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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쁨 Oct 18. 2024

반가운 손님들

하루야, 안녕?

우리 집은 오래된 아파트 4층에 있다.

집 앞에는 제법 높은 나무 한 그루가 있는데, 가지치기를 하지 않으면 나뭇가지가 화단받이에 닿는 위치다.

덕분에 새들이 자주 찾아오게 되면서 강제 기상을 하게 되는 날도 많다.

한 마리의 새가 목청을 높이면 갑자기 떼창을 하곤 하는데 소리가 매우 커서 제발 새벽만이라도 울지 말아 달라고 사정을 하고 싶어 진다.

그런데 여름이 지나고 나니 갑자기 새들의 방문이 뜸해졌다.


더 좋은 나무를 찾은 걸까?

내가 조용히 좀 하라고 짜증 냈던 말을 들었을까?

아니면 새들에게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걸까?


결국 새들의 안부가 궁금해진 나는 유인작전을 결심한다.

오늘의 메뉴 : 깨끗한 물과 땅콩 한 접시 / 완판

새들이 가장 잘 먹는다는 땅콩과 깨끗한 물 한 접시를 놓고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응?


땅콩이 너무 깨끗하게 사라져 버리니 수상했다.

결국 딸에게 이 사실을 털어놓았다.

이래저래 해서 이렇게 저렇게 놔뒀는데, 혹시 네가 먹은 것이냐?

딸아이는 어이없다는 눈빛으로- 그러니까 딸이 땅콩을 먹을까봐 숨겨놓고 새들에게 줬는데, 하물며 그걸 딸이 먹었을까 의심해서 묻는 거냐며 눈을 흘겼다.

사실을 너무 정확하게 말해서 움찔했지만, 어쨌거나 팔딱거리는 반응을 보니 아무래도 딸은 범인이 아님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정말 새가 물고 간 걸까?


어떤 날은 물그릇이 뒤집혀 있기도 했고, 어떤 날은 땅콩 접시가 떨어져 버리기도 했다.

땅콩접시는 빵끈으로 단단히 고정해 두었고, 물그릇은 조금 더 깊고 큰 것으로 교체했다.

몸집이 작은 손님들이 목욕하기에 적당한 것으로 말이다.


이렇게 조금씩 더 공을 들이고 나니 먹이를 물고 가는 손님들 얼굴이 궁금해졌다.

쓰지 않는 휴대폰을 찾아 출근 준비 하는 30분가량만 카메라를 켜놓고 관찰을 하기로 한다.


이틀 째 직박구리 손님을 만났고,

삼일 째 어치 손님을 만났다.

그리고 오늘은 박새 손님이 찾아왔다.


막상 녀석들을 마주치면 너무 반가우면서도 서로 놀라게 되고 손님 쪽이 호로록 도망가 버린다.

다행히 영상에 찍힌 녀석들을 자세하게 볼 수 있었다.

직박구리 / 어치 / 박새

직박구리는 물만 마시고 갔다. 물을 마시다가 물그릇을 엎기도 했다.

땅콩은 먹을까 말까 고민만 하다가 날아가 버렸다.


<직박구리>  

1. 참새목,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텃새 중 하나이다.

2. 부리 옆에 연지곤지를 찍은 듯한 귀 깃의 밤색 볼터치가 매우 귀엽다.

3. 소리로 존재감을 과시한다. 무리 지어 우짖으며 어찌 보면 그냥 '짖는' 수준이라고도 할 수 있다.
(내 아침잠을 깨운 것이 너희들이로구나)

4. 별 걸 다 먹는다. 말매미나, 지네, 식물의 열매나 심지어 이파리까지도 먹는다.

5. 상당히 호전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어 '조폭'이라는 별명이 있다.
(땅콩 말고 다른 걸 드려야 하나?)


어치는 땅콩을 무려 여덟 개나 먹고 한 개는 야무지게 물고 날아갔다.

