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ver again 부장님

by 다시

이제 헤어질 인사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종업식 날 아침은 일찍 일어났다. 그 전날 교실 정리 하느라 바빴던 손목과 손가락이 욱신했지만 크게 아프진 않았다. 가뿐한 아침이었다. 3교시만 하고 끝나고 집에 올 아이들을 위해 밥을 든든히 먹였다. 함박스테이크 반조각, 계란 후라이 한 개, 사과 3쪽, 해쉬브라운 한 조각씩에 밥 한 덩이는 우리 아이들 아침 식사치고 꽤 무거웠지만 딸은 묵묵히 잘 먹고, 아들도 쫑알 대면서 아침을 먹었다.


평소보다 덜 차가운 공기도 마음에 들었다.

찡얼거리며 말을 하는 아들의 말을 적당히 무시하며 등굣길을 천천히 두드리며 걸어가는 발걸음도 사뿐했다. 교문 앞은 노점을 펼치며 꽃다발을 바삐 전시하는 상인들과 아이들이 뒤섞여 있었다. 지나가는 아이들의 손에도 어렵지 않게 꽃다발을 볼 수 있었다.

1학년은 종업식, 6학년들은 졸업식.

저마다의 마지막을 위해 학교로 모였다.


교실은 어제 정리하면서 사물함 위에 쌓아둔 짐들로 복잡했지만 나머지 공간은 차분히 정리되었다. 아이들 보내고 마지막으로 내 책상과 주변만 정리하면 될 것이었다. 교실 문을 열자 평소처럼 나보다 먼저 온 아이에게 인사를 건넸다. 오늘은 급식이 없는데 밥을 먹고 오지 않았다고 말하는 남자아이도 있었다. 어제 짐 정리하다가 남은 초콜릿 한 개를 까서 두 아이에게 차례로 까줬다.

평소엔 칠판에 오늘 공부할 것들이 순서대로 나열되었지만 아무것도 없는 칠판을 보자 아이들은 오늘 뭘 하냐고 묻는다.


-오늘은 1학년 마지막 날이잖아! 종업식이야!

-선생님 오늘 급식해요?

-아니. 오늘은 급식 안 해요!

-배고파요.

-선생님도.


3교시 후 하교할 아이들 뱃속을 달래는 것은 일단 미루고 컴퓨터를 켰다.


오늘 일정

1. 학급 종업식 - 통지표 배부

2. 통지표 마감

3. 교실 정리

4. 교직원 모임 11시 40분

5. 폐기물 수거 1차 종료일

6. 2월 출결 서류 제출


별일 없군! 학년 선생님들에게 마지막으로 오늘 일과를 보내고 하이클래스(학급소통)를 보았다. 독감으로 못 오는 아이 1명은 오늘도 결석이다. 열로 어제 조퇴한 아이 1명도 독감 확진은 아니지만 열이 있어 못 온다고 한다. 1명은 조금 늦는단다. 어제 1교시 후 독감 증세로 안 온 아이에겐 따로 연락이 없다. 일단 체크.


아까 보다 몇 명 더 왔길래 인사를 한다. 웬일로 마스크를 썼길래 많이 아프냐고 물으니 내 곁으로 와서 귀에 가까이 다가와 살짝 말한다.


-선생님 저 독감이래요. 어젯밤에 수액 맞고 왔어요.

-그래? 괜찮아? 열 떨어졌어?

-네....

-그래도 마스크는 쓰고 조심해 줘.


그 말을 마치자 갑자기 내 책상에 고개를 푹 숙이고 펑펑 운다. 어제 열로 고생을 해서 하루 쉬고 싶었는데 학교에 와서 힘들어서인지, 아니면 독감인데도 학교에 와서 서러워인지 그 모두인지 아무튼 아이는 처음으로 펑펑 울었다. 설마 오늘 종업식이라고 우는 건 아니겠지?

