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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브랜딩 Epi 1 : 타이밍이 중요한 상담

그땐 미처 알지 못했던 타이밍

by 최성아
출처 : pexels


‘잠깐 멈췄다 가야 해, 내일은 이 꽃이 없을지도 모르거든.’
누군가 이렇게 적어서 보냈다

내가 답했다
‘잠깐 멈췄다 가야 해, 내일은 이 꽃 앞에 없을지도 모르거든.’

- 류시화 시집 ‘꽃샘바람에 흔들린다면 너는 꽃’ 중 -



발치의 타이밍


흔히 우리는 타이밍이 중요하다고 한다. 사람을 만나는 타이밍, 어떤 일을 하게 되는 타이밍. 그런데 치과에서는 발치, 즉 치아를 뽑아야 하는 타이밍도 있다. 치료적인 관점에서는 치주염(잇몸병)으로 뼈가 녹아 치아가 많이 흔들릴 때, 충치가 진행이 많이 되어 치료가 어려울 때, 치아 뿌리 끝까지 금이 가거나 부러졌을 때가 대표적이다. 발치의 타이밍을 놓치게 될 경우 병세가 더욱 악화되는 경우도 왕왕 있다. 하지만 가끔은 치료받는 분의 전신 건강의 상황으로 발치를 영영 미뤄야 하는 순간도 있다.


20대 중반의 어느 날, 50대 후반의 중년 여성의 상담을 할 때였다. 나보다 더 오래전부터 근무하던 치과에 치료를 받으러 오셨던 분이었다. 치과에서는 안모(顔貌) 변화 확인을 위해 얼굴 사진을 찍어두는 경우가 있다. 이전 기록을 보니 거의 10년 만에 치과에 방문하셨는데 적어도 15kg 이상 살이 빠진 상태로 내원을 하셨다. 부군(夫君)과 손을 잡고 힘없이 병원 입구를 통과했다. 건강 이력을 체크하다가 간경화로 인해 예전보다 살이 많이 빠졌고 곧 입원을 할 예정이라고 하셨다.


“지금 내가 틀니를 쓰고 있는데 이가 부러져서 씹을 수가 없어요.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데 새 틀니 만들어서 하루라도 더 잘 씹고 가고 싶네..” 너무 덤덤히 이야기를 하셔서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내가 우는 게 오히려 실례가 될까 봐 눈물을 참았다. 부러진 치아는 간경화로 인해 발치를 할 수 없었기에 틀니 사용에 불편함이 없도록 치아를 다듬고 틀니 제작 과정이 시작됐다. 틀니는 환자분의 잇몸 형태나 여러 가지 해부학적 구조물 채득 및 재현으로 여러 번의 본을 뜨고 제작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거의 마지막 단계로 넘어갈 때쯤, 예약일에 방문하지 않으셨다. 가끔 컨디션이 많이 안 좋으신 날은 예약 일정을 바꾸기도 하셔서 그런 줄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하루 뒤에 연락드려도, 그다음 날에 연락드려도 그렇게 며칠을 연락을 했지만 보호자도 함께 연락이 닿지 않았다. 그 뒤 여러 번의 연락을 시도했지만 계속 부재였다. 한 달여만에 병원으로 전화 한 통이 왔다. 그 어머님의 부군이셨다.


어머님의 작고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간 정신이 없어서 연락도 드리지 못했다며 죄송하다고 하셨다. 그러고는 얼마 뒤, 부군께서 병원에 방문했다. 그간 치료에 애써줘서 정말 고마웠다고 말씀하셨다. 너무 죄송스러웠다. 조금 더 일찍 틀니 제작을 빨리해드렸다면.. 아니 이 분을 만난 타이밍을 조금 더 앞당길 수 있었다면 새 틀니를 잠시라도 사용하실 수 있지 않으셨을까. 상담자로서 선택하고 선택당하는 타이밍을 맞이하는 순간이 많지만 이때만큼은 그 선택의 타이밍을 뛰어넘는 순간이었던 거 같다. 10년 정도 흐른 어느 날의 이야기이지만 여전히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지는 순간이다.



설명의 타이밍


막 상담을 시작하던 때의 일이다. 50대 중반의 중년 여성의 상담이었다. 어금니가 많이 흔들려서 치아를 뽑아야 하는 발치 진단이 나왔다. 나는 배웠던 대로 발치를 하게 되는 과정과 주의사항, 치료방법에 대해 설명을 했다. 그런데 설명을 듣던 중 환자는 갑자기 눈물을 흘렸다. 순간 당황했다. ‘어?! 내가 뭘 잘못 설명했나? 뭔가 불편하신 건가?’라는 생각에 이유를 물었다.


“얼마 전부터 갱년기 증상이 와서 여자로서의 삶이 끝난 거 같았는데 이제는 치아를 빼야 한다니.. 그냥 쓸모없는 늙은이가 되어버린 느낌이에요. 미안해요. 제가 주책맞게 울어버렸네요..”


머리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전공자였던 나에게는 그저 치아 하나를 빼는 과정이었는데 그녀에게는 그녀의 삶이 빠져나가는 과정이었던 것이다. 전혀 다른 시각으로 같은 상황을 마주하고 있다는 사실은 나에게 큰 충격을 주었지만, 그저 어리기만 했던 20대의 난, 큰 공감을 하지 못했던 거 같다.


30대가 되어서 같은 상황의 상담을 한 적이 있다. 그분 역시 상담을 하던 중 눈물을 보이셨다. 그때는 같이 울었다. 그녀의 삶이 나에게 다가왔다. 그 감정이 온전히 느껴져 버려서 눈물이 났다. 차가운 이성과 따뜻한 감성이 필요한 의료서비스. 의료진으로서 감정표현을 한다는 게 프로답지 못하다 생각했다. '슬기로운 의사생활 2'에서 나온 대사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출처 : https://news.nate.com/view/20210722n42566


우리가 AI는 아니잖아.



우리는 AI가 아니며 나무에 임플란트를 심는 사람들도 아니다. 그리고 임플란트를 파는 사람도 아니다.

물론 치료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필요하다. 하지만 설명에도 타이밍이 필요하다. 병원을 찾아오는 분들에게 우리의 공감과 위로는 어쩌면 가끔, 명약보다 절실한 것이 아닐까. 상담이란 그저 비용 판단을 하고 결정 내리는 과정이 아닌 이렇게 서로의 인생에 한발 더 다가가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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