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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Aug 20. 2024

그때 걸었던 길, 제주

푸른 제주에서 찾았던 길

내일이 개학이라 아이들은 숙제하느라 바쁘다. 첫째는 방학 때 이런저런 활동을 빙고 형식으로 간단하게 정리하는 숙제고 둘째는 한글, 연산 공부는 조금씩 하면서 책, 운동한 후 표시하는 숙제다.


요즘 초등학교 아이들 방학 숙제는 참 간단하다. 매일 운동, 독서한 내용을 간단히 체크만 하면 되고, 선택과제라고 해서 원하는 과제를 1-2개 골라서 하면 된다. 매일 일기 쓰기 숙제도 없어서 방학 전날 몰아서 일기 쓸 필요도 없다. EBS에서 하는 방학 탐구 생활도 안내는 하지만 보는 아이들은 아예 없는 것으로 안다. 안내만 하고 있다.  방학 숙제하면 떠오르는 숙제들이 머릿속으로 많이 떠오르지 많지만 학교 과제 외에도 아이들이 하는 여러 학습 활동들이 많아 과제도 최소한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둘째는 책 한 권 읽고 한 줄씩 느낀 점 쓰는 숙제도 차일피일 미루다가 오늘에서야 겨우 마무리하고 있다.


나도 아직 못한 방학 숙제가 있다. 제주 여행 다녀온 후 글을 쓰지 않았다. 그게 가슴에 얹혀서 방학 마무리가 안된다. 꼭 써야 할 것을 안 한 것처럼 가슴이 답답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그냥 안 하고 모른 척하면 되는데 그게 안되어서 꼭 숙제 안 한 아이처럼 안절부절못했다. 여행을 다녀왔다고 꼭 글을 써야 하는 것은 아닌데도 제주는 나에게 특별한 여행지였기 때문에 모른 척할 수 없었다. 우리나라 사람들 대부분 흔하게 다녀올 수 있는 제주도이지만 이번 여행이 조금 특별할 수 있었던 것은 나의 이십 대 발걸음을 다시 떠올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임용 재수를 하던 2009년 6월 어느 날.

갑자기 제주도에 가고 싶었다.

지금이야 올레길하면 한번 안 걸어본 사람 없이 유명하지만 당시엔 서서히 입소문을 타던 때였다.

청록빛 아름다운 바다를 생각하면 뛰어들어 참방거리고 싶어 가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당시 나에게 제주는 유배길이었다.


크고 작은 시도가 있었던 24살의 인생에서 처음으로 실패를 맛봤다. 지금 생각하면 별 거 아닌 거였다.

임용 재수가 뭐 대수라고!

그런데 그땐 그게 전부인 줄 알았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매일 고개를 숙이고 다녔고, 자전거를 쌩쌩 달려 아침엔 도서관으로, 저녁엔 집으로 오가며 임용 시험을 다시 준비했던 때였다.

부모님과 고향에 있던 친구 1명을 제외하고 아무와도 연락을 하지 않았다. 대학 시절, 다양한 인간관계를 맺으면서 외향적인 성격인 줄 착각하고 4년을 지냈는데 집에 있던 시기 이미 교사가 된 대학 동기들의 연락도 모두 차단하고, 심지어 집주소를 어떻게 알아서 손 편지를 보낸 친구의 편지도 깡끄리 무시한 채 혼자가 되었다. 조그만 시골 고향집의 작은 방에서 혼자 울며, 공부하고 다짐하면서 봄을 보냈고 여름이 되었다.


그런데 그렇게 혼자 있으면 안 되었다.

아버지, 어머니는 일철이라 제일 바쁘던 시기였지만 나에겐 집안일 하나 시키지 않고 집중할 수 있도록 해주셨다. 한번 공부했던 교육학, 교육과정은 보면 볼수록 언제 봤던가 가물가물하고, 정리되기보다 매번 새로 시작하는 느낌이었다. 학교 도서관이었을 땐 동기들과 이야기도 하고, 스터디도 같이 하면서 자극을 받기도 하고, 동기부여도 저절로 됐지만 혼자 공부는 웬만한 정신력으로는 하기 힘들었다.


매일 쳇바퀴 도는 것 같은 하루가 지나갔다.

도서관을 떠나야겠다고 생각했다.

