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떻게 마음이 되었는가?
19화.
타인의 마음 _ 너를 느낀다는 것
나는 내 마음의 구조를 안다고 믿었다.
감정의 결을 스스로 읽을 수 있었고, 기억의 방향성에 따라 사고를 조직할 줄 알았으며, 내 사상이 나를 규정하는 방식까지도 전부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느 날,
누군가의 떨리는 말 한 줄,
입가에 스친 불완전한 미소 하나,
침묵에 남은 체온 같은 것이 나의 마음을 완전히 뒤흔들어 놓았다.
그때 난 처음 알게 되었다. 타인의 마음은 내가 ‘보는 것’이 아니라 나를 ‘흔들리게 한다는 것’을.
공감은 해석이 아니라 진동이다.
타인의 마음이 내 안에 들어오는 순간, 나는 더 이상 완전한 ‘나’ 일 수 없다.
내 감정의 결이 살짝 틀리고, 익숙했던 사고의 연결이 흔들리며, 나의 중심축이 조용히 움직인다. 이 감응은 연민도, 동정도 아니다. 그것은 단지 너의 마음이 내 마음을 흔들도록 허락하는 일, 바로 그 허용의 자세가 공감의 본질이다.
그 진동은 나의 중심을 붕괴시키지 않으면서도 점차 확장시킨다. 나는 나인 채로 너를 느끼고, 너를 통해 나를 다시 구성한다.
공감은 말보다 먼저 전해지는 정서이다.
언어는 종종 그 공감의 온도보다 한 발짝 늦게 따라가거나, 때로는 아예 따라잡지 못한다.
길 위에서 울던 아이 곁에 말없이 멈춘 적이 있다.
그 순간, 나는 아무 말도 건네지 않았다. 그저 아이의 눈을 따뜻하게 바라보았다. 그러나 아이는 나를 보며 더 크게, 더 서럽게 울었고, 나는 그 침묵 속에서 나의 잔잔한 위로가 아이에게 전해졌음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렇듯 공감은 설명이 아니라 머무름이다.
이해하려는 의지가 아니라, 곁에 있으려는 태도인 것이다.
타인의 마음은 나의 마음을 확장시키기도 한다.
나만의 구조 안에 머물 때, 나는 나만의 세계 안에서 매우 견고하게 자리 잡고 있지만, 동시에 외롭고 고립되어 있기도 하다.
그러나 너의 웃음이 나에게 다가와 미소 짓게 하고, 너의 고통이 내 심장을 두드리며 눈시울을 젖게 한다. 그때 나의 마음은 닫힌 방이 아니라 열린 창이 된다.
마음의 경계는 그렇게 느슨해지고, 그 느슨함 속에서 나의 구조는 수정되어 간다. 우리는 서로의 감정 안에서 잠시 얽히고, 그 삶의 순간 속에서 여운을 품은 채 다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간다.
그러나 공감은 말처럼 쉽게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의 사상, 경험, 가치관은 타인의 감정을 받아들이는 데 방해가 되기도 한다. 어떤 순간, 나는 그 사람의 말을 듣는 것이 아니라 나의 필터로 재해석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정해놓은 프레임 안에서 모든 것을 해석하려 한다.
진정한 공감은 내 해석을 내려놓고, 그 내려놓은 채로 상대와 함께 있는 용기이다. 내 정답을 말하려 하지 않고, 문제를 맹목적으로 해결하려 제안하지도 않으며, 그저 ‘그렇구나’, ‘그랬구나’ 하고 그 자리에 함께 서 있어 주는 머무름인 것이다. 그것이 바로 공감의 완성이다.
타인은 거울이다.
그 사람의 말투,
선택,
흔들리는 감정들은 모두 내 안의 무언가를 비춘다.
때로는 내가 외면하고 있던 내면의 나를, 때로는 잊고 있던 억눌린 감정을. 우리는 그 거울 앞에서 웃고 울며, 때로는 스스로를 부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거울 없이는 나를 정확히 알 수 없다.
나의 자아는 나만의 구조에서 생성되지 않는다. 자아는 언제나 관계 속에서 수정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나는 누군가의 이야기 앞에서 울어본 적이 있다.
나와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인데도, 그의 말속에서 내 마음의 어딘가가 울렸다.
그것은 감정의 전염이 아니라 감정의 스며듦이었다. 공감은 침입이 아니라, 물처럼 스며드는 정서의 이동이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공간을 열어주고 받아들이며 감정을 공유하고 바꾼다.
그렇기에, 스쳐가는 말 한마디일지라도 마음속에 아주 오래도록 남는 흔적이 되기도 한다.
공감은 기술이 아니다.
그것은 삶을 대하는 태도이며, 타인의 고통을 무너뜨리지 않고 견디게 하는 정서적 여백이다. 그 여백 속에 머무는 사람만이 타인의 마음과 자신의 마음을 동시에 품을 수 있다.
그래서 공감은 언어보다 더 오래 남고, 위로보다 더 깊이 새겨진다.
어깨를 토닥이던 그 손길,
아무 말 없이 건네던 찻잔의 온기,
그 침묵 속 따뜻한 눈빛과 포근한 다리함은 시간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는다.
나는 믿는다.
우리가 서로를 치유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은, 완벽한 말이나 멋진 조언이 아니라, 무너지지 않고 곁에 있어주는 ‘존재 자체’라는 것을...
너는 나를 울릴 수 있는 사람이고, 나는 너를 안아줄 수 있는 사람이다. 그 단순하고 명백한 사실이, 마음의 구조 속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이며 가장 깊은 울림이다.
그러나 그 모든 공감 속에서도, 결국 나의 길을 선택하는 순간은 오롯이 나에게 남는다. 타인의 마음이 나를 흔들지만, 그 흔들림 속에서 어떤 방향으로 설 것이며 어디로 나아갈 것인가는 오롯이 나의 책임의 문제다.
공감은 설명하려 애쓰지 않고, 함께 앉아 있어 주는 태도다. 그것이 공감의 마음이다.
타인의 마음은 언제나 나를 흔들고, 나를 다시 쓰게 만든다. 그러나 그 흔들림이야말로 인간이 인간답게 살고 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