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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Dec 26. 2022

귀하에게 사랑 올립니다 (4)

네 번째 편지



나의 귀하에게

 

 우리는 며칠 사이에 아주 바쁘게 지냈습니다.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에게 주어진 업무를 소화하고, 일부러 시간을 내어 좋은 곳에 놀러가기도 하면서요. 살림을 완전히 합치기 전 까지는 이제 사흘 남았습니다. 당신은 몰라도 내 주변에서는 신혼을 준비하는 예비 신부인 것 마냥 나를 대해요. 우리의 일상에 필수불가결한 여러가지 계약을 진행하면서 책임의 부피가 늘어가고 있어요. 아직까지는 모든 것이 순조롭게 흘러가고 있는데 만약 그렇지 못하더라도 나는 쉽게 낙담하거나 좌절하지 않을 겁니다. 한 해를 당신과 함께 저물어 보내고 새로운 해를 맞이할 생각에 벌써부터 들뜨고 즐겁네요.

 최근의 당신은 작품을 준비하느라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만, 나에게 종종 신경을 써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말하는 걱정이 무색하게도 당신의 다정함은 여전합니다. 사실은 외로움을 느낄 틈도 없이 충만한 나날을 보내고 있어요. 최근의 한 달만 돌아보아도 스스로 부끄럼 없이 열심히 살았다 라고 자신할 수 있거든요.

 나는 일터에서도 당신의 품에서도 넘칠 만큼의 사랑을 받고 있으니까요. 바깥에서 안으로 흘러 들어오는 모든 애정을 귀하게 여기며 오늘보다 내일 더 섬세하고 상냥한 사람이 되고자 합니다.


 걱정이 되지 않아요. 아직은 잘 모르겠다거나 같이 살아봐야 알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당연하게 뒤따를 시기에 나는 기묘한 고양감에 부풀어 있답니다. 당신의 흔쾌한 동의에는 내 생각보다 많은 책임과 무게가 담겨있었던 것 같아요. 다짐은 누구에게나 쉬운 일이지만 실제로 이행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움직임에 주저함이 없지만 모두가 나와 같지 않다는 점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어요, 그런데도 당신은 결심을 내린 순간부터 지금까지 마다하지 않고 노력하지 않습니까?

 당신이 가고자 하는 길에 늘상 행운이 뒤 따랐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행운 뒤로 나의 응원이 빼곡 했으면 합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우리는 무려 16,274 걸음을 걸었더군요. 객관적으로 많이 피곤했을텐데, 그 날의 기억에서 내 걸음은 마냥 가벼웠던 것 같아요. 수 많은 인파를 비집고 다니는 와중에 당신이 그랬어요. 걷다가 정말로 위험할 것 같으면 당신의 손을 그냥 놓아버려도 괜찮다 라고. 돌이켜서 생각해보면 당신은 항상 나의 건강을 우선했던 것 같아요. 매일 조금씩 더 많이 아껴주는 것 같기도. 무슨 일이 생겨도 전후 사정 보다도 내가 괜찮은 것을 우선으로 여기는 당신이 나의 사람이라 얼마나 행복한지요. 당신의 말로 하여금 나는 내 자신을 이전보다 소중하고 곱게 여기게 되었습니다. 때마다 당신도 나에게 비슷한 감정을 느꼈으면 하네요. 내가 당신에게 충분히 사랑스럽기를. 어제를 돌아보며 지나간 시간을 아쉬워 하기 보다는 차라리 내일의 각오를 다질게요. 그리고 내일을 기약하기 보다는 오늘 주어진 시간에 충실하겠습니다. 당신이 언제든 나의 손을 잡아줄 거라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에요.


 이제부터는 혼자 보다도 둘이 익숙하고, 함께라는 단어가 보편적일 내일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하고는 있지만 당신이 염려하는 부분을 모르는 게 아닙니다. 내색하지 않는 것은 단순히 나에게 듬직하고 멋진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라는 것도. 뿐만 아니라 정말로 어떤 자신과 야망이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까지도 미리 알고 있어요. 그러니까 힘들 때는 언제든 말해도 좋아요. 단순히 그런 이유로 당신을 나약하게만 생각하지 않을 거니까요. 혼자 이겨내고 참고 견디는 일은, 분명 삶을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어느정도 중요하기도 합니다. 인내심과 이해심이 깊다는 건 쉽게 좌절하지 않는 사람의 특징이기도 하구요. 우리가 사는 세상은 치열하고 여유의 틈을 내기가 어려워서 모두가 친절하기 보다는 인색하기를 선택합니다. 실제로는 그렇게 행동하고 싶지 않더라도 말이에요. 참기 보다 화내기가 편하거든요.

 누군가는 나를 보고 특이하다고 생각하겠죠. 사서 고생이라고도 할 거구요. 감정 노동으로 스스로를 갉아먹고 있다고 탓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친절은 언제나 나의 무기였고, 이것이 내가 싸워가는 방식이에요. 그래서 나는 매번 편하게 인상을 찡그리기 보다는 번거롭고 수고스럽더라도 행복하기를 선택해요. 당연히 힘들죠. 아예 마음이 닳지 않는다곤 할 수 없어요. 하지만 내 행동에 후회한 적도 없답니다.


 나는 언제든지 당신에게 의지하고 싶으니까요. 당신도 내가 곁에 있음을 잊지 말았음 해요.

종종 세상은 걱정 이상으로 매몰차고 잔인할 때가 있어요. 하지만 적어도 우리에게는 서로가 있잖아요. 


 당신과의 거리는 이제 세 발자국 남았습니다.

서둘러 달려오지 않더라도 나는 언제나 이곳에 있을 겁니다.

그래도 당신은 뛰어오겠죠.


 생애의 절반을 그리워한 연인처럼 서로를 반기고, 생애의 마지막 날처럼 애틋하기를.

열정과 여유의 중심에서 균형을 잡을 수 있기를.

 순백의 눈길 위에 새로 난 발자국처럼, 가는 길에 새겨진 우리의 시간은 신뢰라는 이름으로 다시 돌아올 겁니다.


 2022년 12월 26일,

당신의 사랑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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