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기러기, 메리 올리버
<기러기>
착하지 않아도 돼.
참회하며 드넓은 사막을
무릎으로 건너지 않아도 돼.
그저 너의 몸이라는 여린 동물이
사랑하는 걸 사랑하게 하면 돼.
너의 절망을 말해봐, 그럼 나의 절망도 말해주지.
그러는 사이에도 세상은 돌아가지.
그러는 사이에도 태양과 투명한 조약돌 같은 비가
풍경을 가로질러 지나가지,
초원들과 울창하 나무들,
산들과 강들 위로.
그러는 동안에도 기러기들은 맑고 푸른 하늘을 높이 날아
다시 집으로 향하지.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세상은 너의 상상에 맡겨져 있지,
저 기러기들처럼 거칠고 흥겨운 소리로 너에게 소리치지.
세상 만물이 이룬 가족 안에 네가 있음을
거듭거듭 알려주지.
- 메리 올리버 시선집, 민승남 옮김 -
착하지 않아도 돼.
(You do not have to be good.)
‘착하게 살자’는 친구네 집 가훈이었다.
단정한 글씨체로 커다랗게 걸려있던 문장은 지금이라면 어느 조직에서나 쓸 법하지만, 우리는 자연스럽게 ‘착해야 한다’는 말을 보고 들으며 자랐던 것이다.
학교나 집에서 뿐 아니라 동화책이나 TV에서까지 어른들은 입을 모아 강조했다.
곱고 어진 성품은 당연히 좋은 것이지만, 자칫 ‘착하다’라는 굴레에 갇혀버리면 스스로의 마음을 돌보지 못하게 된다.
모두를 이해하려고 애쓰다 보면, 정작 나 자신은 아무도 이해해주지 않는 자리에 남게 되기 때문이다.
‘착하게 살자’라는 말은,
참아야 하고, 이해해야 하고, 미워하면 안 되고, 늘 웃어야 하는 사람이 돼야 한다고 은근한 강요를 받는 느낌이다.
‘좋은 사람’으로 남기 위해 참아야 하는 말과 웃음 뒤로 숨겨진 서운함 들은 결국 마음의 무게로 남는다.
심지어 ‘착하게 살자’를 가훈으로 매일같이 보고 자란 그 친구는 착하지도 않았다.
착하게 살아야 한다고 배운 어른들에게 시인은 부드럽게 위로한다.
누구라도 세상이 바라는 기대에 맞게 살 필요는 없다고-
도덕적이지 못한 삶을 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당신이 사랑하는 걸 사랑하고, 몸과 마음이 원하는 것을 존중해 주어야 한다고 말이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세상은 너의 상상에 맡겨져 있지
크리스 샌더 감독의 <와일드 로봇>은,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이자 아마존에서 ‘올해의 책’으로 꼽힌 피터 브라운의 동화를 원작으로 삼아 만든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이다.
우연한 사고로 거대한 야생에 불시착한 로봇 로즈(Roz)는 주변 동물들의 행동을 배우며 낯선 환경 속에서 적응해 가던 중, 사고로 세상에 홀로 남겨진 아기 기러기 브라이트 빌(Brightbill)의 보호자가 된다. ‘로즈’는 입력되어 있지 않은 새로운 역할과 관계에 낯선 감정을 마주하고 겨울이 오기 전에 남쪽으로 떠나야 하는 ‘브라이트 빌’을 위해 동물들의 도움을 받아 이주를 위한 생존기술을 가르쳐준다. 그러나 선천적으로 몸집이 작은 ‘브라이트 빌’은 짧은 비행도 힘겨워하는데…..
로봇 ‘로즈’와 아기 기러기 ‘브라이트 빌’은 특별한 기적을 일으킬 수 있을까?
-네이버 영화 소개 (줄거리)-
영화에 등장하는 각종 동물 친구들은 ‘엄마가 처음’인 로즈를 도와 각자만의 개성으로 도움을 주는데,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했던가.
영리하고 다소 얄미운 여우는 로즈 곁에서 육아 도우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아기주머니쥐는 생생한 육아현장을 직접 선보이며 알려준다.
그 밖에도 동물들은 로즈에게 자연의 이치와 생존 기술을 가르치며 로즈 역시 그들과 감정적 교류를 통해 성장하고, 이 과정에서 인간과 동물 모두에게 중요한 가치인 협력, 우정, 모성, 공존등이 거듭 강조된다.
따뜻한 영화가 귀한 시대라 그런지, 엄마가 처음이었던 시절의 내가 떠올라서였는지, 아무튼 나에겐 반갑고 감동스러운 영화로 기억된다.
때로는 살아남으려면,
프로그래밍된 자신을 뛰어넘어야 해!
그 애도 희망은 있어.
날개가 힘을 못쓰더라도, 날개를 대신할 마음이 있다면.
너답게 날아!
남들 따라 하지 말고.
영화에 나오는 명대사는 시에서 강조하는 부분과도 맞닿아 있다.
네가 로봇이든, 작은 아기 기러기든지 간에 세상은 네 뜻대로 달라질 거라고-
메리올리버가 했던 인터뷰 내용 중 이런 말이 있다.
“우리 모두 허기진 마음을 안고 살며, 행복을 갈구한다. 나는 내가 행복한 곳에 머물렀다.”
시인은 허기진 삶 속에도 행복에 머물러 있다고 말한다.
이 시는 2009년 <9.11 테러 희생자 추모식>에서 당시 부통령이었던 조 바이든이 낭송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세상엔 우리가 감히 위로할 수 없는 종류의 수많은 절망들이 존재한다.
그러는 사이에도 세상은 돌아가고, 기러기들은 날고 날아 집으로 돌아간다.
행복이란 ‘어디에 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보느냐’의 문제다.
당신의 행복은 충분한가?
충분치 아니한가?
by. 예쁨
내일은 널 숲에 심을 거야.
그곳에서 자유롭게 자라, 네가 원하는 만큼 온 세상으로 뻗어나가.
난 네 그늘 아래로 파고들 거야.
안온한 너의 품으로.
- 그림자 나비, 최영선 -
*커버사진출처 :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