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묻는다, "왜?"

그동안 당연했던 게 코로나 시대에는 더 이상 '당연하지' 않다

by mpd 알멋 정기조


'코로나19' 바이러스의 대유행(pandemic)은 우리 일상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사실 위력만 따지고 보면 치명률이 최대 90%에 달한다는 '에볼라(Ebola)' 바이러스나 태아를 영구 소두(小頭) 장애로 만든다고 알려진 '지카(Zika)' 바이러스 등 무시무시한 전염병이 더 많습니다만, △선진국과 후진국을 가리지 않고 지구 전체를 뒤흔들며 △일상 깊숙이 파고들어 △이렇게 오랫동안 인류를 괴롭힌 바이러스는 현대에 들어서는 코로나19가 처음이 아닌가 합니다. 인류 역사 전체로도 14C '흑사병(Great Plague)'이나 20C 초 '스페인 독감(Spanish Flu)' 이외에는 견줄 만한 사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나아가 코로나19는 앞으로 출현할 새로운 바이러스들의 위협에 일상적으로 노출되는, 이른바 '위드 바이러스(with virus)' 시대의 서막에 불과하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2003년 사스(SARS), 2009년 신종플루, 2015년 메르스(MERS), 2019년 코로나19 등 그동안 5~6년 주기로 새로운 바이러스들이 출현하여 인류를 위협해 왔는데, 종전에는 바이러스들이 6개월, 길어야 1년 정도면 진압(?)이 되었고 그 영향도 국지적이었던 것에 비해 코로나19는 적어도 2년 이상은 인류 대부분의 일상을 '비정상화'시킬 것이 거의 확실해 보입니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적어도 2년 이상의 방역 태세를 5~6년 단위로 맞는 '일상적 방역' 시대가 될 가능성도 감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항상 마스크를 써야 하는 등의 '코로나 라이프'가 일상의 표준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 출처 : Pixabay / Tumisu



코로나 방역이 일상이 된다면?


코로나 시대에 우리 일상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간단히 생각해 보면, △항상 마스크를 착용해야 하고 △다수의 인원이 한 번에 모이기 어려우며 △다중 이용시설이 일찍 문을 닫고 △결혼이나 종교행사, 집회 등 행사가 대폭 축소되며 △재택근무나 원격 수업이 일상화됩니다.


하나하나 살펴볼까요? 여기에서는 부정적 측면만 주로 다뤄보겠습니다. 다소 극단적이라 생각하실 수도 있겠으나 어디까지나 부정적 측면의 가설적인 시나리오입니다.


먼저 항상 마스크를 착용하면 어떻게 될지 생각해 보면, 우선 사람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습니다.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으니 한번 만난 사람을 기억하기가 훨씬 더 어렵고 그래서 인간관계를 형성하기가 더 어려워집니다. 타인과 교감이 어려워지고 감정을 표현할 일이 줄어들어 표정이 메말라갑니다. 영업이나 부탁·청탁이 어려워지고 철저히 대면 관계가 사무적으로 바뀝니다. 능력이나 스펙이 없으면 상대에게 어필조차 힘들 수 있습니다.


다수의 인원이 모일 수 없으니 각종 모임이나 친목이 대폭 줄어듭니다. 다수의 인원이 결집하는 동문회나 향우회, 등산 모임 등의 친목회가 사실상 해체됩니다. 친밀 관계의 단위가 4인 정도로 축소될 가능성이 높고 소수의 절친만 남습니다. 가족 관계에 있어서도 동거자 외에는 다 남이나 다를 바 없게 되고, 따라서 결혼만 해도 형제자매는 멀어질 것이며 향후 상속 등의 문제에서 형제간에 다툴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사람 만날 기회부터 줄어드니 연애부터 힘들어지고, '4비', 즉 비연애·비섹스·비결혼·비출산이 심화되어 가뜩이나 심각한 저출산 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것입니다.


다중 이용시설이 일찍 문을 닫게 되면, 일부 잘 되는 곳을 제외하고는 상당수의 점포가 폐업 위기로 몰립니다. 점포들마저 문을 닫으면서 소수의 번화가 외에는 상가가 공실이 넘쳐나고 도시의 상당 지역이 마치 '베드타운'처럼 조용해질 것입니다. 사람들이 일찍 집으로 귀가하고 집에서의 여가 활동이 중요해집니다. 가족들끼리 시간이 늘어날 가능성도 있지만 그보다는 가족들끼리 부대껴서 작은 일로 다투고 멀어질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은퇴 이후에는 창업이 힘들어져 노후 대책을 세우기가 더 어려워질 것입니다.


결혼이나 집회 등 각종 행사가 소규모화 되면서 행사 자체가 대부분 없어집니다. 축의금과 부의금을 계좌이체로 보내게 되고 종국에는 아예 보내지 않게 될 것입니다. 각종 종교는 신도들의 모집은 물론 예배부터 힘들어져 존폐의 위기를 맞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점점 무신론자가 될 것입니다. 노동조합도 동력과 투쟁력을 잃고 점점 자본에 종속되거나 사측의 횡포(?)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공연이나 영화 상영, 체육 행사 등이 어려워져 예체능계는 심각한 위기에 빠질 것이며, 이에 따라 예체능에 우수한 인력들이 아예 진출하지 않으려 할 것입니다.


