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주의와 치킨게임에 휩싸인 대한민국
'전체주의'라는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부분에 대한 전체의 선행성과 우월성, 즉 개인의 이익보다 집단의 이익을 강조하여 집권자의 정치권력이 국민의 정치생활은 물론 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걸쳐 전면적이고 실질적인 통제를 가하는 것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나아가 개인은 전체 속에서 비로소 존재가치를 갖는다는 말도 나옵니다.
전체주의의 대표라면 역시 나치와 공산주의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 어디에서나 전체주의란 말은 좋은 뉘앙스로 들리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근래의 우리나라를 보면 이런 전체주의적인 사고나 주장이 굉장히 많이 들립니다. 자기주장이 강한 한민족의 특성이 양면적으로 작용한다는 말도 들은 적이 있습니다만, 어쨌거나 굉장히 위험 수위에 올라 있는 건 분명한 것 같습니다.
* 출처 : Pixabay / 579020
단재 신채호 선생은 그 유명한 저서인 <조선상고사>에서 '역사는 아(我)와 피아(彼我)의 투쟁의 기록이다'라고 한 바 있습니다. 적절한 비유인지 모르겠습니다만, 현재 우리나라는 아(我)와 피아(彼我)의 피비린내 나는 투쟁만이 가득한 것 같습니다.
연애할 때 여자가 '그 여자가 좋아, 내가 좋아?' 이런다면 참 유치하다고 하실 겁니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지금 딱 그러고 있는 겁니다. 모든지 니편 내편 갈라놓고 봅니다. 중간은 없습니다.
갈라놓고 끝이 아닙니다. 무조건 적과 싸워서 이겨야 됩니다. 그리고 이긴 다음에 적이 다시 반격하지 못하도록, 좀 강하게 얘기하면 적을 완전히 '박멸(!)' 해야 됩니다.
뭐 잘 아시듯이 이런 모양의 대표는 우리나라 정치 상황입니다. 진보냐 보수냐, 좀 원색적으로 말해서 너 종북 빨갱이냐 토착왜구냐?... 다들 이러고 있습니다. 사실 개인의 철학이 있기는 하지만, 모든 사안에 대해 정확히 왼쪽/오른쪽으로 나눌 수 없습니다. 솔까, 왼쪽이 무엇인지 오른쪽이 무엇인지 그것도 잘 모르겠습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둘이 똑같은 것도 같습니다.
중간을 주장하고 싶어도 주장할 수가 없습니다. 법과 제도 자체가 승자독식입니다. 이기면 모든 걸 가지고 지면 국물(?)도 없습니다. 소수는 무조건 버려집니다. 다수가 되는 게 장땡, 아니라 광땡입니다. 일단 이기고 봐야 되니 단일대오로 적과 싸워야 됩니다.
* 종북, 빨갱이, 좌좀, 좌빨 vs. 수꼴, 토착왜구, 일베충, 매국보수
이런 극단적인 양분법은 우리 사회·생활에도 지극히 만연되어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 흡연 문제입니다. 저는 평생 동안 흡연이라곤 서너 가치 흉내 내 본 게 다입니다만, 그래도 제 아이들에게 담배 연기 뿜지 않는 이상 옆에서 누가 담배 피우는 거에 크게 개의치 않습니다. 소시적 PC방과 당구장에서 담배 연기 단련을 한 까닭입니다.
그런데 주위를 보면 어떻습니까? 흡연하면 다 괴물(?)로 봅니다. 물론 혐연권이 흡연권에 우선한다는 건 인정하겠습니다만, 이건 무슨 흡연자들을 범죄자 취급해서 멀찌감치 격리시켜 버리고 이제는 그마저도 아예 흡연 전면 금지시키려고 합니다. 건물 내에서 금지, 피방이나 당구장에서도 금지, 심지어는 길거리에서도 금지입니다. 담배 연기 싫은 사람을 우선적으로 보호하되 흡연하는 사람도 같이 살 수 있도록 조화의 방법을 찾을 수도 있는 것인데, 소수인 흡연자들은 그냥 무시됩니다. 그리고 담배를 끊으라고 강요합니다.
