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당이 과하면 양극화와 대립이 심화된다

협상과 타협, 그리고 상생 정치의 한계

by mpd 알멋 정기조


이번 토픽은 협상과 타협의 정점에 있는 여의도 정치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실질적으로 양당제나 다름없는 현재의 대한민국 여의도 정치에서 의석 과반(50%, 150석 이상)을 차지하고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굉장한 차이가 있습니다. 이유는 두 가집니다. 하나는 많은 지지를 받은 의견을 채택하는 다수결 원칙, 그리고 다른 하나는 정당 중심의 의사결정 관행 때문입니다.

(*최근에는 소위 '국회 선진화법' 이후에는 60%(180석 이상)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데, 이에 대해서는 아래에 상술하겠습니다.)


다수결 원칙은 동일한 권한을 가진 많은 사람의 의견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승자독식의 폐해가 존재합니다. 소수의 의견은 철저히 무시되는 제도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현행 선거인데, 2008년 강원도 고성군수 재보궐선거에서는 단 1표 차로 당락이 갈리는 기막힌 일이 벌어진 바 있습니다. 1표가 많아서 군수가 되고 1표가 적어서 낙선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또 하나는 정당 중심의 의사결정 관행입니다. 전체 국회의원 수는 300명에 달합니다. 각 위원회로만 봐도 16~30명입니다. 그중에서 의원 1명이 내 목소리대로 결정을 하는 건 쉽지 않습니다. 절차 상으로도 굉장히 복잡합니다. 1명이 안건마다 다른 의원들을 다 설득해야 하니까요. 그래서 국회는 정당 중심으로 의사결정을 하는 관행이 생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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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명 어디서 데려올 방법 없을까요?

* 출처 : MBC 보도 화면 갈무리



국회의 오랜 관행, 협상과 타협


그렇다면 의석 수많은 다수당이 소위 '깡패'가 되어야 할 텐데요, 실제로는 그렇게만 되지는 않습니다. 이를 보완하는 제도가 있습니다. 바로 원내 교섭단체 제도 소위 '국회선진화법'이라 불리는 국회법 조항들입니다.


국회의원 20명 이상을 보유한 정당은 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교섭단체는 각 위원회에 간사 1명씩을 둘 수 있습니다. 원내대표는 각 당의 교섭단체 대표입니다.


상임위원회에서 각 안건을 표결할 때 무조건 다수결에 부치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법안소위(공식 명칭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여야가 법안을 심사하게 되어 있는데, 이 법안소위는 (간혹 강행 처리가 있기는 하지만) 만장일치가 관행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법안에 대해서는 위원회 소속 여야 간사들끼리 합의를 봅니다. 그러기 전에는 상임위원회 전체회의 표결에 올라가지 않습니다.


그리고 아주 중요한 법안에 대해서는 여야 원내대표들끼리 합의를 봅니다. 이 중에서 특히 더 중요한 법안은 여야 원내대표 합의와 함께 각 당의 의원총회에서 소속 의원들의 의견을 구하게끔 되어 있습니다.


믿어지지 않으시겠지만(!), 다수당과 소수당이 어찌 됐건 '합의'의 과정을 거치게끔 되어 있는 게 국회 관행입니다. 이렇게 여의도 정치에서는 '나름대로(?)' 협상과 타협의 정치를 실현하고 있습니다.


밀당2.JPG 국회 법안소위 심의 (2019.7, 국토교통위원회)

* 국회 법안소위 심의 모습입니다. 단 한 명이라도 소위 위원이 강하게 반대하면 법안 통과가 무산되는 것이 보통입니다.



물론 다수당이 합의 무시하고 쪽수로 무조건 밀어붙일 수도 있겠는데, 그래서 이를 방지하기 위해 2012년 5월에 속칭 '국회 선진화법'이라 불리는 「국회법」 개정안이 통과됐습니다.


「국회법」 제85조의2 에는 '안건의 신속처리'에 관한 규정이 있습니다.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되면 법에 정해진 날짜 안에 심사 혹은 의결을 마쳐야 합니다. 각 위원회 180일,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 90일, 본회의 60일입니다.


그런데 이 신속처리안건 지정 요건이 재적의원 3/5입니다. 반대쪽에서 단일대오로 반대표를 던질 것을 감안할 때, 전체 의석이나 위원회 의석에서 60%, 즉 180석 이상을 갖고 있어야 된다는 얘기입니다.


