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떻게 마음이 되었는가?
20화.
자유와 책임 _ 마음의 마지막 문턱에서, 선택하는 존재로 선다
자유는 오래전부터 인간이 손에 쥐고 싶어 했던 가장 맑은 빛이었다. 우리는 누구에게도 얽매이지 않고 스스로의 방향으로 걸어가고자 한다. 그 욕망은 인간 정신의 가장 깊고 오래된 자리에서 솟아난 원초적 몸부림이다.
그러나 마음의 층위를 하나씩 들추어 내려오다 보면, 그 빛은 홀로 서 있지 못한다. 자유라는 단어 뒤에는 언제나 그림자처럼 닿아 있는 또 하나의 단어가 모습을 드러낸다. 그것이 바로 책임이다.
자유는 상태가 아니라 과정이고, 결심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갱신되는 선택의 흐름이다. 그리고 책임은 그 선택의 모든 파동을 스스로 감당하겠다는 내면의 조용한 서약이다. 자유롭게 산다는 것은 곧 내가 내린 결정에 대하여 누구도 탓하지 않겠다는 말 없는 맹세이기도 하다.
여기, 마음 해부학의 긴 여정은 단순히 감정을 이해하고 기억을 비추는 학문적 탐색이 아니었다. 그 여정은 마음이라는 존재가 어떻게 세계와 마주 서고, 어떻게 ‘나’라는 존재를 구성해 가는지를 따라 내려가는 길이었다.
감정은 나를 흔들어 깨우는 파동이었고, 기억은 그 파동을 한 겹 더 깊은 의미로 저장하는 층위였다. 사고는 그 의미에 형태를 부여해 나를 해석하는 틀이 되었고, 의식은 그 틀을 세계로 확장하는 창이 되었다. 그리고 의지는 그 창 앞에서 비로소 움직임을 시작하게 하는 최초의 발걸음이었다.
그러나 선택의 자리는 언제나 상실과 마주하고 있었다. 하나의 길을 택한다는 것은 곧 다른 수많은 길을 닫는 일이며, 닫힌 문들은 종종 후회의 그림자를 불러오기 때문이다.
나는 삶의 큰 결정을 내려야 했던 순간을 기억한다. 가족을 위한 선택이었지만, 동시에 내 신념과 충돌하는 지점이 있었고, 신념을 지키기 위해 가족을 위한 결정을 내려놓아야 했던 때도 있었다.
그때는 그 무게를 다 알지 못했다. 정당성과 용기만을 붙잡고 걸음을 내디뎠고, 진짜 질문은 시간이 지난 뒤에야 나를 절실하게 찾아왔다.
나는 이 선택을 끝까지 감당할 수 있는가?
내가 만든 고통까지도 품을 수 있는가?
그 물음 앞에서 나는 비로소 보았다. 책임이란 감정의 격정이 아니라, 마음의 근육을 기르는 고통스러운 연습이라는 사실을. 선택은 언제나 상실을 안고 오며, 그 상실을 나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과정이 곧 책임의 본질이었음을.
이 지점에서 나는 문득 깨달았다. 지금까지 내려온 마음의 모든 해부는 각각의 파편이 아니라, 이 마지막 문을 향해 조금씩 모여오던 하나의 흐름이었다는 것을. 마음은 온전히 자유를 준비하고, 그 자유를 감당할 책임을 배우기 위해 층위를 쌓아온 구조였다는 것을.
우리는 감정의 장에서 배웠다.
감정은 나를 가장 먼저 흔드는 파동이지만, 그 흔들림이야말로 내가 처음으로 ‘살아 있다’는 신호였다는 것을.
기억의 장에서는 알았다.
기억은 사라지지 않고 형태만 바꾸어, 나의 방향성을 꾸준히 재구성하는 뿌리였다는 것을.
사고의 장에서는 깨달았다.
사고는 세계를 해석하는 틀이었지만, 결국 나 자신을 해석하기 위한 내면의 구조였다는 것을.
지각의 장에서는 보았다.
마음은 보는 만큼 넓어지고, 넓어지는 만큼 존재가 깊어진다는 것을.
의지의 장에서는 다시 배웠다.
의지는 마음이 처음으로 일으키는 움직임이며, 그 움직임이 ‘나라는 존재의 시작점’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지금, 그 모든 층위가 서로의 끝을 맞잡으며 하나의 결론을 우리에게 건넨다. 마음의 모든 구조는 자유를 위한 준비였고, 책임을 위한 성숙이었다는 것이다. 이 깨달음이야말로 마음 해부학 전체를 하나로 완성시키는 마지막 조각이다.
책임은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드는 마음의 핵심 기능이다. 선택의 결과가 남긴 상처가 나를 흔들어도, 후회의 그림자가 자꾸 뒤를 잡아끌어도, 그 흔들림 속에서 다시 마음을 재구성하는 반복의 과정이 존재를 조금씩 더 단단하게 만든다.
우리는 선택하고, 감당하고, 다시 선택하며 살아간다. 그 되돌아오는 파동 속에서 조금씩 더 ‘나다운 나’가 형성되어 간다.
이제 나는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자유란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만든 방향을 외면하지 않는 일이다.
책임은 무겁지만, 그 무게를 감당하는 사람만이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 있다. 우리는 ‘무엇이 옳은가’보다 더 깊은 자리에서 ‘무엇을 견딜 수 있는가’를 기준으로 살아간다.
그러므로 책임은 도덕의 언어가 아니라 실존의 고백이며, 책임을 진다는 것은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 결과 속에서 다시 ‘나’를 창조하는 행위이다.
자유와 책임은 둘로 나뉘지 않는다.
선택 없는 책임은 강요이고, 책임 없는 자유는 환상이다. 이 둘을 함께 짊어지고 나아갈 때 비로소 인간은 ‘자기 삶의 주인’이라는 이름을 얻을 수 있다.
자유는 나를 날게 하는 날개이고, 책임은 그 날개를 지탱하는 뼈이다. 우리는 이 두 가지가 함께 있을 때에만 온전히 자유롭게 하늘을 날 수 있다.
그리고 이 깨달음은 마음 해부학의 끝이 아니라, 다음 세계로 이어지는 새로운 시작의 문이 된다. 마음을 해부하는 이 여정은 결국 ‘나’를 선택하기 위한 준비였다. 자유는 그 선택을 가능하게 하는 빛이었으며, 책임은 그 빛을 향해 끝내 걸어가는 우리의 발이었다. 진정한 성숙은 그 발걸음을 외면하지 않는 우리의 마음가짐에서 시작된다.