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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해부학

나는 어떻게 마음이 되었는가?

by 영업의신조이

17화.

시간성 — 마음은 과거를 품고, 미래를 향해 흐른다



시간은 우리를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시간 안에서 반복되며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마음은 단순히 선형적인 흐름 속에 갇혀 있지 않다. 오히려 그것은 나선형으로 휘어진 시간의 틈을 따라, 과거의 감정과 미래의 상상을 동시에 품는다.

우리는 언제나 과거를 회상하고, 동시에 미래를 상상하며 살아간다.



지금의 내가 느끼는 감정은 어쩌면 오래전 상처의 메아리일 수 있고, 지금의 내가 선택하는 행동은 아직 오지 않은 불안을 반사하는 예행연습일지도 모른다. 마음은 시간 안에서 기억을 붙잡고, 예측을 시도하며, 반복을 통해 자신을 다듬는다.



나는 문득문득 과거의 한 장면을 떠올린다.

오늘 아침 창밖의 빗소리를 듣는 순간, 어린 시절 들었던 어떤 목소리가 되살아나고, 오래전 어느 오후의 향기가 다시 가슴 깊이 스며든다. 이런 장면들은 단순한 회상이 아니다. 그것은 지금의 감정과 결합해 새로운 울림으로 살아나는 ‘시간의 재구성’이다.

과거는 끝난 것이 아니라, 매 순간 마음속에서 다시 쓰이고 있다.



동시에 나는 미래의 나를 상상한다.

더 성숙하고, 더 단단하며, 더 평온한 모습으로 타인을 이해하고 있는 나. 그런 상상은 단순한 희망이 아니라, 지금의 선택에 섬세한 결을 부여하는 내면의 시간 장치다.

우리는 미래를 살아내기 위해 과거를 반추하며, 현재를 조율한다. 이 순환이야말로 마음이 시간 속에서 존재하는 방식이다.



시간성은 직선이 아니라 나선이다.

그것은 왼쪽 아래에서 시작해 오른쪽 위로 커져가며, 같은 자리를 반복적으로 돌아보지만 결코 같은 지점에 머물지 않는다. 위로 향하는 순간에는 긍정과 기쁨이 우리를 채우고, 아래로 내려가는 순간에는 고통과 혼란, 상실이 우리를 흔든다.

그러나 이 하강의 좌표들 또한 결코 무의미하지 않다. 더 깊이 내려갔을수록, 다시 상승할 때는 이전보다 더 높은 곳으로 올라선다. 시간성은 우리를 흔들지만, 동시에 우리를 성장하게 만든다.



과거의 경험과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들은 나선형의 궤적마다 작은 돌처럼 쌓이며, 다음 좌표를 지탱하는 힘이 된다. 상처는 노하우가 되고, 실패는 견고한 기반이 된다. 과거는 창고 속에 갇힌 것이 아니라, 현재 속으로 끊임없이 호출되며 미래를 빚는 재료로 재조합된다.

그래서 우리가 지나온 모든 흔적은 소멸이 아니라 토양이 된다.



이 과정에서 미래는 단순히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시간 속에서 만들어내는 것이다.

나선의 곡선을 따라가다 보면 언젠가는 반드시 다시 빛나는 순간과 마주한다. 어두운 시기를 견뎌낸 끝에 찾아오는 그 순간은 언제나 이전보다 더 높은 좌표 위에 우리를 세운다.

시간성은 우리에게 ‘희망’이 단순한 기대가 아니라 구조적 필연임을 일깨운다.



그러나 그 모든 순환의 중심은 ‘지금’, 현재다.

오늘의 나는 과거의 무게와 미래의 빛이 교차한 좌표 위에 서 있다.

과거의 경험과 상처, 배움이 오늘의 나를 지탱하고, 미래의 가능성과 희망이 오늘의 나를 이끈다.

현재는 시간성의 교차점이며, 모든 기억과 사상, 철학과 행동이 응축된 하나의 ‘마음 해부학적 순간’이다. 이 현재는 다시 내일의 과거가 되고, 더 높은 궤도를 향한 발판이 된다.



시간성은 마음을 흐르게 하면서도 동시에 고이게 만든다. 한 문장의 말, 한 사람의 눈빛, 한 장면의 색감은 내 안에 감정의 파동으로 저장되고, 그 흔들림은 몇 년이 지나도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기억은 시간 속에 박제된 것이 아니라, 감정이라는 촉매를 통해 언제든 현재화되는 마음의 움직임이다.



나는 내 안에 수십 개의 시간대를 품고 있다.

과거의 내가 있고, 어린 내가 있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내가 있다. 이들이 서로에게 말을 걸고, 서로를 이해하며, 지금의 나를 만들어간다.

시간성은 곧 마음의 확장성이다. 지금의 나는 결코 지금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나라는 존재는 늘 과거의 기억을 품고, 미래의 가능성을 길어 올리며 오늘을 살아낸다.



그래서 시간성은 단순한 흐름이 아니라 ‘변화’이고, 변화는 곧 나의 재탄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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