우는 아이를 일으켜 세우고, 괜찮다고 토닥거려 줬다. 눈물범벅인 얼굴을 보니 한참 앓은 얼굴이다. 아이를 학교로 보낸 엄마의 마음도, 아이의 마음도 이해되어 더 말하지 않았다.

울던 아이를 챙기는 사이 교실은 아이들로 복작거렸다. 조금 소란스러운 것은 평소와 다른 분위기를 아이들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개학 이후 아침 활동으로 하던 달력을 만들라고 하지도 않고, 책을 읽으라고 하지도 않고, 뭔가 많이 달라지 교실을 아이들도 알았다. 그 전날 그렇게 열심히 닦은 책상과 의자를 매만지며 아침에 뭐 하냐고 물어본다.


-어제 다 못 챙겨간 준비물 사물함에 있으면 가방에 넣어요. 그리고 친구들하고 조용조용 이야기하고 있어요. 선생님은 오늘 못 오는 친구들 짐 좀 정리할게.


조용조용 이야기라는 반어를 정확히 이해했는지 소란스러운 아이들 앞에서, 나는 분주하게 결석한 아이들 결석신고서를 다시 뽑고, 달라진 출결을 반영하여 통지표를 다시 뽑은 후 이미 스테이플러 찍은 통지표를 풀어 이전의 것을 파쇄하고, 다시 통지표를 묶었다. 도장도 깜빡하면 안 됐다. 확실히 안 온다는 아이 2명의 통지표를 학교 봉투에 넣고 교무실에 가져다 줄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아침보다 더 안색이 안 좋아진 아이 1명이 내 앞으로 비틀비틀 나온다.


-어, **이 왜?

-선생님~ (특유의 하이톤의 목소리로) 속이 안 좋아요.

-그래? 아이고 많이 아파?

-네......

-보건실에서 좀 쉬고 있을까?

-네......


아이가 보건실에 가고 대강 서류가 정리가 되어 반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군데군데 빈자리가 서운했다. 겨울방학 전에도 이렇게까지 결석하진 않았는데 요즘 B형 독감이 돈다더니 우리 반 아이들이 종업식인데 이리도 앓게 될 줄은 몰랐다. 그래도 마지막은 마지막이었다. 같이 만든 뮤직비디오를 보고, 교장선생님의 종업식 말씀을 영상으로 보았다. 돌아가면서 한 마디씩 친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했다.


안녕. 잘 있어. 같은 반 되면 좋겠다. 잘 가.


짧은 말속에도 무던히 서운해하는 아이들과 여전히 장난스러운 아이들이 인사를 주고받을 때 보건실에 갔던 아이가 들어왔다. 눈물이 살짝 고인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자리에 앉길래 다시 물었다. 보건실에서 열도 재고 쉬었지만 쉬이 컨디션이 돌아올 리 없었나 보다. 집에 가고 싶냐는 말에 고개만 끄덕이는 아이를 보고 학부모님께 연락을 드렸다. 알고 보니 아침에 속이 안 좋아서 결석을 할까 싶었는데 종업식이라 보냈다는 것이었다. 곧 오신다는 학부모님의 말이 끝나자 미처 챙기지 못한 아이의 사물함 짐을 챙겼다. 아이의 통지표도 다시 출력해야 했다. 개근이라고 적힌 출결 비고란을 지워야 했다. 종업식날 겨우 2시간 남았지만 조퇴는 조퇴니까.

다시 나이스에 들어가서 출결 마감을 풀고, 조퇴를 찍은 후 출결 특기사항에 적힌 개근을 지운 후, 생활기록부에 들어가서 생활기록부 반영을 누른 다음 통지표를 새로 출력했다.

단 5분 만에 이 작업을 끝내고, 아이의 통지표와 작은 선물을 가방에 넣고 아이를 데리고 정문으로 갔다. 곧 쉬는 시간이 끝나는데 학부모님이 안 오셔서 다시 전화를 거니 길이 엇갈렸다. 학부모님과 만나 짧은 인사를 마치고 교실로 헐레벌떡 들어갔다.


