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이누이트 족의 노래
<이누이트 족의 노래>
새벽이 밝아오고 태양이 하늘의 지붕 위로 올라올 때면
내 가슴은 기쁨으로 가득 찹니다.
겨울에 인생은 경이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러나 겨울이 내게 행복을 가져다주었습니까.
아니요, 나는 신발과 바닥창에 쓸 가죽을 구하느라
늘 노심초사했습니다.
어쩌다 우리 모두가 사용할 만큼 가죽이 넉넉하다 해도
그렇습니다. 나는 늘 걱정을 안고 살았습니다.
여름에 인생은 경이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름이 나를 행복하게 했습니까.
아니요, 나는 순록 가죽과 바닥에 깔 모피를 구하느라
늘 조바심쳤습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늘 걱정을 안고 살았습니다.
빙판 위의 고기 잡는 구멍 옆에 서 있을 때
인생은 경이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러나 고기잡이 구멍 옆에서 기다리며 나는 행복했습니까.
아니요, 물고기가 잡히지 않을까 봐
나는 늘 내 약한 낚시 바늘을 염려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늘 걱정을 안고 살았습니다.
잔칫집에서 춤을 출 때 인생은 경이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러나 춤을 춘다고 해서 내가 더 행복했습니까.
아니요, 나는 내 노래를 잊어버릴까 봐
늘 안절부절못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늘 걱정을 안고 살았습니다.
내게 말해주세요, 인생이 정말 경이로 가득 차 있는지.
그래도 내 가슴은 아직 기쁨으로 가득 찹니다.
새벽이 밝아오고 태양이 하늘의 지붕 위로 올라올 때면.
- 이누이트족 코퍼 지파의 전통적인 노래, 류시화 옮김 -
이누이트족
북극권(캐나다 북부, 그린란드, 알래스카 등)에 거주하는 원주민으로 전통적으로는 ‘에스키모’라는 명칭으로 불렸으나, 최근에는 자신들이 선호하는 ‘이누이트(사람이라는 뜻)’라는 명칭이 널리 사용되고 있다.
음식문화는 바다표범, 순록 등 해양 포유류를 주식으로 하며, 불을 피우기 어려운 환경으로 인해 날고기 섭취가 전통적이다.
또한 북극의 혹독한 환경에서 이글루, 개썰매, 키비악(바다표범 가죽에 새를 넣어 발효시킨 음식)등 자신들만의 독특한 생활방식을 발전시켰다.
하지만 영토문제, *강제동화, 기후변화등 그들의 삶은 계속해서 위협받고 있다.
현재는 일부 사냥과 낚시를 계속하고 있지만, 공무원·관광업 등 다양한 직업에 종사하며 전통과 현대의 균형을 유지하며 살고 있다.
강제동화(Forced assimilation)
강제동화란, 특정 집단이나 개인이 자신의 문화, 언어, 정체성을 강제로 바꾸도록 요구하는 정책이나 행위를 의미한다.
주로 소수민족이나 피지배민족은 강제동화의 피해자가 되기 쉬우며 이들의 고유성을 억압하고 지배 집단의 문화를 주입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이누이트족은 유럽인이 북극권에 진출하면서 ‘미개한 종족’으로 규정되어 선교사와 정부에 의해 언어, 의식, 샤머니즘이 금지되었고,
아이들은 부모와 강제 분리되어 기숙학교로 강제 이송되어 영어, 덴마크어만 사용하도록 강요받았다.
질병과 기후변화
19세~20세기 초, 유럽인들이 가져온 천연두, 결핵으로 인해 질병에 노출된 이누이트족은 한 마을 전체가 사라지기도 했다.
전통적으로 이동하며 사냥하던 생활 방식이 국경과 정부 정책으로 제한되었고, 북극의 자원을 노린 채굴, 군사기지 설치로 어장이 파괴되었으며 그로 인해 순록 이동 경로도 끊겼다.
설상가상 심각해지는 지구온난화로 북극해가 녹으면서 북극곰, 바다표범 같은 주요 식량이 되는 동물들이 급감했고, 자신들의 삶이 붕괴되고 있다며 국제사회에 강력히 호소 중이다.
걱정과 기쁨의 공존
<이누이트족의 노래>는 ‘걱정’이라는 감정을 단순한 불안이 아니라 생존, 관계, 자연의 질서 속에서 느끼는 자연스러움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걱정이 사라져야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걱정을 품은 채로도 기쁨을 느낄 수 있는 근원적 생명력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자연은 늘 충분함을 주지만 우리의 삶은 늘 결핍과 맞닿아 있다.
그러므로 ‘걱정(염려)’과 ‘경이(기쁨)’는 공존한다는 역설적 진실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존재의 증명
이누이트족은 태양이 떠오르는 시간마저 짧은 땅에서 수천 년을 살아온 사람들이다.
여러 국가에 거주하고 있지만 동시에 어느 국가에도 속하지 않은 채-
지난한 역사의 아픔에도 불구하고 노래를 통해 계속해서 자신들의 존재를 증명하고 있음이다.
에피소드
나는 늘 걱정을 달고 사는 사람이다.
아들도 그런 나를 닮아 걱정이 많은 편이다.
말 그대로 걱정이 걱정을 낳은 셈이다.
그래서 난 늘 아들을 걱정하고 아들은 그런 나를 걱정한다.
잘 지내는 척하고 있지만 나 혼자 잘 못하고 있는 건 아닌지 늘 불안했고,
잘하고 있을 때조차 '이게 최선일까?'라는 생각으로 걱정부터 앞세웠다.
불안과 걱정을 잊고자 참 많은 사람들의 삶을 따라가기에 급급했던 삶이었다.
조금씩 완벽함을 추구하던 삶에서 느슨한 삶으로 경로 이탈중이다.
(솔직히는 과하게 느슨해졌다.)
어김없이 동이 트고 새로운 하루가 주어지는 삶이야 말로 우리에게 충분하므로.
삶은 누구에게도 특별히 호의적이지 않다.
- 한강, 흰 -
*커버사진 출처 :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