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로 무비에서 멜로를 빼고
제목부터가 멜로인 드라마가 또 한 편 넷플릭스에 공개되었다. 자칭 '멜로가 체질 덕후'인 나는 "그래, 이것도 내용이 멜로가 중심인 건 아니겠구나." 짐작하면서 멜로 무비를 틀었다.
그런데 반전 없이 그들의 서사가 아주 명확하게 멜로 그 자체였다. 무미건조한 어떤 여자의 인생에 불쑥 나타나 일상을 뒤흔드는 남자. 그럼에도 스토리가 재밌었다. 영화를 매개체로 일어나는 이야기라서 인지 우리가 다 아는 사랑이야기인데도 지루하지 않았다. 다만, 기억에 남는 대사가 나오질 않아서 오래도록 내 품 안에 소장되지는 않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했던 시점에 드라마는 고겸(최우식 역)이 갑작스레 마주친 불행에 힘겨워하는 순간을 지나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던진 김무비(박보영 역)의 독백과 대사가 내겐 아주 선명하게 들렸다.
(독백)
아무리 괜찮을 일상을 흉내를 내도 그렇게 고장 난 부분은 불쑥 튀어나오더라고요. 그리고 반복되는 불안감.
그리고 불쑥 찾아오는 불안감을 없애는 데에는 어느 순간, 어느 단순한 말 하나.
"겸아, 너 혼자 아니야.
내가 너 사랑하고 있어.
그러니까 앞으로도 우린 혼자 아니야."
혼자가 아니라는 무비의 목소리가 너무 단호해서 3인칭 시점에 놓인 나 조차도 '아참, 나 혼자가 아니지.'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인간이 태어나 살면서 누구 하나에게 만큼은 사랑을 받게 된다. 그게 부모든, 자식이든, 연인이든, 친구든 혹은 반려동물이든. 각자 다른 형태로 분명하게 사랑을 받는다. 그리고 누구나 한 번쯤은 내가 세상에 혼자 남겨졌다는 착각에 빠지는 순간도 만난다. 보통 '내가 사랑하는 이'를 잃었을 때 그런 착각에 빠지곤 하는데 그때마다 우리는 알아야 한다. 그 순간 내가 보지 못한 곳에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음을. 누군가를 잃은 나처럼, 나를 잃었을 때 세상이 무너질 누군가가 또 있다는 것을.
사람은 세상에 애착을 가진 대상이 존재하면, 그래도 바닥에 제대로 발붙이고 살아갈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누군가 이 세상에 발붙이고 살아가는 이유가 나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할 때마다 기꺼이 살아갈 용기를 갖는다. 이런 용기를 다른 이들도 가졌으면 해서, 나를 위해 살아달라는 애원 대신 사랑한다는 말을 뱉는다. 생각해 보니 이게 진정한 멜로다.
역시 대놓고 멜로인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멜로'를 빼고 보면 작가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이 보일 때가 많다. 여러분도 한 번 이 비법을 이용해 작품을 맛보았으면 좋겠다. 아주 새로운 맛이 느껴질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