담배는 차라리 이유가 됩니다. 다른 사람에게 해악을 끼치니까요. 그런데 반려동물과 보신탕은 어떨까요? 밤낮 가리지 않고 시끄럽게 짖거나 어린아이 등에게 위협을 가하지 않는 이상 반려동물 및 반려인들과 조화롭게 살아야 할 것이고, 내 집의 강아지를 잡아먹지 않는 이상 보신탕 먹는 사람들의 권리도 인정해야 할 것인데... 혐오스럽다면 본인들이 보신탕 가게 안 가면 될 텐데요.
자기한테 피해를 끼치는 것도 아닌데 왜 남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일까요?
* 국회 근처 여의도 금연구역(거리). 도대체 흡연자들은 어디서 담배를 펴야 할까요?
* 출처 : 영등포구 보건소
왜 이게 문제냐면, 여기에는 바로 이런 심리가 깔려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무조건 옳다.', '내 뜻대로 움직여야 된다'...
뭐 자기가 옳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합리적으로 토론하고 논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비합리와 강제와 불법과 협박과 온갖 수단이 다 동원됩니다. 왜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무조건 이겨야 되니까요. 마치 골목길에서 마주친 두 자동차처럼, 서로 '니가 비켜라' 하고 치킨게임을 하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피아 구별을 위해 주변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사상검증(?)'을 합니다. 우리 편인지 아닌지 답을 하라는 강요입니다. 무슨 왕권을 걱정하는 조선시대 왕도 아니고 이렇게 사람들 간을 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 특유의 '오지랖'이 작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정말 별 것도 아닌 남의 일에까지 간섭하면서 논평(?)을 합니다. 때로는 논평을 넘어 욕을 하거나, 심지어는 그 사람의 행동을 본인의 주관대로 바꾸려고까지 합니다.
* 출처 : Pixabay / Anthony Carvalho
무엇이 부족하여 이런 일이 벌어질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선 '토론'입니다. 주장은 있는데 토론이 없습니다. 심지어는 토론 자체를 회피하기도 합니다. 그냥 내 주장만 주구장창 질러댑니다.
다음은 '양보'입니다. 서로 주장이 완전히 다르다면 협상을 통해 서로 한 발씩 물러서서 접점을 찾아야 할 것인데, 절대 자기 것을 내놓을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다음은 '존중'입니다. 서로를 존중한다면 극단으로 부딪히고 물어뜯는 일은 적을 것입니다만, 요즘엔 서로를 대화 상대로조차 인정을 안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음은 '중재'입니다. 둘의 의견이 극단으로 맞붙고 있다면 누군가 예컨대 법원처럼 중간에서 합리적인 균형을 잡아줄 존재가 필요한데, 그런 중재자나 중재 제도가 없는 게 대부분입니다.
다음은 '정보'입니다. 모든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고 이를 모두가 알고 있다면 괜찮을 텐데, 때로는 정보가 통제되어, 때로는 너무 많은 정보에 자기가 보고 싶은 정보만 보게 되니 진실을 모르고 서로 감정싸움으로 물어만 뜯습니다.
무언가 두 주장이 부딪힐 때 그 교집합은 없는지, 조화를 시킬 방법은 없는지 찾는 것이 필요합니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무조건적인 금연 정책보다는 분연(分煙)이 답일 수 있는 것입니다. 일부 지역에서 겪고 있는 일이지만, 길거리에 흡연 금지를 해놓았더니 골목길로 다 들어와 흡연하는 통에 오히려 주민들이 더 피해 보는 일도 적지 않다고 합니다.
교집합을 찾으려면 먼저 상대의 주장을 무조건적으로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치부하면 안 됩니다. 조금 황당할 지라도 상대의 주장의 이유를 살펴보고, 그다음에 내 주장과의 교집합이 없는지 '의식적으로' 찾아야 합니다.
이는 사람들의 생각뿐 아니라 정책이나 제도의 측면에서도 같습니다. 최근에 조화와는 거리가 먼, 소수자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정책과 제도가 많습니다. 금연 거리 지정, 노후 화물차 전면 출입 금지, 부동산 대출 억제, 자사고 퇴출 등이 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이하게도 이러한 정책이 여야를 가리지도 않고 마구 쏟아집니다.
교집합과 조화를 찾자면 노력이 훨씬 더 들고 시간도 더 걸립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노력을 안 하고 상대 주장을 그냥 버려버린다면 그것은 어찌 보면 게으른 것입니다.
상대 주장을 기각하면 몸과 마음이 편할 수 있겠지만, 결국에는 상대의 더 큰 반발을 불러오게 되고 생각지도 못한 부작용에 직면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