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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리어가드너 May 24. 2024

후회 감싸 안기

'다시 또다시 취준생이 되다' 시리즈

손가락이 방아쇠(triggers)를 당기지만, 
방아쇠 또한 손가락을 당기고 있을 수도 있다 
- Leonard Berkowitz -



슬퍼하되 마음 다치지 않게(애이불상(哀而不傷)   


어느 날 갑자기, 내 인생에서 아버지가 사라졌다. 운동회 날이면 내 손을 잡고 힘껏 뛰어주셨던 승부욕 아주 강하셨고 늦은 밤 체육관 창문 너머로 딸내미의 모습을 몰래 지켜보셨던 큰 산과 같던 아버지의 모습은 그날 이후로 볼 수가 없었다. 운동 부원중 어머니가 안 계신다는 이유로 주위 친구들로부터 놀림거리가 된 친구의 모습도 스쳐 지나갔고 정작 이제부터 '나도 놀림거리가 되겠구나'하는 당장 겪는 고통과 언제 끝날지 모르는 철없는 불안함이 컸었다. 그 시간은 마치 내 삶의 '암전(暗轉)'과도 같은 고통의 시간이었다.      


후회란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면서 그와는 다른 방식으로 살았기를 원하는 자신을 발견하는 순간에 경험하게 되는 감정이라고 한다. 그 과정의 고통은 트리거(trigger)로 작용해 과거보다 나은 쪽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힘, 변화를 이끄는 가장 강력한 동기를 만들게 된다. 하루의 훈련량을 못 채워 주어지는 체벌이 아버지의 빈자리에서 오는 무서움보다 더 크게 느껴졌던 것 그 시절, 마치 예전보다 더 강력한 훈련량으로 하루하루를 버티게 했던 힘이었던 것처럼.      

    

어머니 : 밥은 잘 먹고 있니? 건강은? 별일은 없지? 
나 : 어머니, 저 지금 좀 바빠서요... 나중에 제가 전화할게요! 뚝-

(며칠 후)

남동생 : 누나, 바빠? 어머니가 좀 편찮으셔...
나 : 어디가 안 좋으신데? 병원은 모시고 갔어? 의사 선생님이 뭐래?
남동생 : 응, 좀 많이 안 좋으셔... 암 이래... (울음)
나 : 뭐? 뭐라고? 암? 누가? 자세히 좀 말해봐!     


공항에 도착해서 병원까지 가는 내내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일이 현실로 되어버렸다. 환자복을 입고 한없이 작아진 어머니의 모습이 너무 낯설었다. 불과 몇 달 전 기억 속 나의 어머니 모습이 아니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바쁜데 뭐 하러 왔어어미가 미안하구나...."      


가난하지만 비굴하지 않은 당당함을 보여주셨던 어머니는 항상 엄격했고 무서운 여장부 같은 분이셨다. 나날이 쇠약해지는 어머니의 모습을 옆에서 지켜만 볼 수밖에 없는 내 자신이 너무 한심하고, 어머니와 보낼 수 있는 시간의 부족함에 더욱 화가 났고 억울했다.    


나 어렸을 때 내게 당신은 그저 구세대일 뿐 
나를 이해해 줄 순 없다고만 느꼈었죠
나 어떨 때는 내 맘 닫았고 때론 원망도 했고 
난 엄마처럼 살진 않겠다 결심도 했죠 
나이 들어 난 알게 됐죠 
늘 강한척해야 했던 당신 여린 영혼을 
나 가는 길 미리 지나간 
당신을 같은 여자로서 이해할 수 있게 됐죠
그 어느 순간 나보다 작은
당신 내가 걱정할 친구와 같은 약한 그대를 보게 되었죠 
이젠 내게 편히 기대요. (중략) 
늘 받기만 한 내 모습 양보만 해준 당신 
사랑해요 
나의 어머니 쑥스러운 한 번도 말할 수가 없었죠
왜 이렇게 눈물이 나죠 
이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나의 친구 어머니
- 가수 박정현의 ‘나의 어머니’ 노래 -



'간단하다'와 '쉽다'사이의 엄청난 차이   

  

어머니의 병간호로 몇 번의 휴직과 유연 근무로 버텨오던 직장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누가 봐도 전혀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버티다'는 단어로 위로하며 마지막 나를 위한 배려심이었다. 내 모습이 흡사 10여 년간의 운동선수 생활에 염증을 느꼈던 그때와 많이도 닮아있었다. 잊고 싶었던 과거와의 조우에서 나의 민낯을 마주하게 되었다.    

 

"저퇴사하겠습니다"     


유난히도 힘들었던 12년간의 직장생활을 그만둘 때, 내가 다시 일을 걸 할 거라는 생각은 안 했다. 왜냐하면, 나는 줄곧 힘들었고 그래도 일을 했어야 했고. 그게 당연한 줄만 알았는데 지나고 보니 내 삶의 목표가 사라진 후였다.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 과연 내가 바라던 직업이 맞는지, 청년 시절부터 여러 가지 직업을 선택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왜 이 직업을 선택했는지, 조금의 노력이 뒷받침되었다면 좀 더 좋은 다른 직업을 택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직업에 대한 재고를 하게 되었다.


대부분의 사람은 인생에서 세 가지 문제들로 고민한다고 한다. 첫째, '나는 누구인가?'라는 정체성(identity)의 문제, 둘째, '내가 과연 중요한 존재인가'라는 중요성(importance)의 문제, 셋째, '삶에서 나의 위치는 무엇인가'라는 영향력(impact)의 문제를 말한다. 나를 알아가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다. 더욱이 내 삶의 목적을 이해하기 위한 지름길은 없었다. 과일도 자라서 익는데도 한 계절이 걸린다. 자라서 성인이 되고자 해도 몇십 년이 걸리는 일이고, 습관이 자리 잡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린다. 퇴사 후, 부정하고 싶은 현실에서 자발적이고 선택적인 부인(denial)으로 선택했던 방법이 내 인생을 바뀌게 될 줄은 그땐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동안의 삶을 돌이켜보면 ‘그때 왜 그랬을까?’라는 후회의 질문을 하게 된다. 누구에게나 처음은 서툴다는 식의 당연한 막막함을 핑계 삼아도 여전히 과거의 고통 앞에서는 가슴 먹먹해진다. 그럼에도 과거에 멈칫하며 매 순간마다 떠오르는 그 먹먹함이 불편하지 않는 이유는 과거를 회상하며 현재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고 이를 통해 앞으로의 미래를 잘 준비하고 싶은 ‘나이 듦’ 때문이 아닐런지.      



                             세상에 나를 맞출 것인가, 세상이 내게 맞추게 할 것인가
                                  두 가지가 공존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어느 한 쪽이라도 바르게 무시하고 살지 않으면 사고로 이어질테니까요.
                    옳고 그름, 맺고 끊음을 정확하게 구분지어야 잘 살아가지 않을까요?
           시선에 올라타는 줏대 없음과 시선을 따라오게하는 나르시시즘이 균형을 이뤄야겠죠.
                                    - 배우 변요한, 톱클래스 인터뷰내용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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