단 1교시가 끝난 시각이었는데 아침의 상쾌함과는 상태가 영 멀어졌다. 담백하고 간결하게 종업식을 치르고 싶었는데 그렇지 못했다. 사실 그렇게 아쉬운 마음은 아니었다. 학교를 옮기는 것도 아니고 오며 가며 볼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그리고 많이 큰 아이들을 보며 내심 잘 키우고 적당한 헤어질 시간이 되었다고 생각했었나 보다. 그런데 이렇게 할 일이 쏟아지는 것을 보니 내가 아직 이 아이들을 보낼 준비가 안되었던 건가 싶었다. 아까 인사를 할 때 분명 아쉽지 않다고 했는데 아쉬웠었다.


왜 마지막까지 지각을 하니.

오늘 같은 날 왜 아프니.

독감이면 집에 있었어야지.

결석 신고서는 왜 제때 제출하지 않으시나요?

오늘 분명 급식 안 먹는다고 했는데, 밥도 안 먹고 배고프다고 하니.

통지표를 도대체 몇 번을 다시 뽑아야 하니.

왜 아직도 화난다고 교실 밖으로 뛰어가는 거니.

친구들이 안 놀아준다고 왜 우니.

어제 분명히 청소했는데 왜 교실 바닥이 어지러운 거니.

사물함에 짐이 아직 많이 있는데 가방을 작은 것을 들고 오면 어떡하니.

왜왜왜....


돌아올 답이 없는 말을 속으로 쏟아내고 아이들 얼굴을 보니 답은 거기 있었다.

아직 1학년 아이들이었다. 컸다고 했지만 이젠 2학년이라고 했지만 아직도 1학년 티를 못 벗은 우리 반 아기들이 앉아 있었다. 아이들은 가고 싶어 했지만 나는 이 아이들이 여전히 못 미더웠던 것이었다.

내가 믿어야 했다.

이젠 아이들을 보내야 하고, 나도 가야 했다.

아쉽고 미련이 남아도 정해진 시간이 끝나갔다.

아직 서툴고 어려도 아이들은 결국은 잘 해낼 것이다. 그렇게 믿고 미련을 접어야 했다.


나머지 시간은 다시 시끌벅적. 11시 25분이 되어 아이들을 보냈다. 독감에 걸린 아이가 있어서 조심하자는 의미로 우리 반 인사 안아주기를 못해서 서운했지만 이쁜 아이가 끝까지 남아 안아주고 갔다. 꼬깃꼬깃한 편지도 주고 갔다.


아이들 가고 난 뒤 허공에 뜬 마음을 겨우 잡고 교실 게시판도 정리하고, 남은 쓰레기도 버렸다. 6학년 졸업식 후 의자도 열심히 치우고, 믹스 커피 한 모금 마셨다. 웬일인지 울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배가 고픈 것이었는지 피곤한 것이었는지 집에 와서는 푹 잤다. 정신없는 종업식이었는데 어제의 시간이 모래처럼 샤라락 흩어지고 평온한 주말이었다.



이 글을 마지막으로 Are you 부장님 1학년 이야기를 마치려고 한다. 글 쓰는 것이 올해 조금 힘들었다. 있었던 일을 고스란히 쓰자니 마음이 바빠 미루던 날이 많았는데 이제 1학년 일년살이 글을 마칠 때가 진짜 되었다. 브런치에서 온 메시지를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처음 나에게 Are you 부장님?이라 물었던 원어민 선생님과 얼마 전에 만나 짧은 토킹 타임을 가졌다.


내가 먼저 원어민 선생님에게 다른 학교로 가냐고 물었더니 아니란다. 나에게 몇 학년을 지원했냐고 되물어서 6학년을 지원했다 말하니 좋아한다. 원어민 선생님은 올해 5-6학년 수업 지원을 하기 때문에 매주 1시간을 만날 것 같다. 또 물었다.


Are you 부장님 again?

Nope!!! never again 부장님!!!


-끝-

이전 20화헤어질 준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