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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은 그런 것이다

(17) 특별한 일, 이규리

by 예쁨


<특별한 일>


도망가면서 도마뱀은 먼저 꼬리를 자르지요

아무렇지도 않게

몸이 몸을 버리지요


잘려나간 꼬리는 얼마간 움직이면서

몸통이 달아날 수 있도록

포식자의 시선을 유인한다 하네요


최선은 그런 것이에요


외롭다는 말도 아무 때나 쓰면 안 되겠어요


그렇다 해서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는 않아요


어느 때, 어느 곳이나

꼬리라도 잡고 싶은 사람들 있겠지만

꼬리를 잡고 싶은 건 아니겠지요


와중에도 어딘가 아래쪽에선


제 외로움을 지킨 이들이 있어

아침을 만나는 거라고 봐요


-이규리 시집 〈최선은 그런 것이에요〉 中에서-





자절 (自切/自截) :
일부 동물이 위기를 벗어나기 위하여 몸의 일부를 스스로 끊는 일.
도마뱀은 꼬리, 게나 여치 따위는 다리를 끊는데 그 부분은 쉽게 재생된다.

-표준국어대사전-


잘린 도마뱀의 꼬리가 땅 위에서 꿈틀거리는 모습을 떠올려본다.

상상만으로도 꼬리뼈에 힘이 들어가고 온몸에 전율이 흐른다.

잘라 낼 꼬리도 없으면서 말이다.

몸이 몸을 버리는 일,

‘자절’이란 이처럼 상상만으로도 괴로운 일이었다.


도마뱀의 자절은 포식자의 위협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한 자기 방어 기제로 작용하며, 보통 몇 주~몇 달 동안의 기간을 거쳐 새 꼬리가 재생된다.

하지만 새 꼬리는 전보다 짧고 색깔과 질감이 상당히 달라진다고 한다.

또한 꼬리가 끊어지면 면역체계가 약해져 도마뱀의 건강과 수명에도 나쁜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마뱀은 급박한 상황에 닥치면 과감하게 꼬리를 끊어낸다.

얼마간은 떨어져 나간 꼬리가 포식자의 눈을 유인하고 그 사이 도망칠 시간을 번다.

도마뱀에게 꼬리를 잘라내는 일은 자신을 지키는 최선인 것이다.


우리에게도 꼬리 대신 어떤 무엇이든 잘라내야 하는 순간이 있다.

수많은 마음과 기억, 때로는 인간관계마저 끊어야 한다.

스스로를 지키고 살아남기 위해서-




나를 지키기 위해 버려야 할 것은 무엇이고,
끝까지 품어야 할 것은 무엇일까?


28년전,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가까이 살던 고모네 가족과 살림을 합쳤다.

정확히는 언니와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로 고모네가 들어와 살았는데,

조금 큰 평수로 이사를 가면서 그 집은 고모부 명의로 변경했고 당시 미성년자였던 언니와 나는 별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렇게 3년 정도 고모네 식구들과 함께 살다가 언니와 나는 집을 나왔다.

고모는 근처에 우리가 살 집을 마련해 주었지만, 차고 옆 창고를 개조해 만든 허름한 전셋집이었다.


결혼식날 고모와 고모부는 부모님의 빈자리를 대신해 주었다.

직접적으로 자리 해준 것은 아니었지만 당시 의지 할 수 있는 어른으로서 기대는 마음이 컸다.

나는 정확한 결혼식 축의금 금액을 모른다.

고모는 결혼식에 손님이 많이 와서 밥값 치르는 데만 해도 빠듯하다고만 했다.

언니 결혼식 때도 마찬가지였고, 부모님 사고 보험금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

돈 이야기를 꺼내면 고모는 정색을 했고, 과감하게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결혼 후 뱃속에 둘째가 만삭일 무렵, 고모는 할아버지의 유산 문제로 내 인감을 필요로 했다.

인감도장만 보내라는 고모.

할아버지 유산이 결코 큰 금액은 아니었지만 더 이상 돈이 문제가 아니었다.

유산 포기각서에 도장을 찍지 않음으로써 나는 천하에 못된 손녀가 되었지만 그들과의 관계만큼은 확실하게 끊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꼬리와 작별을 했고, 새 꼬리가 생겼다.


자신을 지킨다는 것은 세상과 등을 지는 일이 아니라,

내 중심이 무너지지 않도록 필요 없는 것들을 잘라내는 일이다.

최선이란 그런 것이다.




by. 예쁨



최선의 기술


최선의 기술은 다양하다.


“벌은 날기에 적합한 구조는 아니지만

그걸 본인이 몰라서 겁나게 열심히 나는 거래~

그 덕분에 잘 나는 거고."

꿀벌은 몸집에 비해 날개가 작은 편이지만, 초당 200회 이상 빠른 날갯짓으로 이를 극복해 비행이 가능하다.

- AI 브리핑 -


그냥, 무조건 최선을 다 해버리는 거.

그것이 꿀벌의 핵심적인 비행 기술이었다니!

이야말로 세상에서 제일 귀여운 최선의 모습이 아닐런지.

엉덩이는 무겁고 날개는 작을지언정




“저는 부족하고 늦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므로 저의 글이 누군가를 찌르는 날(刀)이 될 수 있는가에 회의적인데요.

스스로 위로한다면 최고의 작품이 있는 게 아니라 최선의 작품이 있을 뿐이라는 생각으로 임합니다.

최고는 위태로운 자리이고 최선은 위로되는 자리잖아요?

최선이 최고에 이른다면 좋겠지만 최선은 늘 어떤 상태라고 생각하여 도착점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


- 이규리 시인 인터뷰 중 -






*커버사진 출처 : Unsplash

*꿀벌사진 출처 : 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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