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야, 안녕?
그는 스무 살이다.
유난히 출생률이 저조하던 2005년 5월 따뜻한 봄날, 귀한 몸으로 태어났다.
모든 것이 귀해서였을까? 두 개씩 있어야 할 콩팥을 하나만 가지고 세상밖으로 나왔다.
그가 태어나던 해 모친은 24살이었고, 엄마가 되기에 다소 어린 나이었으므로 그는 어리숙한 손에 자랄 수밖에 없었다.
모친은 그에게 딱 두 달 동안 젖을 먹이고 곧바로 출근했다.
바쁜 부모님 외에 할머니와 할아버지, 큰엄마와 큰아빠, 그리고 사촌형, 누나라는 대가족 틈에 영유아기를 보냈다.
태어난 지 일 년이 채 안됬을 때는 폐렴으로 입원했다가 패혈증으로. 종국에는 세균성 뇌수막염이라는 진단을 받게 되었다.
그의 여리고 무른 척추에 커다란 바늘이 꼽혔고 뇌척수액이 뽑혔다.
뿌연 쌀뜰물 색과 같은 뇌척수액을 보여주며, 담당의사는 상황이 매우 좋지 않음을 알려주었다.
도무지 믿을 수 없는 병명도, 낯선 세균의 이름도, 급속도로 나빠지고 있는 아이의 상태도 그의 부모는 모든 것이 당혹스럽기만 했다.
소아병동은 바빠졌고, 열이 40도가 넘어가는 그에게 온갖 조치가 취해졌다.
파랗다 못해 까맣게 변해가는 팔뚝만 한 불덩이는 어린 모친의 가슴까지 까맣게 태워버렸다.
의사는 본격적인 치료에 앞서 어떤 가능성에 대해 설명해 주었는데, 가능성의 수치화는 오히려 절망스러웠다.
“치사율이 약 15%가 되는 위험한 병입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 맞는 항생제를 찾아 치료해 보겠습니다.
무엇보다 완치가 되어도 후유증이 남을 수 있는데, 약 70%는 청각장애, 약 15%는 발달장애가 올 수 있습니다.”
청천벽력 같은 말이었다.
의사가 말하는 약(about)의 범위란 얼만큼인가? 확률의 정확도는 믿을 수 있단 말인가?
무엇보다 후유증이 발생할 수 있다는 높은 숫자가 그의 부모를 두렵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들에게 더 이상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고작 9kg의 그에게 여기저기 주사 바늘이 꼽히고 본격적인 세균과의 사투가 시작되었다.
소아병동에서의 생활은 험난했다.
그는 잠귀가 밝은 아기었다. 6인실 소아병동은 잠귀가 밝은 아기와 그의 부모에게 마치 지옥과도 같았다.
아픈 아기와 보호자 모두가 예민한 곳이다.
때문에 종종 다툼이 났고, 소란을 피해 그의 부모는 아기를 업고 병원을 수없이 돌고 돌아 겨우 잠재울 수 있었다.
그의 모든 일상은 기록되었다. 분유 먹는 양, 잠자는 시간, 싸는 양, 그의 기분까지 모친은 빠짐없이 기록하고 기도했다.
세상의 모든 신에게 간절한 마음으로, 어쩌면 기도는 거의 구걸에 가까웠다.
두 달간의 치료 끝에 완치 판정을 받고 퇴원하던 날, 그의 부모는 소아병동에 피자를 돌리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퇴원 후에도 후유증에 대한 걱정은 그의 부모를 쫓아다니며 노심초사하게 만들었다.
말이 느리고 어눌했던 그를 보며 혹시 잘 들리지 않아서 그런 건 아닐까 걱정했고, 부러 방문을 꽝꽝 소리 내면서 닫고는 아이가 놀라면 그제야 안심을 했다.
다행히 병원에서 겁박하던 모든 후유증은 나타나지 않았다. 15%의 기적으로 아이는 무사했지만 그는 오랜 시간 어른들의 불안함을 느끼며 자랐을 것이다.
그로부터 1년 뒤 갑자기 ‘여동생’이라는 존재가 나타났다.
아직 기저귀를 차고 있던 그에게 꼬물이 녀석을 동생으로 받아들이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의 모친은 더 바빠졌고 종종 슬픈 얼굴을 했다. 그가 모친을 기쁘게 하는 일은 기저귀를 떼고 더 의젓하게 행동하는 것뿐이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부터 그는 줄곧 모범상을 받았다.
그의 신발주머니에는 늘 쓰레기가 담겨있었는데 쓰레기를 주워야 한다고 배우면 그렇게 했고,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고 배우면 부당한 일도 참고 견뎠기 때문이다.
어른들께 존댓말을 한다고 배우고 나서는 부모를 포함한 모든 웃어른께 존댓말을 썼다.
부모의 바람대로 그는 착하고 의젓한 아이로 자랐다.
중고등학교 때 성적이 훌륭한 편은 아니었지만 바른 태도 때문인지 학급반장을 도맡아 했고, 선생님들이나 주변 어른들에게 예쁨을 받았다.
하지만 또래 친구들에게는 조금 특별한 아이로 비쳤다. 어른스럽고 조심스러운 성격 탓이었다.
그는 ‘착하다’는 말에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그의 모친은 아이를 데리고 상담을 다녔고 친한 친구들과 어울리며 조금씩 ‘보통의 아이’로 성장했다.
그의 꿈은 간호사다.
한참 그가 진로 고민을 하던 시기가 바로 코로나 시국이었다.
학교에 가지 못하고 집에서 수업받는 날들이 이어지고, 부족한 의료진에 대한 뉴스가 쏟아지던 때였다.
그의 모친이 기억하는 간호사의 삶이란 소아병동에서 겪었던 밤낮 없는 그들의 노고뿐이라 그가 조금 더 다른 방향으로 생각해 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는 케어하는 사람의 손길이 얼마나 필요한 사회인지 누구보다 잘 설명했고 그의 특별한 성정에 대해 알고 있었으므로 그 꿈을 응원하게 된다.
어쩌면 그는 그의 모친을 닮았다.
그는 현재 간호학과 1학년이다.
하나뿐인 콩팥 덕분에 군면제를 받았고, 학업과 봉사,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다.
본인이 온 식구들의 생계를 책임지겠다고 말하는 어딘가 어설프고, 여전히 어른스러운 꼬마 청년이지만,
더 이상 어리지 않은 그의 모친에겐 늘 염려와 걱정뿐이다.
그녀는 앞으로 더 오랜 시간 걱정과 근심할 것이고, 삼갈 일이 많을 것이고, 신에게 구걸할 일이 늘어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역시 본능적으로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오직 사랑을 주는 기쁨과 행복은 비할 데가 없기 때문이리라.
by. 예쁨
*많이 사랑하는 사람은 삼가야 할 일이 많고 헤아려줄 일이 많고 그래서 많이 약해 보이는 것이었구나. / 공지영, 너는 다시 외로워질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다는 건 신에게 구걸할 일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 최진영, 단 한 사람
에피소드
그와 주고받은 카톡 내용 중 일부를 캡쳐했다.
그가 수험생이었던 시절 부탁했던 문제집이 도착했는데 늘어놓고 보니 흥미로웠다.
점 하나가 이토록 중요한 이유, 문제집 이름의 숨겨진 글자는 ‘점’이었다.
최근 그와 주고받은 대화는 서로에 대한 염려가 오고간다.
우리는 걱정이 참 많은 모자지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