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현재 프랑스 현지에 거주하며,
와인과 관련된 업종에서 근무하고 있는 외노자입니다.
관련 학업을 이곳에서 마치고 직장을 구해 격동의 코로나 시기를 거쳐
지금껏 일을 하고 있습니다.
(신상을 밝히고 싶지는 않아 자세한 설명이 힘든 것은 양해 바랍니다.)
와인의 나라로 널리 알려진 프랑스에 사는 만큼
도처에 양질의 정보가 넘쳐나는 점은 아주 즐겁고 만족스럽습니다.
다만 미천한 일개미의 머리로는 그 다양한 정보들을
항상 스쳐가듯 짧은 메모로만 기억하기가 일쑤였습니다.
완벽하게 받아들이고 흡수하지 못하던 점이 못내 항상 아쉬웠던 터라,
이번 기회에 찬찬히 정리도 할 겸 많은 분들과 공유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보려 합니다.
수확이 끝난 지도 한참 되어 꽤나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물씬 풍기던
Avize 마을에 위치해 있는 Agrapart는
그 명성에 걸맞은 샴페인을 양조하는 곳이 맞는지 의심이 갈 정도로 첫인상은 퍽 소박했습니다. Agarpart 하우스의 마스코트, 애견 마디와 함께 투어는 시작되었습니다.
Agrapart & Fils은 1894년, 당시 포도를 재배하기 시작하던
Arthur Agrapart가 세운 하우스로 꽤나 Young(?)한 축에 들어가는 편입니다.
그리고 1984년부터 창립자의 손자인 Pascal이 지금까지 양조 및 운영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Agrapart는 RM(Récoltant-Manipulant),
즉 다른 곳에서 포도를 일절 구매하지 않고 직접 농사지은 포도로만 양조하는 하우스입니다.
Côte des Blancs의 Avize에 위치해 있으며 대략 12 헥타르 가량의 포도밭을 보유하고 있으며
주로 Avize, 그 외에 Cramant, Oger 그리고 Oiry 지역에 포도밭이 분포해 있습니다.
연간 10만 병의 생산량을 유지하고 있으며,
이는 샴페인 하우스 중에서도 꽤나 소규모라고 볼 수 있습니다.
Viticulture Organique(V.O), 즉 유기농법을 표방하고 있으며,
그들의 포도에 드러나는 진정한 떼루아(Terroir)를 표현하는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하우스에 들어가자마자 거대한 압착기가 보였습니다.
크지 않은 하우스의 공간을 많이 차지하던 압착기는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편안한 작업복 차림을 하고 있던 직원들의 모습, 아기자기한 내부 시설들,
친구가 제작한 오크통을 사용하던 모습,
우리가 흔히 화려하게만 생각하는 샴페인의 모습과는 다르게
소박하고 정겨운 하우스의 모습이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Agrapart의 와인들은 오래된 오크통을 이용하여 숙성을 진행하여
최대한 나무향의 영향을 배제하려 노력합니다.
항상 새 오크통을 쓰는 같은 Avize의 또 다른 샴페인 하우스,
그 유명한 Jacques Selosse와는 반대인 모습이 흥미로웠습니다.
그리고 흔히 내추럴 와인에서 볼 수 있듯이, 정제하거나 여과하지 않고 그대로 병입을 합니다.
Agrapart가 위치한 Avize의 토양은 백악질 석회암과 점토로 덮여있어
미네랄이 풍부하게 표현되는 포도가 생산됩니다.
따라서 미네랄 기반의 샴페인의 강도를 완성하기 위해
Fermentation Malolactique (Malique + Lactique) 방법을 사용합니다.
(사실 이 단어는 대응하는 한국어나 영어를 잘 알지 못합니다..
사전적으로 찾아본 의미 - Malolactique 전환(malolactique 발효 또는 MLF라고도 함)
포도 주스에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시큼한 사과산을
더 부드러운 맛의 젖산으로 전환하는 포도주 양조 과정입니다.
Malolactique 발효는 1차 발효 직후에 2차 발효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동시에 할 수도 있습니다.
이 과정은 대부분의 적포도주 생산에서 표준이라고 할 수 있으며,
샤르도네와 같은 일부 백포도 품종에서 일반적이고,
반응의 부산물인 디아세틸에서 "버터 같은" 풍미를 부여할 수 있습니다.