당시 국회의장의 직권 상정 권한도 대폭 축소됐습니다. ① 천재지변, ② 전시·사변 등 국가비상사태, ③ 각 교섭단체대표과 합의 때만 가능합니다. 과거처럼 국회의장이 의사봉 잡고 강제로 안건 올리는 게 어려워졌습니다. 또한 재적 1/3 이상 요구로 '필리버스터', 즉 무제한 토론 등을 통한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도 할 수 있습니다.


여야 합의가 되면 날짜 지정해서 며칠, 아니 당일이라도 바로 뚝딱 처리할 수 있지만, 합의가 안 되면 그리고 다수당이 60% 이상을 못 가졌다면 다수당은 무조건 여야 합의 이끌어내야 됩니다. 이 덕분에 과거에 있었던 날치기 통과가 불가능해졌고 국회 내에서 몸싸움이 없어졌습니다. 이러한 국회 내 몸싸움 촌극을 가리켜 소위 '동물국회'라고도 합니다.


물론 합의가 안 되면 법안들이 통과 안 되고 계속 잠자는 법 처리 지연이 생기긴 했습니다만(이를 반대로 '식물국회'라 합니다), 분명히 다수당의 횡포 및 소수당 등의 폭력적 저지 등을 불가능하게 하고 법안이든 뭐든 여야 합의에 따른 처리를 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최근 제21대 국회에서는 범여권이 180석 이상을 확보함에 따라 사실상 '강행 처리'가 가능해져, 이와 같은 합의 정신이 조금 퇴색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모든 법안을 '마음대로' 처리하는 것은 정치적인 부담이 크기에, 정말로 긴요하다고 생각하는 법안에 한하여 강행 처리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습니다.


역시 믿어지지 않으시겠지만(!), 여당이 절대다수를 확보한 상황 속에서도 여의도 정치는 협상과 타협의 관행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The Winner Takes It All' 은 아닌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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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5월 '국회선진화법' 통과 때의 언론 보도 화면

* 출처 : KBS 보도 화면 갈무리



협상과 타협이 능사일까?


그런데 이렇게 협상과 타협을 결정 방식으로 하면 무슨 문제가 생기느냐? 심각한 양극화와 갈등이 생겨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래 그림을 보시겠습니다.



여기 빨갱이(?)와 파랭이(?)가 다투고 있습니다. 처음에 빨갱이와 파랭이는 각각 10씩 요구했습니다. 그러면 협상 후 힘의 균형은 0에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런데 빨갱이가 무리한 요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30까지 요구했습니다. 그러면 힘의 균형은 20으로 이동할 것입니다. 무리한 요구를 한 빨갱이가 유리해지죠. 이에 대응해서 파랭이도 -30까지 요구를 당겨버렸습니다. 그래서 다시 힘의 균형은 0으로 이동했습니다.


물론 다수결로 밀어붙이는 것보다는 협상과 타협의 정치가 나을 수 있겠습니다만, 이처럼 협상과 타협이 기계적으로, 비합리적으로, 그리고 단순 배분으로 이루어지면, 위에서처럼 양자는 서로 더 양극화되어 극한 대립으로 치달을 수도 있습니다. 협상에 유리한 지위를 위해서 일부러라도 무리한 요구를 던지게 된다는 것이죠.


특히나 애초부터 타협의 여지가 매우 적은 첨예한 대립 사안에 대해서는 저런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어차피 적당한 타협은 어려우니 최대한 요구치를 높입니다. '의견 절충이 되면 좋고 안되면 말고' 이런 식입니다.


또 하나 문제점은 매번 충분한 논의 없이 벼락치기 처리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협상 테이블에서 솔직하게(!) 나의 '패'를 전부 노출하면 어떻게 될까요? 아마 상대를 이기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최대한 요구를 극한으로 당겨서 강경 대응하다가, 막판에 시간 닥쳐서야 조금씩 양보하는 것입니다. 예전에 국회에서 항상 제야의 종소리까지 들어가며 예산안과 법안들을 통과시켰던 것 기억하실 겁니다.


이렇게 되면 타협을 논의할 물리적 시간 자체가 굉장히 짧아집니다. 그래서 최종 결정은 논리와 합리적 양보보다는 정치 논리와 비합리적 요소로 결정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내부의 폭넓은 의견 수렴도 어려워지고 교섭 대표가 전권을 휘둘러 결정하게 됩니다.


이게 어디 꼭 정치만의 문제겠습니까.


