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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 A치과 이야기

디지털 혁신과 핵심가치

by 최성아

"다른 치과에서 뽑아라고 하던데.. 한 번 더 치료해 볼 수 있는지 해서 여기 왔어요. 살릴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치료를 시도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단, 마지막 치료라고 생각하셔야 합니다. 관리를 어떻게 하냐에 따라 다르지만 수명은 길지 않아요." A 치과에 근무하면서 자주 들었던 말 중 하나다. 치아를 살리는 치료를 한다고 소문이 자자해서 환자들이 소문 듣고 왔다며 찾아왔었다.


dentist-g6af8ac337_640.jpg 출처 : 픽사 베이


A 치과의 슬로건은 '백 년 가는 치과, 백 년 주치의.'다. 한 집의 삼대가 찾아오기도 하고, 이렇게 살린 치아들을 수년 후 탈이 나거나 발치를 하게 되더라도 덕분에 내 치아 한 번 더 썼다고 감사의 인사를 하는 환자들도 많았다. 정말 치주염(잇몸병) 진행이 극심하거나 뿌리만 남아있는 치아가 아닌 이상, 치료를 시도해 볼 만한 치아는 치료를 시도하는 곳이었다. 특히나 신경치료만큼은 대학병원 보존과에 가야 하는 케이스조차 같은 치과의사 의뢰로 올 만큼 저명했다.


나의 치과 인생 중 가장 긴 시간을 이곳에서 보냈었다. 아직도 가족이나 지인이 치과를 가야 할 경우가 생기면 이곳으로 소개를 한다. 전통적인 방법으로 정석으로 치료를 하기도 하지만, 디지털 기술 도입에도 적극적이었던 리더가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보통 전통적인 진료에 대한 자신이 있는 경우, 새로운 기술 도입에 대해 반감을 가지는 치과의사가 많다. 기존의 기술들이 습관이라고 할 만큼 익숙해져 있기에 기술을 새로 습득한다는 것도 쉽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더욱더 결단력이 필요한 게 바로 디지털 시스템 도입이다. 그런 면에서 A 치과 대표원장은 적극적으로 먼저 움직였다. 필요한 장비를 구입하며 디지털 시스템 도입에 투자했다. 치기공사와 함께 적극적으로 디스커션(discussion)을 하며 안정된 기공물이 나오기 위해서 자신의 진료 스킬을 어떻게 바꾸어야 하는지 고민하고 수정해나갔다.


그 결과 당시에는 획기적인 시스템인 당일 보철 세팅이라는 시스템이 시작됐다. 전통적인 치료방식을 잘 유지하며 디지털 시스템 도입했기에 치아 보존 치료에 한발 더 나아갈 수 있었다. 보통 인레이(충치 부위를 제거해 기공 과정을 거친 금이나 세라믹으로 만든 기공물을 접착하는 것)로 치료해야 하는 케이스 중 신경치료로 넘어갈 수도 있을 만큼 충치가 진행된 경우가 있다. 케이스마다 다르긴 하지만 기존의 전통적인 방식으로 치료를 한다면 본을 뜨고 내부에 기공소가 없는 곳이라면 외부 기공소에 의뢰를 하여 최소 3~4일 뒤 기공 세팅이 이뤄진다. 그사이 치아 신경이 예민해져 신경치료로 넘어갈 수도 있는데 디지털 시스템으로 당일 보철 세팅이 진행된다면 과정이 생략되어 신경치료를 하지 않는 치료로 마무리가 될 수도 있다.


A치과 대표원장은 어떻게 이런 빠른 결단을 할 수 있었을까? 바로 그것은 A치과의 핵심가치 때문이다. A치과의 핵심가치는 '우리는 한 사람의 인생에 관여하는 일을 하고 있다.'이다. 이것은 내가 업을 대하는 마음으로 자리 잡았는데 단순히 치료를 한다는 의미를 넘어 우리가 제공한 의료서비스로 인해 환자의 인생이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을 함축하고 있다.


다음은 A치과 대표원장이 직원들에게 남겼던 글의 일부 내용을 발췌한 것이다.

A치과는 인간을, 인류를 이롭게 하려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하는 일은 의료이며, 서비스업 중에서도 의료라는 것은 다양한 지식을 총동원해야 하는 고난도의 작업입니다. 환자의 생리적, 심리적, 사회적 상태는 어떠한지 파악하고 그 술식이 어느 정도의 예후를 가지며 앞으로 환자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술자와 의료진들만이 알 수 있는 영역입니다. 환자들은 큰 금액을 지불하고 이러한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이며 이 의료서비스의 가치는 실제 지불하는 금액보다 훨씬 더 높습니다.(중략)

좋은 진료라는 것은 치의학적으로 옳고, 의료진이 보기에 보편타당해야 하며 이는 '인류를 이롭게 하는 일이다'라는 의료진의 태도는 환자로 하여금 확신이 들게 할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것이 보편타당하며 환자에게 적절한 치료인지를 공부하고 연구하는 것은 의료인에게 요구되는 덕목이며 이는 우리의 자부심을 일깨워 주는 일이며 돈을 벌게 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위 글의 내용들은 모든 직원의 행동에서도 전해졌다. 즉, 이 치과의 아이덴티티(identity)*이며, 환자에게 브랜딩 된 치과의 이미지이다. 경영을 위해 근간을 흔든다면 충성 환자(고객), 내부 직원들은 다른 곳으로 떠나게 된다. "내가 다른 치과와 같은 방식으로 치료한다면, 아마 우리 직원들도 이곳을 떠날 거예요." 맞는 말이었다. A치과에서 행하는 의료서비스에 대한 자부심은 직원들도 컸기 때문이다. 나 또한 되돌아온 경험이 있기에 더욱 공감됐다. 같은 이유로 재입사를 했던 직원이 2명이나 더 있었다.


앞으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경험 경제 시대다. 경험 경제란 소비자와 생산자가 상품이나 서비스의 가치에 나타내는 공감을 뜻한다. 소비자의 공감을 이끌어내기 위해 생산자의 진정성이 필요한 시대가 됐다. (중략) 경험 경제의 연관 단어는 진심, 솔직, 공유, 공정, 정직, 공개, 분배, 배려, 합리, 믿음이다. 이제 사업은 이 단어 중 어느 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것인가에 달려 있다.

책 <알면서도 알지 못하는 것들> 중


리더의 철학은 내부, 외부 고객 경험에 직접적으로 관여하게 된다는 것을 A 치과 대표원장은 알고 있었다. 때문에 숫자에 직원을, 그리고 환자를 몰아세우지 않았다. 나는 아이덴티티(identity)에서 dent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우리 치과의 아이덴티티는 무엇인가?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바꿀 것인가?


woman-ga7c984260_640.jpg 출처 : 픽사 베이



*아이덴티티 (identity) : 변하지 아니하는 존재의 본질을 깨닫는 성질. 또는 그 성질을 가진 독립적 존재 (표준국어 대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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