위의 사진과 같이 병입 후 눕혀서 숙성하는 과정인
Vieillissement sur lies 한글로 직역하자면 효모찌꺼기를 통한 숙성을 거칩니다.
Agrapart는 오늘날 Remuage 과정을 기계가 아닌 수작업으로 진행하는데
이는 대규모로 양조하는 N.M 하우스들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모습입니다.
Remuage는 병입 후 숙성을 진행하는 도중 병을 돌려 효모 찌꺼기를 모아주는 과정입니다.
데고르쥬멍(Dégorgement)은 병 안의 효모 찌꺼기들을 배출해 내는 과정인데
Remuage는 이 과정 이전에 효모 찌꺼기들을 모아주는 일종의 준비 과정입니다.
Remuage를 위해서 병들을 꼽아두는 스탠드인 Pupitre의 개수를 보면 알 수 있듯
하나하나 손으로 직접 돌리는 것은 손도 많이 가고 비용도 적지 않게 드는 만큼
보기 쉽지 않은 과정입니다.
참고로 앞에 언급한 대형 하우스들은 아래의 사진같이 Gyropalette라는
자동 Remuage 기계를 사용하곤 합니다.
샤르도네 90% 피노누아 10% 7 Crus 이름 그대로
도멘의 일곱 가지 크뤼 Cru가 섞인 Multi-millésimé 퀴베입니다.
(Avize, Cramant, Oger, Oiry, Avenay Val D'Or, Val des Marais et Vauciennes)
2019년 베이스가 60%, Vin de réserve가 40% 사용되었습니다.
자연효모를 사용하고 앞에 언급한 Fermentation Malolactique를 거칩니다.
2020년 5월에 병입 하였으며 해당 퀴베는 앞부분에서 언급했던
Vieillissement sur lies (V.S.L) 과정을 20-32개월가량 거칩니다.
데고르쥬멍은 출시 60일 전에 하며 도자쥬는 5g/L입니다.
하우스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느낌이었고 미네랄이 강하고 쨍한 산미가 느껴졌습니다.
샹파뉴 지역에서 샴페인 양조에 허용되는 포도의 품종은 총 7가지입니다.
모두가 잘 알고 있는 피노 누아, 샤르도네, 뫼니에가 주요 3가지 품종이며
피노 블랑, 아르반, 쁘띠 멜리에, 피노 그리 역시 해당이 됩니다.
흔히 마이너 품종으로 분류되는 후자의 네 가지 품종은
재배면적이 전체 면적의 1% 내외일 정도로 흔하지 않습니다.
해당 퀴베는 피노 그리를 제외한 샴페인 양조에 사용하는
나머지 여섯 가지 종류의 포도가 모두 사용된 와인입니다.
샤르도네가 주요 품종입니다.
보통은 품종별로 양조하여 병입 직전에 혼합하는 방식인데
해당 퀴베는 압착 과정부터 모든 품종을 섞어 숙성까지 함께 한 통에서 진행을 합니다.
19년도 빈티지가 80%, 18년도 빈티지가 20% 포함되어 있습니다.
V.S.L 숙성과정을 24-36개월 거칩니다. 도자쥬는 5g/L입니다.
청사과, 시트러스 향이 느껴졌고 그 이후에는 땅콩냄새 같은 고소한 견과류 향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샤르도네 100%로 양조되며,
Avize, Cramant, Oger, 그리고 Oiry의 têtes de cuvées의 혼합으로 만들어지는
Multi-millésimé 퀴베입니다.
2018 빈티지가 20%,
같은 테루아에서 나온 2017/2016 빈티지의 vin de réserve 80% 로 만들어집니다.
병입은 2019년 5월이며, VSL은 30-42개월입니다.
도자쥬는 5g/L입니다. 매그넘 및 제로보암으로도 생산됩니다.
시트러스류와 청사과 향이 지배적이었고 분필향 같은 미네랄과 꿀향도 느껴졌습니다.
100% 샤르도네로 양조되며, 2016년 빈티지입니다.
수령이 50년 이상된 척박하고 석회암질의 Vieilles vignes에서
난 특별히 엄선된 포도로 양조됩니다.
50%는 큐브, 50%는 오크통에서 숙성됩니다.
(Avize의 Champ Bouton에서 나는 포도는 큐브에서,
Cramant의 Bionnes에서 나는 포도는 demi-muids라고 불리는 오크통에서 숙성됩니다.)