임고 재수생인 딸에게 아버지는 매달 일정량의 용돈을 보내주셨고, 덕분에 입출금 통장에 얼마간의 돈이 있었다. 나는 무작정 배낭 하나, 올레길 책 1권,  운동화 끈 단단하게 묶고 제주로 갔다.


목포 여객선 터미널에서 출발한 여객선을 타고, 제주에 도착하니 오후였고 미리 읽어둔 코스대로 올레 1길부터 걷기 시작했다. 비가 부슬부슬 오는 종달리 해변길로 시작해서, 밭담을 지나 아무도 없는 산길을 얇은 비옷 한 장 걸치고 무작정 걸었다.

배도 고프고, 비에 제주 바람에 섞여 있어, 6월 초인데도 몸이 덜덜 떨렸다.

하지만 더 떨렸던 것은 여행객으로 북적일 것 같았던 올레길에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지금에야 올레길마다 센터도 있고 하던데 그땐 정말 거의 처음이라 파랑, 노랑 리본끈만 보고 걸었던 것 같다. 여차여차해서 광치기 해변까지 걸어 내려와서 성산일출봉 바로 아래 여관에 들어갔다.

그날부터 시작해서 6일 동안 열심히 걸었다.

지금은 사라진 다음 블로그에(지금은 티스토리) 그때 사진 몇 장을 올려두었는데 다시 보니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8월, 비 한번 시원스레 내리지 않는 연일 폭염으로 무척 더웠지만 그때도 6월 초였지만 매우 더웠다. 대부분의 코스를 무작정 걸었다. 하루에 대략 짧게는 10킬로, 길게는 15,16킬로미터까지 걸었던 것 같다. 편안한 렌터카에, 에어컨 바람 최대로 틀어 유람하는 여행했던 이번 여행과 달리 그때 여행은 한 걸음 한걸음이 다짐으로 가득했다. 이따금 마주치는 내 또래의 여행객들은 자전거를 타고 다니거나, 둘셋씩 같이 돌아다녔다. 나처럼 혼자 다니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있다 하더라도 말을 붙이지도 말을 걸지도 않았다.


-이 정도로 힘들다고 말하면 안 되지! 그런 정신으로 어떻게 공부를 할 거야?

-사람들하고 사귀려고 놀려고 제주도 온 거 아니다. 정신 다잡으려고 온 거야.


이를 악물고, 무작정 걸었다. 인도가 따로 있는 길이 아니었기에 옆으로 차들이 쌩쌩 지나갔지만 그저 앞만 보고 걸었다. 그렇게 6일을 걷고 여행을 마무리했다.

15년 전 여름 초입에 나는 그 먼 길을 왜 걸었을까?




서명숙의 제주 걷기 여행 속 한 구절이다.


올레는 힘들고 지친 당신에게 바치는 길이다.

나는 생각했다. 희망이란 것은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이나 마찬가지다.

원래 땅 위에는 길이란 게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게 곧 길이 되는 것이다.


아무도 응원해 주는 사람 없이

혼자 제주 길을 걸으면서

한 걸음 걸을 때 아름답다고 생각했고

그다음 걸을 때 외롭다고 생각했고

다른 발을 내딛을 때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임용 공부에 열중해야 할 때 한가롭게 여행이나 간다고 엄마는 타박했지만 그보단 혼자 생각을 정리하고, 마음을 다잡고 온 딸에게 저녁밥상을 내줬다. 그 더운 6월이 지나 다음 해 교사로서 새로운 한 발을 뗐다.




이번 여행으로 다시 돌아오자.

아이들 데리고 간 제주 여행은 두 번째지만 시부모님과 같이 하는 거라 조금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두 분 모두 여행하시기에 너무 연로하지 않으셔서 어딜 가든 좋아하셨고, 한여름 뙤약볕 걷는 일이 많아 짜증 내는 아이들 때문에 힘들었는데 우리 대신 아이들 짜증도 다 받아주시며 3박 4일 즐겁게 여행을 마쳤다. 하지만 사람들 다 우르르 몰려가는 관광지를 갈 때마다 보이는 바다와 산길을 보며 아이들에게 옛날 혼자 여행했던 엄마의 이야기를 무용담처럼 들려주는 것도 좋았던 여행이었다.


(게시된 사진은 모두 2009년에 찍은 사진이라 화질이 안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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