덩치는 크지만 색이 참 아름다운 새였다. 땅콩을 먹으면서 우리 집 내부를 흘깃흘깃 보더라.


<어치>

1. 까마귀과, 산까치라고도 불린다.

2. 까치보다는 작지만 여러 가지 색깔들로 조화되어 보기에도 무척 아름다운 새

3. 매우 영리한 새로, '소리 따라하기'를 잘한다.
개, 고양이뿐만 아니라 다른 조류 소리나 심지어 사람 목소리도 흉내 낼 수 있다.
(말 조심 해야겠다.)

4. 영악한 포식자, 예민하고 성질이 급함

5. 고기 맛이 좋아서(?) 김정일이 좋아하는 식재료 중 하나였다는 썰이 있다.
(인공사육을 위해 10여 년을 연구했지만 대량사육을 하기엔 성질이 매우 예민한지라 끝내 실패했다고 한다.)


작은 새들을 위해 잡곡과 아몬드를 부숴놓고, 혹시 몰라 라즈베리를 놓아주었다.

입맛에 맞는 메뉴가 있었던지 박새는 꽤나 오랜 시간 앉아 먹고 갔다.


<박새>

1. 작은 새 치고는 지능이 상당히 높은 편이고 인간에 대한 경계심이 적고 호기심도 많은 편이다.

2. 흔한 일은 아니지만 육식조류답게 참새를 사냥해 잡아먹기도 한다.
(참새는 건드리지 마시오)

3. 대략 반 정도의 새끼가 불륜의 결과로 태어난다.
(이노옴!)

4. 텃세가 심한 편이다. 다른 새들을 쫓아내기 위해 경계음을 내거나 머리를 밟는 행동을 한다.
(이노옴 취소.)


도시에는 오직 비둘기만이 포식자라고 생각했고, 까치나 까마귀 정도의 새들이 와서 먹겠거니 했다.

조금 기대했다면 짱 귀여운 참새들이 와줬으면 하고 바랐지만 전혀 생각지도 못한 손님들이 찾아와 줘서 반갑고 신이 났다.

잘 알지 못했던 도시 새들에 대해 알아보는 재미도 쏠쏠했는데, 가장 의아했던 부분은 야생 조류이지만 '유해종'으로 분류되어 있는 새들이 많다는 점이다.

유해종이라 함은 인명, 재산 피해를 야기하는 비멸종위기종을 말한다. 물론 지극히 인간 중심의 사고로 만들어진 관점에서 분류되었을 것이다.

새들의 관점으로 보자면 인간들은 모두 비멸종위기의 '최고유해종'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을 포악하다고 말하는 느낌 또한 인간들의 표현에서 비롯되었을 테다.

삭막한 도시 생활에서 먹이를 구하거나 위험한 요소를 헤쳐나가기 위해 습득한 포악함이라면, 오히려 우리는 그들에게 미안해야 한다.  


요즘 나의 아침은 행복하다.

새소리에 기분 좋게 기상하고 그들의 안부를 궁금해하는 하루로 시작한다.

나는 우리 집에 오는 손님들에게 최대한 정성스러운 식사를 대접하고자 한다.

부디 손님들이 풍족하게 먹고 편안하게 쉬다 가기를 바라면서



by. 예쁨



*새의 특징은 나무위키에서 참고하였습니다.

* 새덕후 Korean Birder 채널을 보고 새들의 귀여움에 빠져버림

(https://youtube.com/@koreanbirder?feature=shared)





나 같은 어린애에게

안녕! 나 같은 어린애야!

난 너보다 두 살 많은 너 같은 형이야.

이제부터 내가 인생 사는 법을 알려줄게.

-중략-

내가 말한 것을 하면 인생이 행복해질거야.

행복이란 너가 원하는 것을 하는 거야.


- 부지런한 사랑 / 이슬아 수필집 중, 여수글방 열살 김지온이 쓴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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