재택근무가 일상화되어 출퇴근 수요가 줄어듭니다. 교통 수요가 줄어들면 사업성이 떨어져서 철도나 도로 등의 신규 투자가 어려워지고, 기존 민간투자 노선들은 세금으로 적자를 보전해줘야 할 것입니다. 회사에서는 철저히 성과 위주로 인사 평가를 할 것이고 전처럼 기회를 봐 가며 놀면서 근무했다가는 바로 해고의 칼날을 맞을 수 있습니다. 학교에서는 소위 '전인 교육'이 거의 불가능해지고 마치 학원처럼 되어 공교육이 무너질 것입니다.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 주요 방역 수칙

* 출처 : 보건복지부 / 2021.8.9. 기준



코로나는 불가역적이었던 관행과 질서를 바꾼다


너무 암울한 얘기만 했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음지가 있으면 양지가 있는 법입니다. 코로나는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던 불합리하거나 불필요한 관행과 질서를 대폭 바꿔놓을 것입니다. 이글 제목에서 썼지만 코로나는 그동안 당연시되던 것에 대하여 비판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왜?"


몇 가지 예를 들어 볼까요?


학생은 당연히 학교에 가야 한다... 왜? 앞으로는 학교에 가지 않고도 공부를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제시간에 당연히 출근해서 자리에 앉아야 한다... 왜? 재택근무와 유연 근무가 일반화된 마당에 정시 출근을 강조하는 것은 구시대적입니다.

경사는 몰라도 조사(弔事)는 직접 가야 한다... 왜? 계좌에 입금만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이고, 나아가 종국에는 경조사는 가족끼리만 하는 소규모 행사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명절에는 당연히 부모님을 찾아봬야 한다... 왜? 이제 며느리들 해방 시대인가요?


개인뿐 아니라 사회적 관행도 마찬가지입니다.


서울에 가까울수록 부동산 가치가 높다... 왜? 앞으로는 출퇴근이나 학군을 고려해서 주거지를 정할 필요가 점점 줄어질 것입니다.

건물주가 조물주보다 위이다... 왜? 이제 건물주는 자기 건물에 공실이 넘쳐나는 것을 보고 한숨을 지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정규직 일자리가 양질의 일자리이다... 왜? 이런 상황이라면 점점 근무 형태는 임시직이나 계약직으로 바뀔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대기업에 취업해야 성공하는 것이다... 왜? 대기업이라도 업종에 따라서 코로나 시대 이후에는 손가락 빨(?) 직업들이 적지 않습니다. 기업 규모가 작더라도 코로나 상황에 맞는 직업들이 각광을 받게 될 것입니다.

나이가 먹을수록 연봉이 오른다... 왜? 철저히 성과 중심으로 인사 평가를 받기에 연차가 오르더라도 월급이 오른다는 보장이 없어질 것입니다.


좀더 범위를 넓혀 봅니다.


후진국들에게 인도적 손길을 주어야 한다... 왜? 선진국이라도 팬데믹에 휘청대는 마당에 후진국을 배려할 여유는 없습니다. 국제 관계에서도 철저히 자국의 이익을 우선시할 것 같습니다.

동맹국과의 신의를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 왜? 마찬가지입니다. 그동안의 이념적 국제 질서는 해체되고 당연히 특정 나라를 돕는다는 것은 없어집니다. 우리나라를 돕는 나라가 동맹국입니다.

선진국은 동경의 대상이고 문화나 가치적 측면에서도 우월하다... 왜? 이번에 코로나를 겪으면서 선진국이라는 나라들의 가치관이나 관습이 얼마나 답답한지 느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코로나는 그동안 선진국들이 만들었던 서열(?)을 허물었습니다.


어찌 보면 코로나는 기득권을 허물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일 수도 있습니다.


코로나3.jpg

* 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 재집권 사례에서 보듯, 이제 더 이상 동맹국에 대한 무조건적인 신의는 담보할 수 없습니다.

* 출처 : Unsplash / Ehimetalor Akhere Unuabona



오히려 인간적 본성이 필요하다


제가 사석에서 이런 농담을 한 적이 있습니다. 불타는 집값, 특히 서울의 리버뷰(강변)나 부산 해운대의 오션뷰(해변)에서의 미친(?) 집값은 자연재해만이 잡을 수 있다... 강변에 하루살이가 폭증하여 창문을 열 수 없는 지경이 되면, 해변에 태풍 때마다 월파 되어 침수되고 빌딩풍으로 유리창이 깨진다면 집값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생각입니다.


코로나를 보며 이런 생각이 듭니다. 우주에서 먼지만도 못한 존재인 인간이 자기들끼리 치고받고 물어뜯고 강제하고 이런 게 과연 의미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인간이 만든 관행과 질서는 코로나 앞에, 그리고 자연 앞에 철저히 무력한 데 말이지요.


그래서 자연재해인 코로나 팬데믹 시대에 오히려 인간적 감성과 철학이 강조되어야 한다는 역설적인 결론에 이릅니다. 코로나는 더욱더 인간을 메마르게 할 것이고 기계적으로 만들 것입니다. 감정이 부족하고, 교감이 부족하고, 가치관이 부족하고, 여가가 부족하고, 인간적 배려가 부족한 '5불(不)' 시대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더더욱 사람과의 만남과 관계가 중요해지고, 인본주의 교육이 중요해지고, 가치관의 정립이 중요해지고, 여가와 멋이 중요해지고, 관용과 이해가 중요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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