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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창훈 Dec 08. 2023

송찬호의 '나비'

이 별에서 읽은 봄날의 시

나비

                      -송찬호




나비는 순식간에

째크 나이프처럼

날개를 접었다 펼쳤다


도대체 그에게는 삶에서의 도망이란 없다

다만 꽃에서 꽃으로

유유히 흘러 다닐 뿐인데,


수많은 눈이 지켜보는

환한 대낮에

나비는 꽃에서 지갑을 훔쳐내었다







송찬호의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을 천천히 읽다가 

확~ 눈 속으로 들어왔던 시.


화창한 봄날의 넘치는 생명의 시절은 아니지만

우수수 떨어진 조락의 낙엽들을 밟으며 

다가 올 봄을, 봄날 화사하게 피는 꽃들을, 

꽃과 꽃 사이를 유유히 흘러 다니는 나비를 떠올린다.


나비의 날갯짓은 우아하고 아름답지만

기실 그 이면에는 불안과 생존이라는 절박한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고 생각한다.


날개를 접고 펼치는 행위가 

타자의 눈에는 아름다움의 이미지로 각인되겠지만

자신의 입장에서는 사느냐 죽느냐의 절박한 생존일 것이다.


지상의 대지와 저 높은 이상의 하늘 사이

그 사이의 어느 발 디딜 수 없는 허공이라는 공간에서

계속 날개를 접었다 펼칠 수 밖에 없는 존재.


그렇다면 그 나비는 결국 

삶에서 도망칠 수 없는 인간의 메타포가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인가.


지상과 허공 사이에서 끊임없이 중력을 이겨내며 날아야만

얻을 수 있는 꿀.

지상과 하늘 사이에서 끊임없이 주어진 일상의 세파를 이겨내야만

얻을 수 있는 생존의 삶.


그런 생의 준엄함을 스스로의 마음 속에 새기며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긍정하며

고통스럽지만 아름다운 날갯짓을 오늘도 하고 있는 것이다.


환한 대낮에 꺼낸 꽃의 지갑 속에 든 것이

무엇이라고 딱 단정할 수는 없다.

그것이 우리의 생존을 위한 '꿀'이든

그것이 우리가 삶으로부터 도망치지 않고 용기내어 맞서서 얻은

자신만의 순금같은 '의미'이든

그것은 분명 가치있고 아름다운 것임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분명 자기 내면에서 꽃피는 무엇일 것이기 때문이다.


연약한 날개의 펄럭거림을 

금속성의 날카로움과 결합하는 상상력

꽃 속의 지갑이라는 동화적인 이미지의 모호함.

시인의 놀라운 시에 감탄할 밖에... 



--'그에게는 삶에서의 도망이란 없다', Pixabay 무료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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