를 배차했고 학생은 야자가 끝나기 10분 전부터 버스를 놓치지 않기 위해,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교실에서 뛰쳐나가 달렸다. 터미널은 우리 학교 애들뿐만 아니라 지역의 모든 고등학교 애들이 다 모인 것처럼 붐볐다. 언제 끝날까 싶은 날들이었다. 터미널에는 외계 행성을 콘셉트로 한 오락실이 있었다. 나는 오락을 전혀 몰랐지만 같이 하교하는 애는 오락을 잘 알았다. 잘하는지는 몰랐지만 자주 스틱을 잡곤 했다. 그 애는 스틱보다도 마이크를 잡기를 더 좋아했는데 덕분에 우리는 겨울왕국 OST를 실컷 부를 수 있었다. 교실에 가만 앉아 있으면 잘 놀고 활기찬 낯선 애들이 문을 두들기며 ‘Do you wanna build a snowman’을 외치던 때였다. 나는 겨울왕국 OST를 부를 때 항상 안나 파트를 맡고 그 애는 엘사 파트를 맡았다. For The First Time In Forever에는 사실 엘사 파트가 거의 없었지만 그 애는 항상 최고의 엘사가 되어 주었다. 실컷 부른 뒤에는 포장마차에 갔다. 포장마차에는 우리처럼 교복을 입은 애들도 있었고 작업복을 입은 어른들도 있었다. 절대 풀리지 않을 것 같은 파마머리를 한 사장님은 대수롭지 않게 우리가 주문한 금액보다 훨씬 많은 양의 떡볶이를 담아내어 주었다. 떡볶이와 어묵 국물을 배 터질 때까지 먹은 뒤에는 터미널 근처의 바닷길을 걸어 집으로 향했다. 다리를 건너면서 저 너머에 있는 수평선을 보는 것이 좋았다. 어두웠고 바다 너머는 잘 보이지 않았지만 자꾸 보게 되었다. 바다가 안 보이는 미래는 생각해 본 적 없었다. 안산에서 한참 걸리는 곳에 있는 그 터미널에 다시 갔을 때 바닷길에는 크고 높은 회색 가림막이 설치되어 있었다. 그 뒤에 무엇을 세울 것인지, 바다는 어떻게 될지는 빤했다. 그래도 바다 냄새는 자꾸 났다. 어떻게 그 깊이를 다 메우고 건물을 세울 땅을 뭉쳐 세운 것인지는 오래 궁금하지 않았다. 얼마 전에도 터미널에 갔다. 아침에 안산으로 돌아올 예정이었지만 일이 생겨 새벽 3시 30분쯤 터미널에 갔다. 공사가 진작 끝나 저 멀리까지 높은 건물이 많이 세워져 있었다. 그 시간대에도 불빛이 켜져 있었다. 그 불이 꺼지지 않을 것임을 알았다. 10년 전에는 거기에서 별을 봤었는데 이제는 별도 잘 보이지 않는다. 바다를 볼 생각이었지만 다 물 건너갔으므로 터미널 의자에 앉아 첫 차를 기다렸다. 안산으로 가는 첫 차는 7시에 있었다. 기다리는 동안 어묵 하나를 사 먹었다. 바다가 보이지 않는데도 바다 냄새가 나서 괜히 코를 훌쩍거렸다. 바닷길에서 다시 바다를 볼 날은 요원해졌으므로 바다를 전부 메우면 바다 냄새가 더는 나지 않을까 궁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