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커리어가드너 Apr 17. 2024

아들은 어미의 자존심, 딸은 어미의 자기 투사

'다시 또다시 취준생이 되다' 시리즈

저와 남동생은 같은 운동을 했어요. 집에선 남매로 체육관에선 선후배 사이였죠. 엄마는 항상 저보다 남동생을 더 많이 챙기셨어요. 시합 전, 엄마는 남동생을 데리고 교회 목사님들 한분 한분께 안수기도를 받으셨어요. 마치 경기 전 · 후로 선수들만의 리츄얼(ritual, 의식) 같았죠. 시합장 대신 텅 빈 교회에서 경기 시간에 맞춰 엄마는 홀로 기도를 하셨다고 나중에 들었어요. 30여 년간 남동생이 운동선수로서 버틸 수 있었던 힘은 어머니의 무릎 기도 덕분이었던 것 같아요.      


대놓고 아들을 바라던 시부모님의 구박에 첫딸에 이어 둘째마저 딸로 태어난 내가 아들이 아니라서 엄마는 서운해하셨단다. 내 뒤로 33개월 터울을 두고 엄마가 바라던 아들이 태어났다. 그동안 아들을 낳지 못하고 구박받던 엄마의 설움장치는 자연스레‘아들바라기’로 이어졌다. 대한민국에서 여자로, 맏딸로 녹록지 않은 삶을 견뎌냈던 엄마의 자기중심적 편향인 것이다.    

  

열 손가락 중 더 아픈 손가락은 있다. 부모가 자녀를 편애하는 이유로 부모의 성격적인 연약함, 부모가 편애를 인정하는 사회문화(남아선호사상) 속에서 성장한 경우, 부모가 어린 시절 경험했던 편애에 대한 정서적인 상처의 대물림으로 조사된 연구결과가 있다. 이처럼 부모의 편애는 상대가 형제, 자매, 남매라는 점에서 서러움이 복받치고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마음에 생채기로 남게 된다. 편애로 상처받은 자녀는 정서적인 부분에서도 큰 문제를 겪을 수 있고, 유독 사랑을 많이 받아온 자녀는 집중받는 것에 익숙하기 때문에 주목받지 못하면 큰 충격과 혼란에 빠질 수 있다고 한다.      


그 시절 우리 삼 남매는 ‘밥 먹듯’, ‘부지런하게’ 싸워댔다. ‘우리 삼 남매 싸우지 않게 해 주시고’는 엄마의 단골 기도 멘트였다. 엄마한테 매 맞다 도망치기도 여러 번. 한 연구 결과에서 만 2~4세 아이들은 형제끼리 10분 만에 한 번 꼴로 싸우고, 만 3~10세는 1시간에 3.5회 충동을 일으킨다고 한다. 그때의 치열함과 상흔은 각자의 머리와 몸에 남아있다. 아직까지도 서로 대면 대면 한 것 보면 쉽게 지워지지 않는 깊은 생채기다.     


야구장 관중들도 홈팀을 응원하면 1루 쪽, 원정팀을 응원하면 3루 쪽에 앉는다고 한다. 그리고 이도 저도 아닌 사람들이 앉는 곳이 외야석이라고. 어린 시절, 내 자리는 외야석이었던 것 같다. 존재에 빚 지고 외할머니 댁에서 이방인 같은 생활로 빚을 덜고 싶었던 가난했던 그 시절. 사람은 믿어주는 만큼 잘하고, 아껴주는 만큼 여물고, 인정하는 만큼 성장하는 법이라고 했다. 지금까지도 적당히 가끔, 두 딸들과 엄마 사이에 일정한 거리 혹은 갈등을 만드는 불씨가 되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불공평하게 공평한 사랑의 기술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똑 같이 사랑받는 건 뭔가 사랑을 덜 받는 것이지만, 특별한 존재로서 각기 다르게 사랑받는 것은 필요한 만큼 사랑받는 것이라고 한다. 또 누군가 말했다.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이 모든 걸 누릴 자격이 있다고, 그러니 눈이 부시게 오늘을 살라고,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다고.      


그러니 잊지 말자. 나도 엄마의 자부심이다. 못나고 부족한 자식이 아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신이 주신 축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