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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내리는 가을밤

(15) 최치원, 추야우중 (秋夜雨中)

by 예쁨


<추야우중 秋夜雨中>


秋風唯苦吟 추풍유고음

世路少知音 세로소지음

窓外三更雨 창외삼경우

燈前萬里心 등전만리심


가을바람에 괴로워 읊조리니,

세상에는 내 마음 알아주는 이 드물구나.

창밖에는 깊은 밤 비가 내리고,

등불 앞에 앉은 마음은 만 리를 떠도는구나.


- 고운(孤雲) 최치원 -





혼란의 시대일수록 문장은 깊어진다.

신라 말기, 나라는 기울고 세상은 어지러웠다.

부패한 권력, 분열된 귀족, 타오르는 민심 속 붓을 든 한 사내가 있었으니 바로 ‘문장가 최치원’이다.


그는 열두 살에 당나라로 건너가 벼슬길에 올랐고, 어린 나이에 이름을 알리며 재능을 뽐냈다.

하지만 귀국 후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조국의 혼란과 무력감이었다.

아무리 써도, 아무리 간언해도, 세상은 바뀌지 않았고 그의 답답함은 이어졌다.

그가 남긴 <계원필경집>의 문장들은 단지 미문(未聞)이 아니다.

붕괴하는 세상 속에서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의미’를 지켜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인 것이다.


그는 붓끝으로 세상을 바로잡으려 했으며, 동시에 자신을 지키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이처럼 그의 글에는 ‘당대의 언어’가 아닌 ‘시대의 정신’이 깃들어 있다.

글을 쓰는 일은 단지 정보를 전하는 일이 아니라,

세상의 혼탁 속에서 한 줄기 맑은 숨을 불어넣는 행위였으므로-


계원 필경(桂苑筆耕) 집 서문 중,

“비록 벼슬은 하찮으나, 붓으로 밭을 갈아 생계를 이으니 이 또한 즐거운 일이다.”

필경이라는 말이 바로 여기서 나왔다.
‘붓으로 밭을 간다’는 뜻으로 글을 삶의 노동으로 여기고, 문장을 통해 세상과 자신을 경작한다는 태도를 보여준다.


오늘날 우리는 또 다른 혼란의 시대에 살고 있다.

온갖 매체에서 하루에도 수천수만 개의 목소리가 쏟아지지만, 정작 ‘말의 무게’는 점점 가벼워지고 있다.

최치원은 천 년 전 이미 그 위기를 예감한 사람처럼 보이는데 말이다.

그는 자신의 문장을 세상의 무기로 삼지 않았고, 대신 자신의 진심과 고뇌를 정제하여 넣음으로써 최선의 저항을 했다.


우리는 매일, 그리고 꽤 자주 글을 쓰고 있다.

SNS에 짧은 글을 올리고, 댓글을 달고, 메신저로 수없이 대화를 주고받는다.

쉽게 쓰고 쉽게 지울 수 있는 문장들에서는 신중함을 찾기 어렵고 가벼운 대화가 자주 오가기 마련이다.

최치원의 문장은 그 질문을 우리에게 다시 던져주는 듯하다.

우리가 남기는 수많은 흔적들에서 진심과 책임은 얼만큼의 무게로 적혀 있을까?


글이란 결국 시대와 싸우는 한 인간의 자세다.

혼란의 시대를 살았던 최치원처럼,

우리 또한 복잡 미묘한 세상에서도 필경(筆耕) 자신만의 의미를 지켜내야 한다.

그것이 문장을 쓰는 이들의 짊어진 오래된 사명이며, 여전히 글을 써야만 하는 유효한 이유다.


가을밤,

끝없이 이어지는 장마 같은 비가 내린다.

어둑한 공기 속에 쓸쓸함이 스며들어 마음마저 젖어든다.

세상의 어둠 속 작은 등불이 될 수 있는 문장 하나 새길 수 있다면,

천 년 전 붓 끝의 떨림으로 조심스럽게 시 한 편 슬-쩍.




서산 계암고택(2018)


<시인의 방>


시인의 방은

불빛이 꺼지지 않는다

어둠보다 먼저 그림자가 눕고,

말보다 먼저 침묵이 운다


붓 끝에서 맴도는 말

망설이다 구겨버리고

종잇장처럼 얇은 심장

위태롭게 젖어있구나


시인의 손끝은 묵향처럼 무거웠으나,

시인의 이상(理想)은 숨결처럼 가벼웠다


기다리던 달빛에게

먼저 자라, 속삭인 뒤

시인의 방은

불을 끄지 못한 채 날이 밝누나.



by. 예쁨




안부)

연휴 첫날 예기치 못한 교통사고로 네 가족 모두 입원생활을 했었지만,

저를 포함한 가족 모두 무사히 퇴원하고 통원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염려해 주셨던 분들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누렁이 덕분에 입원생활 내내 마음의 안정을 가질 수 있었지요~

(병원에서는 적잖이 이상한 취급(?)을 받았지만 말입니다.)

누렁이의 슬기로운 병원생활

- 밥은 언제 나와요?





*커버사진 출처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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