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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해부학

나는 어떻게 마음이 되었는가?

by 영업의신조이

18화.

무상성과 변화 _ 마음은 영원히 같지 않다



변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란,

실은 변화를 가장 두려워하는 마음일 것이다.

우리는 사랑이 영원하길 바라고,

고통이 빨리 지나가길 바라며,

지금 이 상태가 오래 지속되기를 소망한다.


그러나 마음은 그렇게 한자리에 머물 수 없다.

그것은 끊임없이 흔들리고,

스며들고,

증발하고,

다시 생겨나는 흐름과 같다.


어느 날의 눈빛 하나가, 어느 계절의 냄새 하나가 오래 묻혀 있던 감정을 다시 깨운다.

잊은 줄 알았던 기억이 나를 흔들고, 이미 무너뜨렸다고 믿었던 사고가 다시 일어나 새로운 균열을 만들기도 한다.


이렇듯 마음은 고정된 구조가 아니다.

그것은 계절처럼 끊임없이 변하며, 그 흐름 속에서 지속적으로 다시 쓰이는 설계도이다.


그렇기에 이미 단단히 세워진 신념조차 불현듯 무너지고,

굳게 붙잡았던 자아조차 어느 날 새롭게 형성되기도 한다.

그 무너짐과 생성 사이에서 우리는 비로소 오늘의 나의 마음을 마주한다.

‘나’라는 존재의 본질은 완성이 아니라, 이렇듯 계속 진행 중인 과정이라는 진실을 우리는 이해해야 한다.



사람들은 흔히 변화가 고통을 수반한다고 말하지만,

실은 변화할 수 없음이 더 큰 고통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고정된 자리에서 반복되는 감정, 벗어날 수 없는 사고의 고리,

그것이야말로 마음을 잠식하는 진짜 무거운 무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바뀔 수 있다’는 희미한 믿음,

아니, 그보다 더 정직한 자각, 곧 ‘마음은 언제나 바뀌고 있다’는 진실을 스스로 인지한다면

우리는 다시 숨을 쉴 수 있다.


마음의 구조가 끊임없이 바뀐다는 것은,

한때 내렸던 판단도, 가졌던 원한도,

끝이라 믿었던 아픈 사랑의 기억도 다시 다른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뜻이다.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처참히 무너진 관계가 새로운 결로 다시 이어지기도 하고,

상실되었던 마음이 완전히 다른 방식의 연결로 부활하기도 하며,

어둡기만 했던 절망이 또 다른 빛나는 창조의 문을 열기도 한다.



무상성을 이해하는 데 가장 적합한 비유는 ‘물의 삶’이다.

뜨거운 여름, 가뭄이 심할 때 밭의 습기가 증발해 하늘로 오르고,

바다의 짠물이 햇살을 이기지 못해 수증기로 변해 오른다.

그 수증기들이 모여 구름이 되고, 바람에 밀려 서로 부딪히며 검은 적운을 만든다.

그 안에서 물방울들은 무게를 얻어 비가 되어 땅으로 떨어진다.

빗방울은 다시 강으로, 바다로 흘러가고,

극지에서는 얼음으로 응고되었다가 녹아 흘러내리며 또다시 순환한다.


이 흐름은 지구 전체에서 단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이어지며,

단 0.00001초의 찰나에도 고정된 형상 없이 변하고 또 변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 물의 삶에 가치가 없다고 말할 수 있는가?

아니다. 그 누구도 대자연의 물의 순환에 존재적 가치가 없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비록 형태는 변하지만,

그 존재와 가치는 사라지지 않는다.

바로 그 유동성과 변화 자체가 물의 본질이듯,

우리의 마음 또한 계절처럼, 날씨처럼 변화무상하다.

그리고 그 무상함 속에서야말로 삶의 진실이 드러난다.


마음의 무상성, 즉 고정되지 않고 무한히 변하는 이 마음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가능성이다.


붙잡을 수 없는 것을 붙잡으려는 욕망은 고통이 되지만,

흘러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그 자리는 지혜로 변한다.

무상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며, 변화는 상실이 아니라 새로운 생성이다.



마음은 그렇게 매일, 매 순간 다시 쓰인다.

오늘의 나를 지탱하는 신념이 내일은 무너질 수 있고,

어제의 상처가 내일의 길잡이가 될 수도 있다.

과거의 감정은 새로운 해석을 입고 다시 살아나며,

한때 절망이라 불렀던 장면이 훗날 성장의 문턱으로 기억되기도 한다.


그 모든 다시 쓰임 속에서 우리는 또 다른 나를 발견하고,

또 다른 삶을 선택하며,

이전과는 전혀 다른 결로 세상을 살아간다.



불교에서 말하는 무상은 고통이 아니라 진실이다.

‘모든 것은 변한다’는 명제는 절망이 아니라 희망이다.

지금의 고통도, 지금의 한계도 언제든 바뀔 수 있다는 가능성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마음은 하나의 생명체처럼 스스로를 고쳐 쓰며,

파동과 균열 속에서도 그 흐름의 변화를 멈추지 않는다.

깊은 바다의 해류처럼 겉으로는 고요해 보이지만,

내면에서는 끊임없이 자신을 재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는 말은 완결된 정의가 아니라,

“나는 지금 이렇게 흐르고 있다”는 고백으로 승화되어야 한다.

자아는 완성된 고정 형상이 아니라,

끊임없는 변화를 통해 매 순간 다시 그려지는 이름이기 때문이다.


무상은 가끔 우리를 무너뜨리지만, 동시에 다시 일으킨다.

변하지 않는다고 믿는 그 순간에도, 이미 우리는 변하고 있다.



기억하자.

마음은 물과 같아서, 흘러가며 사라지는 듯 보이지만,

그 무상한 흐름 속에서만 새로운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인생의 무상은 끝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부터 다시 시작하라’는 가능성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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