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차를 타고 달리면 앞으로 나아가고 있음에도 뒤로 지나가는 풍경들 속에 휩쓸려 나도 같이 후퇴하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속도를 올려도 무언가 잘못된 것만 같은 기분. 불안한 감정은 거기에서 온다. 주변 사람들과 동일한 속도로 달리지 못한 것만 같은 기분이 들 때. 가수 비비의 '인생은 나쁜 X'라는 노래의 뮤직비디오를 보면 그런 장면이 나온다. 주인공이 열심히 달리는데도 계속해서 타인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그렇게 평생 뒤처진 자신을 원망하며 인생이란 마라톤을 달리는 장면. 주인공이 섧게 울 때 나도 같이 흐느껴 울었다. 울면서 내 오랜 꿈을 떠올렸다.
아주 꼬마였던 시절부터 나의 꿈은 '평범'해지는 것이었다. 애가 대체 뭘 알았던 건가 싶지만, 웬만큼 벌고 웬만큼 즐거운 근처 평범한 어른들의 삶이 아주 평온해 보였기 때문이다. 참내, 평생을 평균으로 사는 것이 대체 얼마나 어려운 건지 그 꼬마는 짐작이나 했으려나. 사실 그 어른들도 평범과는 거리가 멀었을 가능성이 높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어려운 걸 꼭 해내야만 한다는 강박은 사실 얼마 전까지도 있었다. 사회생활이 익숙해지면서 보게 된 성공한 사람, 망한 사람, 자랑하는 사람, 숨기는 사람 또 그 외에 아주 다양한 군상의 사람들을 만나보았다. 그 결과, 모두의 속도가 일정할 수 없고 정답인 속도도 없다는 것이 절대적 진리임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내 인생의 속도는 원한다고 해서 내 맘대로 조절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또 오늘 느리게 가고 있다고 해서 나중에도 느리게 달릴 거란 보장도 없고, 오늘 빠르게 달린다고 해서 나중에도 달리고 있을지 혹은 아예 멈춰있을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그저 늘 모두의 속도가 다르다는 사실만이 확실하다.
결론적으로 나는 그냥 할 수 있는 것을 꾸준히 하기로 했다. 오늘 회사에서 주어진 일이 많으면 야근을 조금 하고, 회사에서 주어진 일이 적으면 다른 일을 하나 더 해낸다. 꼭 주어진 시간에 엄청난 일을 하지 않더라도 그저 밀린 잠을 자서 체력을 메꾸기라도 한다. 그동안 못 깼던 게임 스테이지를 밤새 도전해서 깨도 괜찮다. 그렇게 뭐라도 꾸준히 하면 적어도 뒤로 가진 않을 테니 나는 거북이 경주 권법을 쓰기로 해 본 것이다. 불안해서 냅다 토끼 권법으로 달리다 넘어져 다치면 뭐 하랴, 지나친 풍경도 못 보고 주저앉아 울기 밖에 더 하겠나. 애초에 토끼로 태어나지 않았는데 괜히 따라 했다간 크게 다칠지도 모르니 나만의 생존 방식을 찾은 것이다. 오늘 뒤로 가지 않았다는 걸로 만족하며 불안을 어르고 달래면 때가 왔을 때 약간 더 붙은 근력으로 나아가는 발에 가속을 붙일 수 있다.
당신의 불안은 안녕한가. 당장의 불안은 오늘 할 수 있는 것, 하고 싶은 것을 하며 발 밑에 내려놓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