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상담이란 무엇일까
한 여성이 몸이 아픈 어머니를 위해 자포스에서 신발을 구입했다. 그런데 머지않아 어머니는 병세가 악화되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얼마 뒤, 뒷정리로 분주한 그녀에게 이메일이 한 통 날아왔다. 구입한 신발이 잘 맞는지, 마음에 드는지 묻기 위해 자포스에서 보낸 메일이었다. 상실감에 빠져 있던 그녀는 겨우 정신을 차리고 이메일에 답장을 썼다. "병든 어머니에게 드리기 위해 구두를 샀던 것인데 어머니가 그만 돌아가셨습니다.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라 구두를 반품할 기회를 놓쳐버렸네요. 그렇지만 이제 어머니가 안 계시니 이 구두는 꼭 반품을 하고 싶습니다. 조금만 기다려주면 안 될까요?"
그러자 곧바로 자포스에서 답장을 보내왔다.
"저희가 택배 직원을 댁으로 보내 반품 처리를 해드리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자포스의 기존 정책에 따르면, 반품할 경우 요금은 무료지만 고객이 직접 택배를 불러서 물건을 보내야 한다. 하지만 자포스는 정책을 어기면서까지 그녀의 집으로 직접 택배 직원을 보내 물건을 반품하게 해 주었다. (중략)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다음 날 그 여성에게 한 다발의 꽃이 배달되었다. 카드에는 어머니를 잃고 슬픔에 빠진 여성을 위로하는 글이 적혀 있었다. 자포스에서 보낸 것이다. (중략) 고객에게 위로의 꽃다발과 카드를 보내는 것이 자포스의 '서비스 정책'은 아니다. 이 여성과 통화한 컨택센터의 직원이 어머니를 잃은 슬픔을 조금이나마 위로해주고 싶다는 인간적인 배려와 판단에 따라 꽃과 카드를 보낸 것이다.
- 책 '불황을 이기는 힘, 자포스에서 배워라' 중 -
2009년 7월, 아마존은 온라인 신발업체 자포스를 인수한다. 미국 유통업계 관계자들은 충격에 휩싸였다. 아마존의 유일한 대항마로 자포스를 꼽았기 때문이었다. 아마존과 자포스는 모두 '최고의 고객 서비스'를 지향했지만 시장과 고객에 대한 접근 방식에는 큰 차이를 보였다. 아마존은 IT 시스템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사람의 개입을 최소화하였다. 하지만 자포스는 IT의 힘과 맨파워의 장점을 최대로 활용해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했다. 감정적인 커뮤니케이션만이 고객을 만족시키는 최고의 방법이라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자포스에는 콜센터는 고객센터나 콜센터로 명칭 하지 않고 '컨텍센터'라 부른다. 이 부서에서는 전화뿐만 아니라 메일과 라이브 채팅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고객과 접촉하게 된다. 그런데 자포스 컨텍센터에는 매뉴얼이 없다. 고객의 이런 요청에 이렇게 답하라는 지침도 존재하지 않는다. 고객의 주문이나 문의에 어떻게 답하고 어떻게 대응할지는 전화를 받는 컨텍센터 직원이 각자의 판단에 따라 하면 된다. 즉, 고객을 대하는 직원이 인간 대 인간으로 고객과 마주하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과 상황에 따라 서비스의 '내용'은 달라진다. 이것은 곧 직원과 고객 모두에게 '잊기 어려운 체험'을 제공하게 된다.
자포스에게 서비스는 파는 물건이다. 그래서 서비스를 비용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자포스에 있어서 '서비스'는 오히려 브랜드를 알리고 고객의 충성도를 쌓기 위한 투자인 것이다. 자포스가 진짜 팔고자 하는 것은 '고객의 감동 체험'이고, 순간의 이익을 올리는 것보다 그것이 훨씬 중요하다 믿는다.
지금은 초고령 사회다. 평균 수명이 길어진 만큼 식생활에 대한 관심과 욕구가 증가한 것도 사실이다. 의료현장에 있으면 더 많이 체감하게 된다. 정말 많은 어르신들이 씹는 즐거움을 느끼고 싶어 하며 임플란트 식립을 하는 경우가 많다. 지금 이야기하는 환자분은 내가 상담했던 환자 중 가장 고령의 환자다. 연초에 90세로 일흔이 넘은 아들과 함께 병원에 방문하셨다. 정말 정정하셨다. 오른쪽 위 치아들이 없어서 틀니를 사용하고 있었지만 아래턱에 있는 치아 14개는 모두 탈 난 거 하나 없이 전부 잘 유지되어있었다. (영구치는 사랑니를 제외한 치아 개수 위턱뼈(상악)에 14개, 아래턱뼈(하악)에 14개가 있다.) 더불어 전신질환도 고혈압만 있어 복용 중인 약도 많지 않으셨다.
지금도 식사하는데 큰 불편함은 없으나 더 잘 씹어 먹고 싶으시다며 임플란트 상담을 받으러 오셨다. 기억력도 좋으셨고 지팡이 하나 없이 잘 걸어 다니셨다. 치료받는 내내 힘든 내색 하나 없이 정말 진료를 잘 받으셨다. 그러던 중 하루는 아드님께서 병원을 찾아오셨다. 어르신 예약 일이 아닌 날이라 혹시 무슨 이야기를 하시고 싶으신 건지 해서 여쭤보니 나에게 초록색 보자기로 싸인 무언가를 건네주셨다. 찹쌀떡이었다. 모친 치료 잘 받게 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선물을 건네어주셨다.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인사와 함께 손녀뻘인 나에게 90도로 인사를 하셨다.