병입은 2017년 5월이며, 역시나 정제 및 여과 과정을 거치지 않습니다.
VSL은 60-72개월이며 도자쥬는 3g/L입니다.
매그넘으로도 생산됩니다.
꿀향, 분필 향 혹은 젖은 돌냄새 같은 미네랄 노트,
묵직하면서도 달달한 향이 느껴지다가 끝에는 산미가 확 올라왔습니다.
전체 퀴베 중 가장 직관적인 스타일이었습니다.
100% 샤르도네, 2016년 빈티지.
Avize의 비탈 중턱에 있는 남향, 남동향의 vieilles vignes에서 난 포도로 양조됩니다.
점토질, 그 깊은 아래는 백악질로 구성된 가장 깊은 땅입니다.
2017년 5월 병입, VSL은 60-72개월이며, 도자쥬는 3g/L입니다.
청사과, 브리오슈, 아몬드 향, 미네랄, 견과류, 그리고 요구르트 향이 느껴졌습니다.
도멘을 대표하는 Parcelle 단위의 퀴베로, 샤르도네 100%, 2016년 빈티지입니다.
파스칼의 할아버지가 1959년에 심은 Avize의 Vieille vigne에서 나는 포도로 만들어집니다.
특히 사람과 말로만 작업하는 구획입니다.
2017년 5월 병입, 여과 및 정제하지 않고 병입 하며, VSL은 60-72개월입니다.
모래 냄새, 약간의 스모키한 향, 미네랄, 구운 빵, 브리오슈, 버터,
살짝 가려진 꿀향, 뭔가 갓 드라이클리닝 하고 나온듯한 향이 느껴졌습니다.
100% 샤르도네로 생산되며, 2016년 베이스에 2017년 빈티지의 주스를 섞습니다.
2017년 9월 병입, VSL 은 최소 4년을 거칩니다.
청사과 및 흰 복숭아 같은 핵과향, 견과류, 약간의 소금기 같은 미네랄,
레몬 껍질, 레몬의 상큼한 향, 브리오슈 같은 빵냄새 등이 느껴졌습니다.
Agrapart는 Côte des Blancs에 위치한 만큼 샤르도네를 많이 사용하고,
블랑드블랑 퀴베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블랑드블랑 샴페인을 크게 선호하지 않는 편입니다.
음식도 그렇고 지나친 산미를 좋아하지 않는 편인지라
더욱이 블랑드블랑 샴페인을 특별히 찾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사실 크게 기대를 하고 떠났던 방문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Agrapart의 샴페인들은 산미도 당연히 느껴졌지만
깔끔한 미네랄리티가 동반되어 좀 더 무게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마냥 가볍지만은 않았고 균형 잡힌 맛의 샴페인을 재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분필냄새와 같은 향에서 백악질 등의 그들 고유의 떼루아를 더욱더 잘 느낄 수 있었습니다.
방문했던 하우스들 중에 규모는 가장 작은 축에 속하는 Agrapart 하우스 방문이었지만,
방문의 시간이 저에게 던져주는 생각의 단초는 작지 않았습니다.
와인은 흔히 주류 중에서도 사치재로 분류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나 버블이 가득한 샴페인은 그중에서도 더욱더 화려함의 상징으로 다가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 샴페인을 만드는 장소와 사람들은
평소에 생각하고 접해오던 버블의 이미지와는 꽤나 거리감이 있었습니다.
항상 자연 그대로를 마주하려 하고,
그네들 손톱에 낀 흙이 보여주듯,
흘린 땀만큼 그대로 결과가 나타나는,
자연과 인간의 순수한 결과물이구나 싶었습니다.
와인이 보여주는 이 양 극단의 모습을 보면서
마냥 와인이 좋아서 스스로 뛰어든 이 일이 결코 단순한 일은 아니겠구나 싶은
짧은 사색도 곱씹어 볼 수 있었습니다.
Agrapart 하우스는 개인의 방문을 따로 받지 않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방문 내내 꼬리를 흔들며 즐거운 시간을 함께한 마스코트 마디.
개인적으로 불어로 학업 과정을 마치고 현업도 프랑스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관련 용어의 사용 있어서 대응하는 한국말이나 영어에 부족함이 있습니다. 최대한 감안해서 기록했지만 혹시나 틀린 부분이나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언제든 알려주세요.
혹 궁금한 점이 있으면 최대한 답변드리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