자동차 접촉 사고 나 보십시오. 내가 보기에는 '부딪힌 것 맞나' 싶은데 상대는 무조건 병원 가서 찍을 것 다 찍고 눕겠다고 합니다. 차에 흠집도 안난 것 같은데 범퍼를 통째로 갈겠다고 하면서 렌트까지 하겠다고 합니다. 아까 '빨갱이'와 '파랭이'처럼 무조건 최대한 당기고 보는 것입니다.


노사 갈등도 마찬가지입니다. 극한 대립 달립니다. 한쪽은 총파업, 한쪽은 무관용입니다.

최저임금 협상도 그렇죠. 한쪽은 두 자리 퍼센트 상승, 한쪽은 임금 삭감이나 동결입니다.

다른 회사와 가격 협상을 벌일 때도 그렇습니다. 실제로는 200만 원이면 충분한데, 견적서에는 250만 원, 300만 원 마구 높여서 견적서를 보냅니다.



너 하나 먹고, 나 하나 먹고


국회에서는 이렇게 첨예한 대립이 있을 때 가끔 무관한 법안을 서로 딜하는 경우도 나타납니다. 이를 소위 '패키지 법안 처리'라고 합니다. 대립이 첨예한 안건 하나하나를 타협하기 힘드니, 너 하나 먹고 나 하나 먹는 식으로 해결하자 이겁니다. 무슨 법안을 흥정하고 거래하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최후의 해결 방법이 되곤 합니다.


예컨대 2013년 말 국회에서는 사실상 2:2 트레이드(!)가 이뤄졌습니다. 당시 여당이었던 새누리당은 △2014년 예산안과 △외국인투자촉진법*을 가져갔고, 야당이었던 민주당은 △국가정보원의 정치 관여를 제한하는 국가정보원법 개혁안과 △상설특검 및 특별감찰관제를 도입하는 검찰 개혁안을 얻어 갔습니다. 이 와중에 일부 영향력 있는 국회의원들의 '쪽지 예산' 논란까지 있기도 했습니다. 그 극한 대립 와중에 자기 지역구도 챙긴 '일 잘하는(?)' 의원님입니다.

* 당시 외국인투자촉진법 개정 내용 : 지주회사의 손자회사가 자회사(소위 '증손회사')를 가질 때 지분 100%를 소유해야 한다는 제한을 외국 회사와 공동 투자할 경우 50%로 낮춰주는 내용. 대기업 특혜 법안이라는 논란이 있었음.


예산안과 외촉법, 국정원 개혁과 검찰 개혁, 그리고 쪽지 예산... 정말 아무런 관련이 없어 보입니다. 너 하나 먹고 나 하나 먹고, 참으로 비합리적이지 않습니까? 결국엔 다수결도 비합리적인 결정 방식일 수 있겠지만, 협상과 타협도 비합리적 결정 방식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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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 트레이드 당시의 보도 화면. 당시 시각은 2014년 1월 1일 새벽 5시경이었다고 합니다.

* 출처 : 뉴스토마토 보도 화면 갈무리



협상과 타협이 의미를 가지기 위한 필요조건


그럼 이런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요?


먼저 합리적 중재자와 감시자가 있으면 일정 부분 해결됩니다. 200만 원 적정가에 250만 원을 부르는 A회사에 대하여, 중재자나 감시자가 '그건 바가지다!' 라고 지적한다면 A회사와 거래를 하는 B회사는 그걸 알고 바로 시정 요구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아가 중재자나 감시자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A회사는 그렇게 바가지 가격을 함부로 제시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정보의 투명한 공개가 있으면 해결될 수 있습니다. A회사가 요구하는 부분과 B회사가 요구하는 부분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게시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중재자나 감시자가 따로 없어도 일반 대중들도 그 내용을 보고 '바가지다!'라고 알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밀실 야합이 부적절한 이유입니다.


임의적인 의제 추가가 없도록 하는 협상의 룰도 마련할 필요가 있습니다. C 법안과 D 법안을 논의하고 협상해서 결정짓기로 했으면 (본래와 무관한) 다른 이슈를 끼워 넣지 말자고 미리 못 박고 협상하자는 얘기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협상 중에도 계속 핑곗거리 만들어서 자기 쪽으로 유리하게 만들려고 할 것입니다.


물론 중대하게 상황이 달라지는 경우는 있을 수 있습니다. 처음 협상 개시할 때 몰랐던 C 법안의 치명적인 문제점이 발견되었다? 그러면 협상 테이블 다시 차려야죠. 무관한 걸 넣지 말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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