일흔이 훌쩍 넘은 아들의 어머님에 대한 사랑이 느껴졌다. 어르신께서는 진료받으러 오실 때마다 막내 손녀가 생각난다며 나의 손을 꼭 잡아주셨다. 그래서 뵐 때마다 마음이 뭉클했다. 이래서 나는 상담을 허투루 할 수 없고 임플란트를 파는 상담을 하지 않는다. 이렇게 너무나도 크게 한 사람의 인생에 관여하기 때문이다.
꽤 오래 전의 이야기다. 상담이 한 사람의 인생에 관여하게 된다는 것을 알기 전일 때 말이다.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이 문을 열고 들어온 환자에게 인사를 했다. 두 아들이 모친을 모시고 치과에 내원했다. 모친께서 현재 틀니를 사용하고 있다고 전해왔다. 하지만 틀니가 불편하고 아파서 식사를 제대로 하실 수 없는 상태라고 이야기하며 여든을 넘긴 노모(老母)에게 마지막 선물로 임플란트를 해드리고 싶다 했다.
난 먼저 촬영한 엑스레이 사진을 보고 뼈 상태에 따른 뼈이식 수술 방법, 임플란트 식립 개수 등을 미리 생각하며 원장님의 진단을 기다리고 있었다. 만약 임플란트로 진행할 경우 남아있는 치아를 전체 발치를 하고 뼈이식과 함께 전체 임플란트 시술이 필요했다. 때문에 치과진료를 받기 전에는 전신질환 및 복용약 체크가 필요하다. (치과에서 전신질환 확인이 중요한 이유 : https://brunch.co.kr/@lifeartist/27 ) 특히나 고령일수록 수술 이력이나 복용하는 약의 종류가 많아 철저한 확인이 필요하다. 그런데 환자는 이미 심장수술을 받은 이력도 있었고 심장약, 뇌혈관 약 복용과 혈압, 당뇨약 모두 복용하고 있었다. 치과 진료에 대한 공포심도 커서 상담을 하는 시간 동안에도 무척이나 힘겨워하셨다. 무엇보다 남아있는 뼈 상황이 좋지 않아 다량의 뼈이식을 하고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한 상태였다.
원장님은 임플란트 진단이 아닌 틀니를 확인하셨다. 틀니를 입안에 끼워 이런저런 확인을 하시더니 틀니를 조절하면 괜찮아지실 거라고 진단을 내렸다. 두 아들은 임플란트를 해드리고 싶다고 자식 된 도리로 마지막 효도를 할 수 있게 해 달라며 계속 임플란트 진단을 요구했다.
그때 원장님은 말했다. "이런 말씀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임플란트를 한다는 건 아드님들의 욕심입니다. 물론 치의학적으로 봤을 땐 식사를 더 잘하기 위해서 임플란트 위아래 열몇 개씩 심으면 되겠죠. 하지만 다량의 뼈이식을 할 때 약물 조절도 필요하고 시술 시간과 시술 후 통증은 어머님께서 감내하셔야 하는 겁니다. 지금 엑스레이 촬영하고 상담받으시는 시간도 힘들어하시는 거 보이지 않나요? 저 또한 저희 모친이 환자분과 비슷한 연배이셔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이 날 모든 진료가 끝난 후 원장님과 함께 술자리를 가졌다. 난 원장님에게 물었다. "원장님 아까 그 환자분, 사실 상담자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임플란트를 했으면 하는 분이었습니다. 솔직히 매출에도 도움 되는 부분도 있으니까요. 그리고 정말 임플란트를 하면 식사를 더 잘하실 수 있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는데 왜 임플란트 진단을 내리지 않으셨나요?"
원장님은 답했다. "아까 보호자분들에게도 말했지만 그 환자분 앉아있는 걸 보니 어머니가 생각나더라. 병원의 매출을 올려줄 환자라고 생각했다면 내가 임플란트 진단을 내려야 하는 게 맞겠지. 그런데 만약 이 체어에 앉아있는 사람이 우리 어머니라면.. 이런 생각이 드니까 차마 그 진단이 나오지 않았어. 개원 초기에는 좋은 진료란 이런 거다. 좋은 상담은 저런 거다. 한 문장으로 표현하기가 쉬웠던 거 같은데.. 글쎄.. 나도 나이가 들었는지 이젠 그게 참 어려워. 임플란트를 나무에 심는 사람이 아니잖아. 엑스레이만 보고 진단을 내려서도 안되잖아. 결국 그 진료를 받는 건 사람이니까. 성아야. 좋은 진료란, 좋은 상담이란 뭘까? 계속 고민해야 하는 게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아닐까?"
책 '불황을 이기는 힘, 자포스에서 배워라'에서는 말한다. 자포스, 구글, 아마존같이 IT버블과 닷컴 신화 붕괴를 넘어 살아남은 기업들은 '기술'과 '사람'이라는 극단적인 두 요소의 균형을 잘 유지했다고 말이다. 이들 기업은 최첨단 기술에 얽매이기보다는, 같은 가치관을 지닌 사람들이 공동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이것은 의료계에도 일맥상통한 이야기다. 의료계 역시 디지털 혁명이 키워드로 떠오르며 기술과 사람이라는 극단적인 요소의 균형이 중요해졌다. 의료기술이 발달되면 우리는 더욱더 본질적인 것에 고민하고 집중해야 한다. 의료기술의 발달 이유는 술자와 환자 모두 더 편하게 진료를 이어가게 하기 위함이다. 기술 발달의 중심은 결국 사람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