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병원의 상담형은?
구노스키 : 고백하자면 저는 스포츠를 싫어합니다. 스포츠라는 개념에 그다지 익숙해지지를 않더군요. (중략) 고민을 거듭하다 보니 점점 본질이 보였습니다. 스포츠가 싫었던 이유 중 하나는 사전에 규칙이 설정되어 있다는 점이었어요. 하나의 차원에서 경쟁을 해야 하잖아요. 그래서 꼭 우열이 드러납니다. 다트와 같은 게임도 규칙이 정해져 있다는 점에서 스포츠와 마찬가지입니다. 반면에 저는 늘 음악을 좋아했어요. 음악은 스포츠나 게임의 조건과는 반대잖아요. 사전에 규칙이 설정되어 있지 않고 하나의 차원에서는 우열을 가려 서열화할 수 없다는 점 말이죠.
야마구치 : 저는 비즈니스에도 스포츠형 비즈니스와 예술형 비즈니스, 두 가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수치화해서 어느 쪽이 이기고 졌다고 비교할 수 있는 비즈니스는 분명 경쟁하는 비즈니스죠. 비즈니스에도 일종의 규칙이 있어 매출이나 기업 가치 면에서 성패 여부가 외재적으로 결정된다면, 이는 스포츠형 비즈니스라는 뜻입니다. (중략)
- 책 '일을 잘한다는 것' 중 -
데스크 실장에서 총괄실장으로 한 단계 더 성장하고 싶었던 때였다. 그때 마침 개원하는 네트워크 치과 총괄실장 자리를 소개받았다. 오픈 치과는 데스크에서 관리할 환자가 많지 않기에 나 혼자 업무 처리가 가능했다.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오픈 치과는 전반적인 진료 시스템을 잡아야 했기에 진료실에서 업무를 시작하지 않았던 나에게 걸림돌이 있었다. 함께 일하는 진료실장은 나보다 연차가 더 높았고 난 그에 반해 진료실 업무가 익숙지 않았다. 채용은 총괄실장으로 되는듯했으나 결국 직함을 상담실장으로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인정했다. 나의 부족함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상담과 데스크 업무를 함께 병행했다. 오픈 치과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안정적이고 높은 매출이 이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대표원장의 목표는 더욱 높았다. 현재에 만족하지 않았고 네트워크 치과 중 다른 지점에서 만들어낸 최고의 매출을 뛰어넘고 싶어 했다.
그러던 중 또 하나의 문제가 발생했다. 한 치과에 오래 머물러 있었던 난, 다른 치과의사의 진료 시스템에 적응해야 했다. 이전 직장에서는 데스크 실장으로 상담업무는 보조업무로 진행하고 있었다. 주 업무가 상담이 될 거라 생각하지 못했던 상황이었기에 상담 역시 고전을 면치 못했다. 때문에 상담률도 진료실장보다 낮을 수밖에 없었다. 매출과 상담률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해야 상담률을 올릴 수 있을까?'라는 고민으로 주말에는 자비로 부산에서 서울을 오가며 강의도 듣고 내가 상담하는 모습을 촬영하며 스스로 피드백을 했다. 또한 진료실장에게 모르는 것을 물어보고 공부하면서 성장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나의 상담률은 오를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잠시 원장실로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앉자마자 대표원장은 나에게 말했다."실장님, 밥값 하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가 서두로 나왔다. 자존심이 상했다. 그렇지만 역시 회사는 결과로 말해야 하는 곳이다. 자존심이 상했지만 강의도 듣고 이렇게 하고 있다는 변명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나에게 한마디가 날아왔다. "저는 완성되어있는 사람과 함께 일하고 싶었어요. 성장하고 있는 사람과 일하고 싶었던 게 아닙니다." 머리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대표원장 역시 첫 개원의로서 성장을 해야 하는 시점이었는데 직원에게 완성된 사람이라는 표현을 하다니 정말 놀랐다. 팀보다 뛰어난 개인은 없다. 스포츠에서 이기는 방법은 팀워크다. 1등이라는 숫자를 말하기 전 리더는 팀원과 함께 성장할 수 있어야 했다.
난 일의 의미를 더 이상 찾지 못해 퇴사를 했다. 이후 또 다른 치과를 소개받아 상담실장으로 일을 하게 되었다. 개원한 지 1년이 지난, 공동대표원장이 운영하는 곳이었다. 솔직히 이전 직장에서의 실패 경험으로 많이 두렵긴 했다. 하지만 결국 이 산을 넘어야 하는 것은 나 자신이기에 다시 한번 도전했다.
진료실에서 환자를 대하는 대표원장은 따뜻한 사람이었다. 나이가 많든 적든 '선생님'이라는 호칭과 함께 자신의 컨디션에 따라 환자를 감정적으로 대하지 않았다. 여러 곳에 이직을 했지만 한결같은 모습으로 환자를 대하는 오너는 처음 봤다. 또한 '3대가 믿고 찾아오는 치과'를 만들기 위해 대표원장은 노력하고 있었다.
치주과 전문의였던 대표원장은 무엇보다 예방을 중요하게 생각했고 제일 중요한 건 이를 닦고 관리하는 거라며 강조하고 또 강조했다. 임플란트를 팔지 않는 상담을 하겠다던 나의 상담 신념과도 잘 맞았다. 이곳에서 상담할 땐 사실 상담률이나 매출이 목표가 아니었다. '대표원장의 진료철학을 어떻게 더 환자들에게 잘 전달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더 했다. 그랬더니 자연스럽게 상담률은 높아져갔고 선순환으로 매출도 올라갔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문제는 있었다. 개원 초창기의 병원은 마치 스타트업의 모습과도 같다. 정해진 업무보다 더 많은 일을 해야 하기도 하고 기반을 다지는 과정이기에 프로세스가 명확하게 잡혀있는 상태도 아니다. 이때는 간부급부터 팀원 모두 과부하가 걸리는 시기가 오는데 내가 입사했을 때도 그런 상태였다. 물론 매출 역시 불안정한 상태였다.
함께하는 팀원들의 성장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난 모든 직원들에게 일대일 면담을 요청했고 도울 수 있는 부분이 있으면 함께 도왔다. 감사하게도 팀원들은 함께 나아가 주었고 결국 우리는 개원이래 최대 매출을 만들어냈다. 우리의 목표는 단순히 매출이나 상담률 같은 단편적인 숫자가 아니었다. 대표원장 역시 숫자에 대한 언급을 크게 하지 않았고 '3대가 믿고 찾아오는 치과'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한 건물 안에 세 곳의 치과가 있었고 주변에도 치과가 많았던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결국 환자가 찾아온 곳은 이곳이었다. 정말 재밌었던 경험은 전자에 나온 치과에서는 총괄실장의 업무는커녕 상담에서조차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점이 풀리지 않았었다. 하지만 후자에 나온 치과에서는 일을 하는 이유를 생각하고 하니 자연스럽게 상담을 넘어 총괄실장의 업무까지 하게 되었다.
책 '일을 잘한다는 것'에서 말한다. 스포츠형 비즈니스의 테두리 안에서 다람쥐처럼 쳇바퀴를 돌릴 것인지 아니면 전략이 되는 예술형 비즈니스로 포지셔닝을 하여 경합을 피하고 각 영역에서 공존할 수 있는 세계로 갈 것인지에 대해 말이다. 이것은 비단 일반적인 비즈니스뿐만 아니라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우리 역시 고민해야 할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